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분자기(오분작)는 언뜻 전복새끼와 닮아서 전복과로 혼동하기 쉽다. 500여 가지 제주 음식 가운데, 아니 그보다는 86종의 어패류 중에서도 된장과 가장 궁합을 잘 이루는 조개류는 오직 오분작뿐이다. 또한 외지인의 입맛을 달래는 데는‘오분작 뚝배기’만한 것이 없다. 쌀-보리를 주식으로 하고, 콩장류인 된장을 부식으로 살아온 민족이기 때문이다.
가령 콩알(콩자반)을 젓가락으로 들어올리는 모습을 보고 외국인이 흥미로워할 때 이런 유머쯤을 슬쩍 흘리는 게 어떨까. 이제는 이 젓가락으로 지구를 들어올릴 차례라고. 포크는 찍는 행위지만 젓가락은 이렇게 들어올리는 상생의 원리라고 말이다. 이것이 검약과 절제의 정신이고 자비정신이라고 한다면 제주 음식에 대한 상당한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오분자기와 콩된장의 어울림. 한때 진주식당(조애숙·064-762-5158)은 그 명예가 실추되어 손님이 뜸한 적이 있었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콩된장을 갈무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콩된장만은 조애숙 여사가 꼭 직접 챙긴다. ‘너희 집 장맛 언제 보여줄래’. 적어도 이 말에는 가문의 체통이 걸린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우리 음식 맛은 장맛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독대야말로 생명의 젖줄이다.

조애숙 여사의 말에 따르면 남는 게 별로 없는 장사란다. 서귀포의 오분자기 뚝배기, ‘진주식당’이라는 얼굴 때문에 죽자사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니 된장의 재료가 되는 콩도 직접 구할 수밖에 없고, 콩메주에서 직접 장도 떠내야 좋은 된장을 얻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콩 삶는 날도 이곳의 풍습대로 길일을 택할 수밖에 없단다. 정성이 이만하고 손끝도 이만해야 음식도 맛이 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제주 아낙들이 메주콩을 삶는 날은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것일까. 조씨의 이웃 동네에 사는 여류시인 현주하씨의‘콩 삶는 날’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콩 삶는 날 우리 집은 새벽부터 술렁이고/ 나무도 삭정이는 덜 무른다고 등거리만 모아다 놓고/ 이렁이렁 불빛에 둘러앉아/ 자청비야 익어가는 할머님 옛 이야기/ 제물에 감자도 다라 익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들/ 4·3 항쟁 중천에 목매어 가던 아방들의 얼굴들/ 그날부터 우리 어멍들은 삼다의 한이 열리고/ 비루먹은 몽생이 같은 자식들/ 어깨에 업엉 산으로 이어도 사나/ 바당으로 이어도 사나/ 지아방 지어멍 눈물 삶으며 살아온 이웃들
이처럼 콩 삶는 날엔 제주인들 인고의 어린 삶이 배어 있다. 아무리 절망의 끝이라 해도 장콩을 삶아 장을 뜨고 메주를 내어야만 음식맛을 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주식당의 오분자기는 이처럼 토종된장과 만나 그 입맛을 걸쭉하게 살찌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