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0년 5월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열린 반도체 16라인 기공식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첫 삽을 뜨고 있다(왼쪽에서 두 번째). 2. 10월 13일 베트남 삼성전자 휴대전화 공장을 방문해 직원들로부터 ‘휴대전화 20억 대 누적생산 기념패’를 받는 이 회장(오른쪽).
“우리는 지금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시련과 도전이 몰려드는 격동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삼성 제2 창업의 선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소임을 수행할 것입니다. 삼성은 이미 한 개인이나 가족 차원을 넘어 국민적 기업이 됐습니다. 삼성이 지금까지 쌓아온 훌륭한 전통과 창업주 유지를 계승해 이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2월 1일 취임 25주년을 맞았다. 25년 전 취임사가, 마지막 몇 마디를 빼면 오늘 한 얘기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때나 지금이나 삼성은 국민적 기업이기 때문이다.
“최고를 만들어라” 무서운 승부욕
그러나 그때 삼성이 바라는 바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서의 위상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라는 점에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1987년 9조9000억 원이던 삼성 매출은 2012년 384조 원(예상액)으로 40배 가까이 늘었다. 수출은 해외 현지법인 몫을 제외하고도 63억 달러에서 1567억 달러로 증가했다. 1조 원에 불과하던 시가총액은 10월 말 기준 303조2000억 원으로 300배 이상 커졌다.
삼성이 이처럼 성장한 배경에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시장을 발견하면 누가 뭐라 하든 뛰어들어 1등이 되고야 마는 이 회장의 무서운 승부욕이 자리 잡고 있다. 사재를 털어 시작한 반도체 사업의 성공이 대표적이다. 1974년 모토로라 출신 한국인이 만든 한국반도체가 창업 1년도 안 돼 자금난에 부닥치자 당시 동양방송 이사이던 이 회장이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1차 오일쇼크 영향으로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인원과 생산시설을 감축할 때다. 삼성 내에서도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첨단으로 가는 건 위험하다”며 반대 여론이 심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언제까지 그들(미국, 일본)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나.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에 삼성이 나서야 한다”며 인수를 밀어붙였다. 반도체 사업 초기에는 기술 확보가 관건이라고 판단한 이 회장은 거의 매주 일본으로 건너가 반도체 기술자를 직접 만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배우려고 했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한 삼성전자는 D램의 경우 1992년 이후, 전체 메모리 반도체는 1993년 이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어 세계 1등을 달성한 1993년 6월 세계 주요 거점도시를 탐방하던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룹 임원 1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신경영’을 선언한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고,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라는 말이 나온 게 바로 이때다. 이날 경영 중심을 양에서 품질로 바꾸자고 선언한 이 회장은 반도체를 이을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전화를 주목했다.
“휴대전화 품질에 신경 쓰십시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 반드시 1명당 무선 단말기 1대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
당시 국내 휴대전화 시장은 모토로라가 석권했다. 삼성전자는 그해 산악지역이 많은 한국 지형에 적합하면서도 무게가 100g대인 획기적인 휴대전화 SH-700을 내놓으며 승부수를 던졌다. 이듬해 10월 애니콜 브랜드 첫 제품인 SH-770을 출시했고, 시장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1995년 삼성전자는 마침내 휴대전화 국내 시장점유율 52%를 차지하며 1위에 올라섰다. 이후에도 기술개발과 혁신을 거듭해 2002년 노키아, 모토로라와 함께 ‘세계 빅3’에 진입했다. 올해 1분기 노키아와 애플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는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 3분기(7∼9월)에는 처음 휴대전화를 1억 대 넘게 판매했다. 지금까지 한 분기에 휴대전화를 1억 대 이상 판매한 회사는 삼성전자와 노키아뿐이다.
“새 천년이 시작되는 올해를 삼성 디지털경영 원년으로 선언하고, 제2 신경영, 제2 구조조정을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사업구조, 경영 관점과 시스템, 조직 문화 등 경영 전 부문의 디지털화를 힘 있게 추진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먼저 변화 흐름을 읽고 전략과 기회를 선점하는 것입니다.”
2000년 신년사에서 디지털을 강조한 이 회장은 TV를 염두에 뒀다. 1970년대 이후 30년간 세계 TV 시장은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이 재패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디지털TV가 보급되면서 삼성전자의 고급화 전략이 시장 판도를 바꿨다. 삼성전자가 앞선 기술력과 뛰어난 디자인의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자 고객들이 비싸도 한 대 장만할 만하다고 호응한 것이다. 최근 스마트TV에 이르기까지 삼성전자는 전 세계 TV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디지털시대는 출발선이 같아 우리도 1등을 할 수 있다” 고 한 이 회장의 예견이 적중한 것이다.
스스로 길을 만드는 부담감
반도체, 휴대전화, TV 사업은 손익분기점을 넘기까지 상당한 투자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주위 만류에도 이 회장이 과감한 투자를 계속한 덕에 과거 불모지가 지금은 그룹 내 가장 중요한 캐시카우(cash cow)로 자리매김했다. 전문가들도 유기적인 사업구조(포트폴리오)를 삼성전자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는다. 반도체, 휴대전화, TV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에 한 제품의 위기를 다른 제품의 이익이 상쇄하는, 위기관리에 탁월한 구조를 지녔다는 것이다. 또한 한 사업 부문에서 창출한 이익을 다른 부문에 대한 투자로 돌리는 선순환 구조를 갖췄다고 평가한다.
그렇다고 삼성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7월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냈지만, 그룹 수뇌부에선 “전체 이익의 70%를 차지하는 스마트폰 실적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사실상 적자”라는 혹평이 흘러나왔다. 7월 초 취임한 삼성그룹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도 “삼성전자 이익구조가 스마트폰에 집중되면서 과거 휴대전화, 반도체, 가전으로 적절히 분산되던 황금분할이 약해졌다”고 진단하며 위기 상황임을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휴대전화, TV 사업에서 1위에 올라선 만큼 더는 쫓아갈 경쟁 상대가 없는 시장 상황도 삼성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미지수다. 삼성은 이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스스로 잡고 새 길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동시에,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세계 많은 기업을 견제해야 한다. 이 회장이 직접 그 막중한 임무를 계속해나갈지도 세간 관심사다. 어쨌거나 ‘역전의 명수’ 삼성이 마켓 크리에이터로 한 단계 도약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