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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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觀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허구

박정우 감독의 ‘판도라’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6-12-12 14: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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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부산행’이 1000만 명 이상 관객을 모은 원동력 중 하나는 ‘허구’였다. 시체가 벌떡 일어나 뛰고, 넘어지고, 사람을 공격하는 건 허구다. 무섭긴 하지만 ‘부산행’은 메타포이며 알레고리였기에 안전한 위험이었다. 그런데 영화 ‘판도라’는 좀 다르다. ‘판도라’에서 발생한 재앙은 허구지만 어쩐지 개연성 있는 경고처럼 여겨진다. 원자력발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우리 현실이 그 개연성의 바탕이 된다.

    ‘판도라’는 ‘낙후된 원자력발전소(원전)와 지진이 만났을 때’라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연가시’로 재난영화 연출에 잠재력을 인정받은 박정우 감독의 작품이다.

    진도7까지 견디는 내진설계를 했다지만, 지은 지 40년 넘은 원전은 말 그대로 어디가 어떻게 고장 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잠재적 위험요소를 갖고 있다. 2012년 이후 4년여 간의 준비와 후반 작업을 거쳐 관객과 만난 이 영화는 어느새 순수한 허구가 아닌, 가능성 있는 가설이 돼버렸다. 원전 근처에서 진도5 이상의 지진이 ‘진짜’ 발생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올해에만 두 번이나.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저서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세세히 기록한 바 있지만, 방사능 피폭은 상상을 넘어서는 고통스러운 재앙이다. 냄새도, 색깔도, 촉감도 없는 이 무기는 사람 생명을 우습게 앗아간다. 중요한 것은 ‘판도라’ 속 방사능 피폭이나 원전 폭발이 단지 지진이라는 자연재해 탓에 발생하는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 속에서 원전은 무능한 행정가와 경제논리에 눈먼 정치가 사이에서 무방비로 방치돼 있다. 재난에 대한 준비도, 대처도, 매뉴얼도 없다. 물론 컨트롤타워도 없다.

    컨트롤타워 부재 현장은 당연히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리고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우리에게 정부나 컨트롤타워는 감지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재혁(김남길 분)은 이렇게 외친다. 무능하게 대처하고 거짓말로 숨기고는 결국 국민에게 의지한다고, ‘국민, 국민 타령한다’고 말이다. 이마저도 영화적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 더 가깝다. 영화에서 일어난 허구적 참사인데, 어쩐지 현실과 하나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도 삶을 지속하는 원동력은 바로 평범한 시민, 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원전 정직원도 아닌 하청업체 직원에 불과한 재혁이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작지만 큰 영웅으로 제시된다. 물론 이런 제시는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재난영화의 조금은 뻔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황당하기도 하고 조금은 과장되기도 했지만, 사람이 직접 자신을 희생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음을 느끼게 된다. 시스템이 없을 때 세상과 사람을 구하는 길은 사람밖에 없는 것이다.

    박정우 감독과 ‘연가시’에서 만난 인연으로 배우 김명민이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대통령 역으로 우정출연했다. 주인공의 형수로 등장하는 문정희도 ‘연가시’에서 인연을 맺은 배우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정의롭고 책임감 있는 소수로 출연하는 인물들은 사실 재난영화의 클리셰를 고스란히 따라간다. 그러나 사실감을 육박하는 현실의 불만 앞에서 ‘판도라’의 공포는 꽤나 가능성 높은 현실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게 바로 영화 ‘판도라’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을 다시 한 번 보게 만드는 긴장감, 그 측면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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