EBS 킹메이커 제작팀 지음/ 김영사ON/ 216쪽/ 1만2000원
‘선거는 무조건 이겨라. 정정당당한 2등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매번 슬그머니 등장해 선거판을 흐려놓는 것이 이런 ‘네거티브 전략’이다. 후보들은 자신의 공약을 알리는 과정에서 모략과 비방, 허위사실 유포 등 상대방을 공격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네거티브 전략은 선거 판세를 한방에 바꿔놓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1988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와 민주당 마이크 듀카키스가 맞붙었다. 그해 여름 부시는 듀카키스에게 17%포인트나 뒤졌으나 선거 컨설턴트 리 애트워터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그는 듀카키스 부인 키티 듀카키스가 학생 시절 성조기 방화사건을 일으켰다는 전략을 동원했다. 키티가 해명했지만 유권자들은 믿지 않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으로 듀카키스 지지율은 6%포인트나 빠졌다. 부시와 애트워터의 공격은 이어졌다. 듀카키스는 주지사 시절 죄수주말휴가제를 도입했는데, 흑인 죄수 한 명이 1987년 백인 커플을 납치해 여자는 강간하고 남자는 폭행한 사건을 들고 나온 것. 1년 전 사건을 광고로 물고 늘어진 애트워트 전략으로 결국 부시가 득표율 54%로 승리했다.
1996년 7월 러시아 대선에서 결선투표를 거쳐 재선에 성공한 보리스 옐친 역시 선거 컨설턴트가 만든 작품이다. 안팎의 악재로 1996년 초 옐친의 지지율은 0퍼센트였다. 옐친은 공포와 협박을 무기로 다양한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펼쳤다. 이미지 선거, 강제유도 여론조사, 여론조작 등 최신기법을 동원했다. 국민을 협박한 내용은 단순했다. “주가노프를 찍으면 혹독하고 암울했던 공산주의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중도 혹은 무당파인가.’ 제18대 대선도 부동층 혹은 중도파 유권자들 표심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다. 선거나 후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30%는 중도파로 분류된다. 그러나 2004년 드루 웨스턴의 흥미로운 실험과 과학적 분석에 따르면, 가족이나 주위 사람이 오랫동안 어떤 당 혹은 그 당의 후보를 지지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견과 관습이 자리 잡게 된다. 본인은 중도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지지하는 사람을 마음속 깊은 곳에 찍어놓은 셈이다. 결국 흔들리는 중도파는 자신의 도덕적 가치에 따라 후보를 찍는다. 그러니 대선 후보가 상대편 지지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한발 다가가는 전략은 효과가 없다. 산토끼 몇 마리 잡으려다 집토끼를 몽땅 잃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11월 6일 끝난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즉 SNS 덕분에 재선에 성공했다. 인터넷과 SNS를 활용한 오바마 선거전략의 핵심은 ‘마이크로 타깃팅’이다. 즉 인터넷으로 무엇을 하는지, 얼마의 돈을 쓰는지, 지리적 장소는 어디인지를 포함한 지표를 통합해 오바마를 지지할 만한 사람들의 정보를 모으고, 그들의 지지를 견고하게 만들어 세를 확장했다. 개표 전에는 박빙을 예측했지만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지상 최대 축제이자 쇼다. 한두 사람이 주도하는 ‘킹메이커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공약을 꼼꼼히 따지고 냉철하게 대선후보를 선택하는 ‘국민 킹메이커’ 시대다. 유권자가 현명해지고 적극적으로 변해야 정치도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