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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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창세神은 우주거인 ‘미륵’

무당들 노래 통해 ‘창세신화’ 소개 … 제주도에선 ‘도수문장’ 신화 전해져

  •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입력2003-07-10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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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창세神은 우주거인 ‘미륵’

    창세신 미륵이 하늘을 떠받친 채 우주를 창조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창세신화가 없다고들 한다. 우리 신화라고 하면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부터 이야기하는 게 정설처럼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잃어버린 창세신화와 창세신을 찾는다. 왜? 나와 여러분, 우리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우리 신녀(神女)들의 노래에 나오는 창세신화와 창세신을 먼저 소개한다. 신녀는 무당을 뜻한다. 지금은 만신, 단골, 심방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예전에는 신녀로 불렀다. 우리 신화여행에서는 신녀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린다. 신화를 노래하는 여사제라는 뜻에서도 그렇고, 예로부터 부르던 이름을 되찾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왜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가는 길인가? 한마디로 우리 창세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자,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우리에게 창세신화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원래부터 창세신화가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변질되었거나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굿노래 속에 아직까지 천지개벽 신화의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하늘에서는 파란 이슬 땅에서는 까만 이슬



    우리 창세神은 우주거인 ‘미륵’

    중국 창세신 반고(위).멕시코의 거인신 뜨랄록(아래).

    먼저 제주도 큰굿의 첫째 거리인 ‘베포도업침’ 노래부터 들어보자. ‘베포도업침’은 천지개벽에 관련된 많은 신들을 모시는 초감제에서 부르는 노래인데, 우주와 인간세계의 생성과정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 멀리 고대로부터 수천년 동안 문자로 기록되지 않고 오늘에까지 노래에서 노래로 전해져오면서 그 내용이 상당 부분 잊혀지기도 하고 덧붙여지기도 했지만 이야기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 첫머리를 들어본다.

    천지가 혼합이었던 시절 하늘과 땅이 구분이 되지 않아 한 덩어리로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천지가 개벽하니 하늘이 먼저 열리고 땅이 열리고 인간세상이 열렸다.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하늘과 땅 사이에 시루떡같이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날이 시작되니 하늘에서는 파란 이슬 땅에서는 까만 이슬 그 사이에서는 누런 이슬이 생겨 서로 만나 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동쪽 하늘에는 파란 구름 서쪽 하늘에는 하얀 구름 남쪽 하늘에는 빨간 구름 북쪽 하늘에는 검은 구름 가운데에는 누런 구름이 뜨고 흘러내린 물은 바다가 되었다.

    이 노래에서 ‘갑자(甲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는 동양의 시간 단위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태초의 시간을 가리킨다.

    우리 창세神은 우주거인 ‘미륵’

    파란 이슬과 까만 이슬이 서로 만나 물이되어 흐르는 모습.

    세계의 창세신화가 거의 대부분 신기하게도 태초의 혼돈에서 우주가 생겨난다고 하는 데서 일치한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처음에 ‘그저 막막하게 퍼진 듯한 펑퍼짐한 모양’을 한 카오스, 즉 혼돈이 있었다고 한다. 태초의 세상은 ‘형상도 질서도 없는 하나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베포도업침’에서 노래하는 ‘한 덩어리’와 너무도 똑같다. 중국의 창세신화 ‘반고 이야기’에서는 ‘천지의 혼돈스러움이 계란 같았다’고 하여 ‘한 덩어리’의 모양을 ‘우주란(宇宙卵)’으로 묘사했다.

    1927년 벨기에의 수학자 루베이터가 원시 우주는 작지만 온도와 밀도가 매우 높은 우주란으로 응축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우주란이 폭발해서 그 파편들이 은하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수억 년 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폭발이 있은 후에 지금까지도 우주가 모든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자 가모프는 이 생각을 좀더 발전시켰다. 그는 1946년에 우주 폭발 때의 파편의 온도를 계산해냈다. 그는 우주의 기원을 이루는 그 대폭발 이론을 빅뱅(big bang)이론이라고 불렀다. 직관에 가까운 원시적 이미지가 현대과학이 설명하는 우주 형성의 이론과 일치한다는 점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다.

    우리와 가까운 종족인 만주족의 창세신화 ‘천궁대전’에서는 태초의 혼돈 양상이 ‘물거품’으로 표현된다.

    ‘세상에 제일 먼저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먼 옛날 세상은 하늘과 땅이 나뉘지 않은 물거품이었다. 하늘은 물 같고 물 또한 하늘 같았으며, 하늘과 물이 서로 붙어서 물처럼 끊임없이 흐르면서 물거품이 불어나고 많아졌다.’

    만주신화의 ‘물거품’과 우리 신화에 나오는 ‘파란 이슬’ ‘까만 이슬’ ‘누런 이슬’의 ‘이슬’은 거의 같은 이미지다. 그것은 다름아닌 물이다. ‘흘러내린 물은 바다가 되었다’는 마지막 단락을 기억해두자.

    미륵이 하늘과 땅을 떼어내고

    다음으로 ‘창세가’의 첫머리를 소개한다. 손진태의 ‘조선신가유편’에 실린 신녀의 노래다. 1923년 8월12일 함경남도 함흥군 운전면 본궁리에서 큰 신녀 김쌍돌이(68)가 구연한 것인데, 불행하게도 노랫말만 남았다.

    하늘과 땅이 생길 때 미륵님이 탄생한 즉하늘과 땅이 서로 붙어서떨어지지 아니하여하늘이 솥뚜껑 꼭지처럼 도드라지게땅 네 귀퉁이에 구리기둥을 세우고

    드디어, 우리 신화에도 창세신이 등장한 것이다. 미륵이다. 하늘과 땅이 생길 때 미륵이 탄생하여, ‘서로 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하는’ 하늘과 땅을 떼어내어 하늘이 도드라지게 땅 네 귀퉁이에 구리기둥을 세웠다. 구리기둥을 세운 것은 물론 하늘과 땅이 서로 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게다.

    우리 창세神은 우주거인 ‘미륵’

    우주의 창조. 공기의 신 ‘슈’가 하늘의 여신 ‘누트’를 떠받치고 있는 그림으로 이집트의 부테하몬관이 그렸다.

    이집트의 신화에도 미륵과 같은 거인신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치 서로 입을 맞춘 듯이 하늘의 모양을 ‘솥뚜껑 꼭지’와 비슷한 궁륭(穹·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사방이 차차 낮아진 하늘 모양)으로 묘사한다. 하늘의 여신 ‘누트’는 발가락 끝으로 발돋움을 하고 서서 손가락 끝을 대지에 대고 팔다리를 쭉 펴서, 공기의 신인 ‘슈’가 자신의 배를 떠받치게 해 공중에 떠서 하늘 모양을 이룬다. 그런데 너무 높이 솟은 나머지 현기증이 나서 네 발, 즉 하늘의 네 기둥이 된 발을 다른 신이 떠받치도록 해 자신의 배가 궁륭을 이루게 했다고 한다. 창조의 신 ‘라’는 지상에 사는 인간의 세계를 밝혀주기 위해 ‘누트’의 배에 별과 성좌를 박아놓았다.

    제주도의 ‘베포도업침’ 고창학본에는 미륵처럼 하늘과 땅을 떼어내는 거인신 도수문장이 등장한다.

    하늘과 땅이네 귀 깊숙이 떡징같이 눌어네 귀가 한데 합수하니혼합으로 제 이르자천지개벽 도업(都業)으로 제 이르자도수문장이 한 손으로하늘을 쳐받고또 한 손으로 땅 밑을 짓눌러하늘 머리는북쪽 북서쪽으로 도업하고땅의 머리는 북동쪽으로 열립니다.동의 머리는 서의 꼬리서의 머리는 동의 꼬리천팔복이 북서쪽모든 동쪽으로 수성(水聖) 문이 열립니다.이 하늘과 땅 사이에는산도 갈려 납니다물도 갈려 납니다산 밑에는 물이 나고물 밑에는 산이 나고산과 물이 갈립니다.

    똑같이 천지개벽할 때 하늘과 땅을 떼어내는 거인신인데도 이름이 다르다. 미륵과 도수문장, 어느 쪽이 더 옛이야기에 가까울까? 우선 제주도의 ‘베포도업침’ 고창학본에 나오는 도수문장은 강태욱본에서 문수문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강태욱본에서는 하늘과 땅을 떼어낸다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도수문장, 문수문장의 ‘수문장’은 ‘대궐문이나 성문을 지키는 장수’일 가능성이 높다. ‘도(都)’를 지키거나 ‘문(門)’을 지키는 수문장(守門將)일 것이다. 또한 ‘옥황의 도수문장’이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도수문장, 곧 옥황이 미륵과 같은 신격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미륵이 창세신으로 등장하는 함경도의 신화보다 제주도의 신화가 후대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의 이름이 사라지고 신의 직함만 남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일단 미륵을 주인공으로 보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큰 신녀 김쌍돌이는 미륵을 엄청난 거인으로 노래한다.

    하늘 아래 베틀 놓고구름 속에 잉아 걸고들고 짱짱놓고 짱짱짜내어서칡 장삼을 마련하니.

    등거리에 옷감 한 필이 들고, 소매에 옷감 반 필이 든다고 한다. 등거리는 조끼같이 등에 걸치는 옷이다. 미륵의 키를 재보자. 한 필이 125마 가량이고 1마가 90cm니까, 미륵의 등거리를 전체 키 8등신 가운데 2등신에 해당한다고 보면 대략 키가 4만cm라는 계산이 나온다. 보통사람의 250배 크기의 거인이다. 이 큰 키로도 하늘과 땅을 떼어내서 하늘을 떠받치려면 모자랐을 터. 얼마나 더 늘어나야 할까? 변신에도 능했을 것 같다.

    중국의 반고도 똑같이 거인이다

    ‘천지가 개벽하여 밝고 맑은 것은 하늘이 되고 어둡고 탁한 것은 땅이 되었다. 반고가 그 속에서 하루에 아홉 번을 변화하였으니 하늘보다도 신령하고 땅보다도 성스러웠다. 하늘은 날마다 1장씩 높아지고 땅은 날마다 1장씩 두터워지고 반고는 날마다 1장식 커졌다. 이와 같이 1만8000년이 지나니 하늘은 지극히 높아지고 땅은 지극히 두터워졌으며 반고도 지극히 커졌다.’ 지금 1장은 10자(尺)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3.03m에 해당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8자가 1장이었다. 성인 남자의 키를 1장으로 본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키만한 길이를 ‘한 길’이라고 하는데, 그게 바로 1장이다. 반고가 날마다 한 길씩 1만8000년 동안 자랐다니, 도대체 얼마나 커졌다는 이야기인가!? 마지막으로 확인해둘 것은 미륵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티탄족과는 다른 거인신이라는 점이다. 같은 거인신이라 해도, 올림포스의 신들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제우스에게 도전한 죄값으로 하늘을 들고 서 있는 벌을 받은 아틀라스와 다르다. 태양신 ‘라’에게 1년에 한 달도 땅에 눕지 못하는 벌을 받은 하늘의 여신 ‘누트’나 ‘누트’를 떠받치고 있는 공기의 신 ‘슈’와도 다르다.

    그리스신화에서 혼돈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혼돈보다 훨씬 빼어난 자연이라는 신이다.

    ‘신과 다름없는 이 자연은 하늘로부터는 땅을, 땅으로부터는 물을, 무지근한 대기로부터는 맑은 하늘을 떼어놓았다. 넓은 대지는 스스로 생명을 얻어 여신이 되었다. 이 여신이 ‘가이아’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하늘을 하늘의 신 ‘우라노스’로 만들었다.’ 우주거인 미륵은 하늘과 땅을 떼어내고 난 다음 물과 불을 찾아내고 하늘에 청하는 노래를 불러서 인간을 만들고, 인간세상의 이승과 저승을 다스리기 위해 석가와 경쟁하는 창세신인 것이다.

    미륵은 누구인가?

    자,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을 하나 던진다. 미륵은 누구인가? 우주거인으로 나오는 미륵이란 명칭은 불교의 미륵불에서 나왔지만 본래 신의 성격은 우리 창세신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현재 ‘미륵’이라는 이름을 쓰는 신의 본디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창세신화의 우주거인은 누구였을까? 건국신화에서만이 아니라, 무속신화에서조차도 사라져버린 우리의 우주거인! 잃어버린 신과 신화를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나와 우리를 찾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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