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및 시위 현장에서 벌어지는 경찰의 과잉대응에 대한 항소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독단적 시각으로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강제해산한 조치를 불법행위로 판단해 국가는 물론, 경찰 현장지휘 책임자에게도 손해배상을 명했다. 그간의 불합리한 관례와 달리 국가는 물론, 경찰관 개인의 고의, 중과실을 인정해 손해배상 책임을 지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상부의 지시가 있더라도 공무원이 스스로 판단해 적법한 행정집행을 하지 않으면 국가에 책임이 있음은 물론, 공무원 자신도 범죄자나 불법행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생각지 않은 죄’를 물어 나치 행동대원 아이히만에게 중형을 선고한 예루살렘 법정의 정신이 이제야 대한민국에서도 구현되는 것일까.
2013년 5월 원고 강모 씨 등 집회 참가자들은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정리해고 희생자 추모문화제’를 열고자 경찰에 집회 신고를 했다. 오후 7시 30분쯤 대한문 앞 화단에 마이크와 무대를 설치하려 했지만, 당시 관할 경찰서 담당 과장의 지시를 받은 경찰기동대 30여 명이 화단을 둘러싼 채 집회를 막았다. 담당 과장은 종결선언 요청, 자진해산 요청, 3차에 걸친 해산명령을 방송했고 오후 10시쯤 참가자들은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해 6월에는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임시분향소를 강제철거하자 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현장에는 30여 명의 기자가 있었으나 이번에도 같은 경찰서의 담당 과장은 경찰 2개 중대를 집결시켜 기자회견을 막았고, 이에 참석자들이 항의하자 4차에 걸쳐 해산명령을 내렸다.
이에 당시 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는 패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경찰의 집회장소 점거와 해산명령은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법한 경찰력 행사”라고 판단했다. 그에 따라 당시 관할 경찰서 담당 과장으로 하여금 국가와 함께 원고들에게 각 200만 원씩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당시 관할 경찰서 담당 과장은 위의 두 사안 외에도 집회 및 시위를 수차례 불법 해산시켰으며, 그 결과 지난해에도 그의 위법한 직무집행에 따른 국가배상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집회의 목적과 밀접하게 관련된 집회장소를 점거한 것은 집회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집회장소를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침해한 것이며, 위법한 해산명령을 여러 차례 반복한 것은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해 집회의 자유 행사를 심리적으로 위축시켰다”고 지적했다. 특히 담당 과장 개인의 손해배상 책임에 대해 “담당 과장은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직무를 현장에서 책임지는 만큼 법률요건과 법리를 충분히 숙지할 직무상 무거운 주의의무가 있었는데도 이를 소홀히 했고, 현장에서 집회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약간만 주의했더라도 쉽게 위법한 결과를 피할 수 있었으므로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대통령 탄핵 상황에서 조직의 불법, 부당한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것을 충성으로 생각하던 공무원과 조직원의 행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관은 시민의 집회 및 시위 자유를 보장하는 직업이지 방해하는 직업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 일이다. 헌법과 법률은 분명 권력자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인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