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정월대보름 밥상에 묵나물과 함께 봄동, 냉이 같은 봄나물이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매서운 바람을 뚫고 내리쬐는 한낮의 햇살은 꽤 따뜻하다. 나른한 봄이 몰려오기 전,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펴야 할 때면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 있다. 치즈다. 기지개를 크게 켜기 전에 하는 영양보충이랄까. 문제는 구성이 잘된 치즈 플레이트를 먹을 만한 곳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치즈는 요리할 때 사용해도 좋지만, 각각의 개성을 뽐내는 여러 종류의 치즈를 조금씩 맛보는 일은 보드나 빙고게임을 할 때처럼 스릴과 재미가 있다.
치즈 먹을 만한 곳을 수소문해 찾아간 곳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파올로 데 마리아’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토리노 출신인 셰프 파올로 데 마리아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치즈는 원료와 만드는 방법, 숙성 기간에 따라 색, 향, 맛, 모양, 질감이 달라져 같은 원료라도 완전히 다른 맛이 난다. 치즈의 태생과 성장 과정을 잘 알아야 플레이트 구성도 맛있게 할 수 있다. 우리가 된장, 고추장, 간장을 몸으로 배우듯 파올로 셰프에게 치즈는 그런 음식이다.
원래 여섯 종류가 나오는 치즈 플레이트지만 주인장에게 부탁해 치즈 네 종류와 햄 세 종류를 섞은 콜드 컷 플레이트를 맛봤다. 치즈는 양젖으로 만든 페코리노(pecorino) 두 종류에 소젖으로 만든 토마(toma)와 파르미자노 레자노(parmigiano reggiano)가 나왔다. 함께 곁들인 햄은 파올로 셰프가 직접 만든 돼지 목살 햄인 코파(coppa), 소의 홍두깨를 숙성시킨 카르파초(carpaccio), 이탈리아 국민 햄이라 할 수 있는 모르타델라(mortadella)다.
짧은 숙성 기간을 거친 페코리노 치즈는 질감이 부드럽고 맛과 향이 고소해 누구나 편하게 먹을 수 있다. 4개월 이상 숙성 기간을 거친 페코리노는 단단해지고 짠맛과 특유의 쿰쿰한 향이 깃들어 독특함이 살아난다. 꿀에 찍어 먹거나 말린 과일을 올려 먹으면 맛있다. 우리나라에서 맛보기 어려운 토마 치즈는 두 종류가 있다. 전지유로 만들며 향이 세지 않고 맛이 구수하면서 부드러운 치즈, 탈지유로 만들며 숙성 기간이 길고 좀 더 강렬한 맛과 향이 나는 치즈가 그것이다. 테이블용으로 먹기 좋은 전지유 토마 치즈를 맛봤다. 파르미자노 레자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파르메산 치즈’다. 단단한 치즈 덩어리를 씹으면 톡톡 터지는 소금 알갱이에서 짠맛과 고소한 맛이 함께 퍼진다.
파올로 셰프가 만든 코파 햄은 짭짤하고 기름진데, 진하게 퍼지는 펜넬 향이 이탈리아답다. 숙성시킨 생고기인 카르파초에 질 좋은 올리브 오일과 신선한 마저럼을 뿌려 개성 있는 풍미를 살렸다. 피스타치오가 들어간 모르타델라는 부드러운 페코리노나 토마 치즈와 함께 빵의 일종인 포카치아에 올려 먹으면 꿀맛이다.
집에서 치즈 플레이트를 만들어보고 싶다면 원료(어떤 젖인가), 맛(짜거나 달거나 매운), 향(부드러운지 강렬한지 혹은 훈연했는지), 경도(크림 질감부터 딱딱한 질감까지), 숙성 기간(비슷한 종류의 치즈를 맛볼 것이라면)이 다른 것으로 3~5개 종류와 살라미, 생햄, 햄, 튀는 맛이 없고 담백한 빵을 얇게 잘라 곁들인다. 말린 과일이나 꿀과 잼까지 준비하면 더욱 좋다.
수입 치즈와 가공육류 등은 백화점 식품 매장이나 코스트코, 유로구르메(shop.gourmet.co.kr) 같은 온라인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파올로 데 마리아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31길 13, 02-599-9936, 오전 11시 30분~오후 3시, 오후 5시~오후 10시 30분(연중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