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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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정남 피살 파장

북풍 또 불까

약발 떨어졌지만, 대형사건 땐 표심에 영향 미칠 수도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7-02-17 16: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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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정남이 사망했다.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에서 여성 2명, 남성 4명으로 이뤄진 일행으로부터 독극물 공격을 받았을 것이란 추정이다. 만약 이복동생인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지시로 이뤄진 일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친형 김정철은 물론,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그리고 이복남매인 김설송과 김춘송까지 줄줄이 처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 체제에 동요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우려되는 점이다. 김정남 사망 하루 전, 김정은 위원장은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인 북극성 2형을 시험발사했다. 이로써 대통령선거(대선)에 갑자기 북풍이 끼어들었다.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판을 완전히 뒤엎을 정도까지 갈까.



    북풍은 보수세력 단합용?

    북풍은 대체로 보수진영에 이롭게 작용했다. 1987년 대선 직전 터진 KAL기 폭파 사건이 대표적이다.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을 폭파하면서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6월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까지 관철시킨 야권이 상승기류를 탄 속에서 결국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다. 물론 3김(金)인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후보의 분열도 한몫하긴 했다. 92년 대선 당시 불거진 역대급 간첩단인 중부지역당 사건도 야권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신민당 김대중 후보의 비서 관여설이 돌면서 결국 3당 합당을 이룬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가 승리했다. 그러나 97년 대선을 계기로 북풍은 힘을 잃어갔다. 이른바 ‘총풍(銃風)’ 사건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이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를 만나 북한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이로써 보수진영이 북풍까지 조작한다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널리 퍼졌다.

    전반적으로 힘을 잃어가는 속에서도 보수진영의 북풍 사랑은 이어져왔다. 보수세력을 단기간 내 결집시키기에 이만한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이던 김무성 전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한 비공개 대화록이 있다는 것이 폭로의 요지였다. 이는 결국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이후 문재인 후보의 상승세를 주춤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은 이번에도 일찌감치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과 대세론의 주역인 문재인 전 대표에게 안보프레임을 걸어뒀다. 실은 얻어걸렸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다. 지난해 10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장관이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출간했다. 송 전 장관은 책에 이렇게 기록했다. ‘2007년 11월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뇌부 회의에서,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의 의견을 물어보자는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의 견해를 문재인 실장이 수용했고 결국 우리 정부는 북한의 뜻을 존중해 기권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부 장관의 증언이니 힘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진영은 여기에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문 전 대표의 발언까지 한데 묶어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보수 정당과 언론의 안보위기론에 국민 대다수가 식상해하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특히 통일에 관심이 별로 없는 청년세대는 더 그렇다. 청년실업으로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북한 걱정할 새가 어디 있느냐는 반응이다. 통일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통일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20대의 55.1%는 오히려 분단체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는 42%, 40대는 31%, 심지어 50대도 25%가 분단체제를 지지했다. 문 전 대표는 2월 4일 대학생·청년 지지모임 ‘허니문(MOON)’ 출범식에 참석해 이런 쓴소리를 내놨다. “저 사람들은 안보도 무능하고, 국가관도 없고, 애국심도 없으면서 그동안 안보팔이 장사로 정권을 유지해온 가짜 안보세력이다.” 청년층이 공감할 만한 지적을 한 것이다.



    병역미필과 방산비리

    여당의 안보프레임, 종북색깔론에 대해 야권은 최근 안보무능론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그러면서 빼놓지 않는 것이 ‘군대도 안 다녀온 사람’이라는 지적이다. 사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도 병역미필이다. 박 대통령이야 여성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비롯해 상당수 남성 장관이 병역미필자다. 진보정권 시절에는 병역미필이 국회 인사청문회 때마다 논란이 됐고 낙마 사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정권에서는 오히려 병역을 정상적으로 마친 것이 미담이 될 정도다. 문제는 이들 보수진영 지도층의 경우 병역미필까지 대물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남성 유권자에게 병역 문제는 매우 민감하다. 당장 군대에 가야 하거나 다녀온 청년층뿐 아니라, 징집 대상 자녀를 둔 4050세대에게도 민감하긴 마찬가지다. 안보무능론은 과거와 달리 설득력이 높아졌다.

    병역기피와 더불어 방위산업(방산)비리 역시 보수진영에게는 취약점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방산비리가 적잖았다. 박근혜 정부 들어 정부합동수사단까지 꾸리며 대대적으로 수사했지만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따가운 시선도 없지 않다. 더욱이 최근 대북 확성기 사업에도 비리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박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재개된 대북 심리전 사업조차 의혹에 휩싸이면서 보수정권 10년이 방산비리로 얼룩진 형국이다. 안보는 보수라는 주장이 무색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보수진영과 자유한국당은 태극기집회에 모든 것을 걸 태세다. 태극기집회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미국 성조기다. 오히려 성조기가 더 커서 눈에 확 띌 정도다. 애국집회가 친미집회로 돌변한 까닭은 역시 진보진영의 ‘종북=반미’라는 인식에 기반을 둔 것이다. 태극기집회의 목표가 무엇인가. 박 대통령 탄핵 반대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기각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종북색깔론이 등장하는 이유는 탄핵은 곧 종북이고, 국가 전복 시도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다. 대통령의 헌법 위반을 문제 삼아 탄핵이 이뤄졌는데, 태극기집회는 탄핵이 곧 위헌이라고 정반대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2월 10일 발표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성 의견은 79%에 달한다. 단지 15%만 반대할 뿐이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이런 국민적 판단을 고려할 때, 탄핵 기각 태극기집회에 모든 것을 거는 전략이 대선에 유리할지 의문이다. 오히려 역풍이 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한국당이 대선 승리보다 집토끼 결집을 통한 정당 존립에 방점을 둔다면 그 나름 의미를 가질 순 있겠지만 말이다.



    혼미해진 사드 전선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성공 이후 사드(THAAD·고도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론에 좀 더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이번에 시험발사에 성공한 북극성 2형은 고체연료를 이용하기 때문에 언제든 발사가 가능하고, 무한궤도형 이동식 발사차량에 탑재한 까닭에 어디에서나 발사할 수 있다. 사전 탐지가 어려워 기존 킬체인(Kill Chain)으로는 막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당연히 사드만이 해법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김정남 사후 야권 내에서도 사드 배치 반대론이 급격히 힘을 잃어가는 중이다. 심지어 국민의당조차 반대 당론을 철회할 움직임이다. 북풍을 맞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민주당은 이미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온 터다. 다음 정부에서 논의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피력해온 문 전 대표 역시 명확한 입장 표명을 피하는 중이다. 그래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 중이지만, 앞으로도 명쾌한 답을 내놓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피해가는 편이 대미관계나 대중관계에서 유리한 측면도 없지 않다. 보수진영은 사드 문제로 대립각을 세워보려고 하지만 사드 전선은 앞으로 더 혼미해질 것이다.

    이런 속에서 미국 측이 최신예 스텔스 전함 줌월트의 한국 배치를 새롭게 들고 나왔다.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들이 2월 초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군사령관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국방위원들이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 필요성을 제기하자 해리스 사령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반문했다. “줌월트를 한국 제주도나 진해에 배치하는 방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후 제주해군기지가 줌월트의 모항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논란이 거세지는 중이다. 줌월트의 한국 배치는 아직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 의견은 아니다. 하지만 공식 추진할 경우 휘발성은 사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드는 방어 전력인 반면, 줌월트는 공격 전력이다. 당연히 중국 정부가 더 격하게 반발할 것이라고 봐야 한다. 제주는 중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이자 투자가 많이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해군기지를 줌월트의 모항으로 한다면 중국인 관광객과 중국의 투자 유치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제주해군기지는 노무현 정부에서 결정된 사업이다. 그래서 줌월트를 제주해군기지에 배치한다면 여야 간 격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은 ‘문재인 대세론’을 꺾는 차원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 것이다. 사드보다 줌월트 배치가 대선 국면에서 더 핫(hot)해질 수 있는 셈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북풍은 일정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상되는 추가 북풍 변수로는 ①김정은 위원장이 추가 핵실험을 하거나 완성된 형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하는 경우 ②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를 비롯해 남한 내 고위급 탈북 인사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을 경우 ③김정은 시해 같은 급변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결국은 사건의 파괴력이다. 북풍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대형사건이라면 국민 여론이 달리 반응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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