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7일 김대중 대통령이 교육관련분야 장관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던진, 이른바 ‘실력 없는 교수 퇴출’발언엔 청년층 실업대책 수립을 지시한 대목도 포함되었다. “학교와 노동시장 간 괴리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 산학협동이 이뤄져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학 교수들의 눈길은 곱지 않다. 교육의 대부분을 사학에 의존한 상황에서 부패 사학재단은 퇴출하지 않은 채 ‘경쟁력 있는 고급인력 양성’을 운위하는 건 언어도단이라는 것이다. 지난 5월10일 전국교수노조(준)가 대통령 발언에 대해 항의 성명을 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학교운영을 둘러싼 설립자와 재단의 전횡, 교비 유용 및 전용, 교직원 채용시 금품수수 등 구조적 비리는 사실 전체 사학의 정체성과 관련한 문제다. 이중 전문대는 사학 비중이 월등히 높은 특성상 각종 비리에 노출되기 쉬운 상황에 놓여 있다.
2001년 5월 현재 전국의 전문대는 158개. 이중 142개가 사립으로 전체의 96%(중-고교 사립 비율 40%, 4년제대 77%)를 점한다. 입학정원도 4년제대(161개교 31만여 명)에 육박하는 29만4000여 명에 이른다(2000년 3월 기준).
“부패에 찌든 상당수 사학재단과 ‘빈 껍데기’뿐인 정부의 전문대 육성책이 맞물려 ‘중견 전문직업인 양성의 요람’이란 전문대의 위상을 뒤흔들고 있다.” 전국전문대학교수협의회연합회 이용구 회장은 “전문대 설립의 목적과 현실이 크게 동떨어져 있다”고 진단한다. 교수 및 교사(시설) 확보율, 재단전입금 확보 면에서 가뜩이나 열악한 사립전문대들이 비리재단에 맞서는 소모적 분규로 학생 수학권(修學權)마저 침해받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전문대가 ‘위기 상황’은 아니다. 실제 전문대 평균 취업률(72%)은 4년제대(53%)를 웃돈다. 또 4년제와 병설된 전문대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전문대엔 비리 사례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립전문대가 ‘부패의 온상’처럼 비치는 건 일부 비리재단들의 부패 행각이 사회문제화하면서 전체 사학의 공신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학생 수 2000∼2400명 가량을 수도권 전문대의 손익분기점으로 친다. 3000명을 넘어서면 돈이 넘친다.” 한 전문대 교수는 “상당수 사학재단이 학생을 학교의 주인이라기보다는 ‘돈지갑’쯤으로 본다”고 토로한다. 게다가 몇몇 설립요건만 갖추면 학교 설립인가 받기가 어렵지 않다 보니 학교를 사업장으로 치부하며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을 쏟는 ‘공익재산의 사익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재단 비리로 진통중인 사립전문대는 대략 10여 곳. 비리를 일삼는 이들 사학재단의 수법은 부패기업 뺨 칠 정도로 심각하다.
지난 99년과 2000년 연이어 비리사학으로 국정감사에 상정된 경문대(평택). 이 학교의 전 재단이사장 J씨(62)는 4년제 K대를 포함 7개 학교(전문대 3개, 고교 3개)를 소유하고도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에서 2개의 대학 설립인가를 받아냈다가 비리가 들통나 취소된 바 있다. 때문에 그는 학교를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학교 장사꾼’ 쯤으로 불린다.
자신이 운영하는 다른 학교의 교비 257억원을 횡령해 경문대 빚을 갚은 사실이 밝혀져 지난 2월 1심 판결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30억원을 선고받은 J씨의 대표적인 교비 빼돌리기 수법은 부담부 증여. 부담부 증여란 말 그대로 부담을 지운 증여를 말한다. 즉 학교에 재산(부동산)을 출연하되, 부동산에 포함된 부채를 학교가 상환토록 하는 부담을 지움으로써 교비를 빼내고 학교에 증여했다는 이유로 합법적으로 증여세까지 면제받는 편법을 썼다는 게 교수들의 주장이다. 그는 자기 소유의 여러 대학 중 특정대학에만 시가 2000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부담부 증여한 의혹도 사고 있다.
경문대측은 또 “J씨가 학생들을 모 통신업체 회원으로 가입시킨 대가로 업체에서 기증받은 PC를 감추고 전산기자재 구입 등에 쓰도록 된 국고지원금마저 빼돌렸다”고 한다. 경문대는 J씨 이전 재단이사장인 심규섭 의원(민주당)의 학교 이중매매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까지 진행중이어서 부패 사학의 전형으로 손꼽힌다.
지난 99년 교육부 종합감사에서 재단비리가 드러나 관선이사 체제로 돌아선 서일대(서울)는 전 재단이사장 L씨로 인해 400여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그의 수법은 자기 소유이거나 교비를 빼돌려 구입한 건물과 토지를 교비로 다시 매입토록 해 비싼 값에 되팔아치우는 것. L씨는 이 수법으로만 136억원을 챙겼다. 이 대학의 2000년도 등록금 수입은 244억원, 재단전입금은 단돈 1000원이었다.
학내 분규에 따른 학사행정 마비로 지난해 6월 교육부 감사 이후 관선이사가 파견된 경인여대(인천)는 아직 구재단측과 일부 교수 간 소송이 진행중이어서 분규의 여진이 남아 있다. 구재단의 수십억원대 공금횡령 의혹을 제기한 이 학교 교수들은 △법인차입금 계상 후 과다 상계 △법인부담비용을 학교비용으로 처리 △재단 관계자 개인사업 관련 비용을 학교비용으로 계상 △연구비, 인건비, 각종 행사비 등 교직원에 대한 지출을 빙자한 허위자금 유출 △교비 지출 공사와 관련한 리베이트를 법인수입으로 계상 또는 누락 △학교회계에서 지출해 구입한 기자재를 국고보조금 지출로 회계조작 △만기된 저축성 보험의 수입 누락 등 ‘백화점식’ 비리수법이 망라했다고 주장한다. 전 경인여대 학장직무대행 이상권 교수(세무회계과)는 “지난 1월 입수한 재단측 공금횡령 명세서를 분석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런 대규모 비리 외에도 상당수 전문대에서 입시(편입학) 부정, 교수(직원) 채용 부정, 교사 신축 공사비 부풀리기, 물품 구매관련 부정, 통학버스-식당-서점 운영상 부정 등 고전적 수법을 동원한 비리 의혹이 인다고 교육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일례로 경기지역 K대의 경우 체육관 건립에 2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공사비를 건축업자와 결탁해 부풀렸다는 의혹을 사고 있고, K대의 모교수는 특채 당시 재단이사장의 친구 아들로 환경분야를 전공하고도 전산계열 교수로 재직하고 있어 동료교수들이 채용비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아주 특이한 사례도 있다. 경기도 이천시에 자리잡은 청강문화산업대학(이하 청강대). 지난 96년 3월 개교한 이 신생 전문대의 평판은, 국내 최초로 개설된 애니메이션과가 신세대 수험생들에게 각광을 받는 등 꽤 좋은 편이다.
하지만 청강대 재단인 학교법인 청강학원(이사장 정희경)은 전문대 설립계획 승인(1993년 2월)시 교육부에 출연을 약속한 기본재산 102억7200여만원 중 10억6600여만원에 대한 출연보고서를 허위로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주간동아’가 입수한 청강학원의 ‘출연재산 현황’ 자료를 토대로 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출연재산 현황을 법인장부 기재사항과 교육부 보고사항으로 대비한 이 자료의 ‘교육부 보고사항’ 비고란엔 청강학원이 지난 96년 8월27일 교육용 기본재산 10억6600여만원의 출연과 관련하여 교육부에 ‘증빙만 보고’했음이 적시되어 있다. 즉 청강학원은 재단설립 주체인 ㈜남양알로에가 출연 명목으로 J투자금융에 예치한 해당금액의 잔액증명만 교육부에 보내 실제 학교법인으로의 출연이 이뤄진 것처럼 보고한 뒤 법인 회계장부엔 기재조차 하지 않은 것. 문제의 돈은 교육부 보고 이후 남양알로에측이 인출해 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학교설립에 참여한 청강대 김봉길 교수(당시 교학처장)는 “교육용 기본재산은 학교시설비 용도로 쓰는데, 교사 신축비가 출연약속 금액보다 10억원 가량 덜 들어 바로 출연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교육부 관계자가 출연재산이 부족하니 일단 잔액증명만 먼저 보내 출연보고를 마치라고 해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교육부측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했다.
그렇다면 제때 출연하지 않은 10억여원은 재출연되었을까. 청강대측은 “출연재산 유용으로 신축 강의동 공사대금이 모자라 97년 남양알로에 계열사인 한국유니베라㈜ 등에게서 10억원 이상의 기부금을 받아 부족한 교육용 기본재산을 보충했다”고 밝히고 있다.
청강대는 설립자 L씨(96년 11월 사망)의 장례비용 중 1900여만원을 교비로 부담한 적도 있다. 이는 당시 장례비 지출명세에 나타난 사실임에도 청강대측은 지난 5월17일 “장례비용 전액을 유족이 부담했다”고 답하다가 다음날 “교비로 부담한 사실이 있지만 유족이 97년 2월 기부금으로 갚았다”고 해명했다. 사립학교법 26조는 학교법인 기본재산 출연(기증)자 중 생계가 곤란한 자에 한해 장례비를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탈법이 있어도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게 교육부의 현실이다. 교육부 양창현 전문대학지원과장은 “몰랐다. 학교설립 초기에 이런 부정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실사할 의무도 없는데다 회계감사를 하기 전엔 모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허위보고 사례를 적발했다면 미출연 금액을 즉각 학교법인으로 환수하는 조치를 취하지만, 청강학원의 경우 2년의 시효가 지나 징계가 불가능하다는 것. 이는 사학의 금전 관련 부정을 미리 견제할 장치가 전무함을 뜻한다.
취재차 만난 청강대의 한 관계자는 “고질적인 부패 사학과 동일시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물론 청강대 케이스가 사학의 ‘부정’치고는 ‘경미’하다고 할 측면도 있다. 그러나 평판이 좋은 전문대에서조차 개교 6개월 만에 이같은 탈법이 있었다는 것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비리를 일삼을 수 있는 한국 사학의 부패 메커니즘을 암시하는 한 본보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원 민주화 쟁취를 위한 사학연대’(이하 사학연대)엔 갖가지 재단비리에 얼룩진 전문대 및 4년제대, 중-고교의 사례들이 모이고 있다. 사학연대 관계자는 “아직 표면화하진 않았지만 A대, Y대, K대, S대 등 몇몇 사립전문대가 학내 분규 발생 조짐을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사학비리는 재단회계에 밝은 ‘내부 고발자’가 없으면 드러나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그럼에도 부패-비리 감시기능을 해야 할 교육부의 감사활동은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최근 몇 년간 국정감사에 제출한 교육부 감사자료를 수집-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 24년간 단 한 번의 종합감사(부분-사안-기강 감사 제외)도 받지 않은 사립대가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사립전문대는 142개 중 89개가 단 한 번의 종합감사조차 받지 않았다. 반면 국-공립 전문대는 16개 중 6개가 종합감사(3개교는 3회 이상)를 받았다. 박거용 연구소장(상명대 교수· 영어교육과)은 “교육부는 일시 가용 감사인력이 2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주기적인 감사가 힘들다고 하지만 부패 방지를 위해 최소 몇 년에 한 번씩이라도 사립전문대 종합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교육부 감사담당관실 관계자는 “교육부 행정감사 규정상 국-공립 대학(교)은 3년의 종합감사 주기가 있으나, 별도 주기가 없는 사립대학(교)의 경우 사안이 있을 때 계통(부분)감사를 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유는 역시 감사인력 부족 문제가 가장 크다”고 답했다.
사학비리 근절은 과연 요원한 난제인가. 교육전문가들은 사학 정책방향이 사학의 자주성 보장과 사학 운영의 공공성 강화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들의 기본시각과 주장이 크게 엇갈려 양자간 균형을 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영철 수석연구위원은 “학교의 학사-인사-재정 운영의 책무성을 강화하고, 설립-경영 주체인 재단과 학사운영 주체인 학교 간 관계를 명확히 하여 학교운영에 대한 재단의 부당한 간여와 간섭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또 “학내에 학교운영에 관한 심의기구를 활성화해 교직원 인사 및 사학재정 운영을 투명화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교육 사기꾼’을 척결할 시점은 이미 무르익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립학교법 개정을 비롯한, 사학재단 부패 방지를 위한 각계의 노력은 아직 가시밭길행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학 교수들의 눈길은 곱지 않다. 교육의 대부분을 사학에 의존한 상황에서 부패 사학재단은 퇴출하지 않은 채 ‘경쟁력 있는 고급인력 양성’을 운위하는 건 언어도단이라는 것이다. 지난 5월10일 전국교수노조(준)가 대통령 발언에 대해 항의 성명을 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학교운영을 둘러싼 설립자와 재단의 전횡, 교비 유용 및 전용, 교직원 채용시 금품수수 등 구조적 비리는 사실 전체 사학의 정체성과 관련한 문제다. 이중 전문대는 사학 비중이 월등히 높은 특성상 각종 비리에 노출되기 쉬운 상황에 놓여 있다.
2001년 5월 현재 전국의 전문대는 158개. 이중 142개가 사립으로 전체의 96%(중-고교 사립 비율 40%, 4년제대 77%)를 점한다. 입학정원도 4년제대(161개교 31만여 명)에 육박하는 29만4000여 명에 이른다(2000년 3월 기준).
“부패에 찌든 상당수 사학재단과 ‘빈 껍데기’뿐인 정부의 전문대 육성책이 맞물려 ‘중견 전문직업인 양성의 요람’이란 전문대의 위상을 뒤흔들고 있다.” 전국전문대학교수협의회연합회 이용구 회장은 “전문대 설립의 목적과 현실이 크게 동떨어져 있다”고 진단한다. 교수 및 교사(시설) 확보율, 재단전입금 확보 면에서 가뜩이나 열악한 사립전문대들이 비리재단에 맞서는 소모적 분규로 학생 수학권(修學權)마저 침해받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전문대가 ‘위기 상황’은 아니다. 실제 전문대 평균 취업률(72%)은 4년제대(53%)를 웃돈다. 또 4년제와 병설된 전문대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전문대엔 비리 사례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립전문대가 ‘부패의 온상’처럼 비치는 건 일부 비리재단들의 부패 행각이 사회문제화하면서 전체 사학의 공신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학생 수 2000∼2400명 가량을 수도권 전문대의 손익분기점으로 친다. 3000명을 넘어서면 돈이 넘친다.” 한 전문대 교수는 “상당수 사학재단이 학생을 학교의 주인이라기보다는 ‘돈지갑’쯤으로 본다”고 토로한다. 게다가 몇몇 설립요건만 갖추면 학교 설립인가 받기가 어렵지 않다 보니 학교를 사업장으로 치부하며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을 쏟는 ‘공익재산의 사익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재단 비리로 진통중인 사립전문대는 대략 10여 곳. 비리를 일삼는 이들 사학재단의 수법은 부패기업 뺨 칠 정도로 심각하다.
지난 99년과 2000년 연이어 비리사학으로 국정감사에 상정된 경문대(평택). 이 학교의 전 재단이사장 J씨(62)는 4년제 K대를 포함 7개 학교(전문대 3개, 고교 3개)를 소유하고도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에서 2개의 대학 설립인가를 받아냈다가 비리가 들통나 취소된 바 있다. 때문에 그는 학교를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학교 장사꾼’ 쯤으로 불린다.
자신이 운영하는 다른 학교의 교비 257억원을 횡령해 경문대 빚을 갚은 사실이 밝혀져 지난 2월 1심 판결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30억원을 선고받은 J씨의 대표적인 교비 빼돌리기 수법은 부담부 증여. 부담부 증여란 말 그대로 부담을 지운 증여를 말한다. 즉 학교에 재산(부동산)을 출연하되, 부동산에 포함된 부채를 학교가 상환토록 하는 부담을 지움으로써 교비를 빼내고 학교에 증여했다는 이유로 합법적으로 증여세까지 면제받는 편법을 썼다는 게 교수들의 주장이다. 그는 자기 소유의 여러 대학 중 특정대학에만 시가 2000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부담부 증여한 의혹도 사고 있다.
경문대측은 또 “J씨가 학생들을 모 통신업체 회원으로 가입시킨 대가로 업체에서 기증받은 PC를 감추고 전산기자재 구입 등에 쓰도록 된 국고지원금마저 빼돌렸다”고 한다. 경문대는 J씨 이전 재단이사장인 심규섭 의원(민주당)의 학교 이중매매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까지 진행중이어서 부패 사학의 전형으로 손꼽힌다.
지난 99년 교육부 종합감사에서 재단비리가 드러나 관선이사 체제로 돌아선 서일대(서울)는 전 재단이사장 L씨로 인해 400여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그의 수법은 자기 소유이거나 교비를 빼돌려 구입한 건물과 토지를 교비로 다시 매입토록 해 비싼 값에 되팔아치우는 것. L씨는 이 수법으로만 136억원을 챙겼다. 이 대학의 2000년도 등록금 수입은 244억원, 재단전입금은 단돈 1000원이었다.
학내 분규에 따른 학사행정 마비로 지난해 6월 교육부 감사 이후 관선이사가 파견된 경인여대(인천)는 아직 구재단측과 일부 교수 간 소송이 진행중이어서 분규의 여진이 남아 있다. 구재단의 수십억원대 공금횡령 의혹을 제기한 이 학교 교수들은 △법인차입금 계상 후 과다 상계 △법인부담비용을 학교비용으로 처리 △재단 관계자 개인사업 관련 비용을 학교비용으로 계상 △연구비, 인건비, 각종 행사비 등 교직원에 대한 지출을 빙자한 허위자금 유출 △교비 지출 공사와 관련한 리베이트를 법인수입으로 계상 또는 누락 △학교회계에서 지출해 구입한 기자재를 국고보조금 지출로 회계조작 △만기된 저축성 보험의 수입 누락 등 ‘백화점식’ 비리수법이 망라했다고 주장한다. 전 경인여대 학장직무대행 이상권 교수(세무회계과)는 “지난 1월 입수한 재단측 공금횡령 명세서를 분석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런 대규모 비리 외에도 상당수 전문대에서 입시(편입학) 부정, 교수(직원) 채용 부정, 교사 신축 공사비 부풀리기, 물품 구매관련 부정, 통학버스-식당-서점 운영상 부정 등 고전적 수법을 동원한 비리 의혹이 인다고 교육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일례로 경기지역 K대의 경우 체육관 건립에 2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공사비를 건축업자와 결탁해 부풀렸다는 의혹을 사고 있고, K대의 모교수는 특채 당시 재단이사장의 친구 아들로 환경분야를 전공하고도 전산계열 교수로 재직하고 있어 동료교수들이 채용비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아주 특이한 사례도 있다. 경기도 이천시에 자리잡은 청강문화산업대학(이하 청강대). 지난 96년 3월 개교한 이 신생 전문대의 평판은, 국내 최초로 개설된 애니메이션과가 신세대 수험생들에게 각광을 받는 등 꽤 좋은 편이다.
하지만 청강대 재단인 학교법인 청강학원(이사장 정희경)은 전문대 설립계획 승인(1993년 2월)시 교육부에 출연을 약속한 기본재산 102억7200여만원 중 10억6600여만원에 대한 출연보고서를 허위로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주간동아’가 입수한 청강학원의 ‘출연재산 현황’ 자료를 토대로 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출연재산 현황을 법인장부 기재사항과 교육부 보고사항으로 대비한 이 자료의 ‘교육부 보고사항’ 비고란엔 청강학원이 지난 96년 8월27일 교육용 기본재산 10억6600여만원의 출연과 관련하여 교육부에 ‘증빙만 보고’했음이 적시되어 있다. 즉 청강학원은 재단설립 주체인 ㈜남양알로에가 출연 명목으로 J투자금융에 예치한 해당금액의 잔액증명만 교육부에 보내 실제 학교법인으로의 출연이 이뤄진 것처럼 보고한 뒤 법인 회계장부엔 기재조차 하지 않은 것. 문제의 돈은 교육부 보고 이후 남양알로에측이 인출해 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학교설립에 참여한 청강대 김봉길 교수(당시 교학처장)는 “교육용 기본재산은 학교시설비 용도로 쓰는데, 교사 신축비가 출연약속 금액보다 10억원 가량 덜 들어 바로 출연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교육부 관계자가 출연재산이 부족하니 일단 잔액증명만 먼저 보내 출연보고를 마치라고 해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교육부측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했다.
그렇다면 제때 출연하지 않은 10억여원은 재출연되었을까. 청강대측은 “출연재산 유용으로 신축 강의동 공사대금이 모자라 97년 남양알로에 계열사인 한국유니베라㈜ 등에게서 10억원 이상의 기부금을 받아 부족한 교육용 기본재산을 보충했다”고 밝히고 있다.
청강대는 설립자 L씨(96년 11월 사망)의 장례비용 중 1900여만원을 교비로 부담한 적도 있다. 이는 당시 장례비 지출명세에 나타난 사실임에도 청강대측은 지난 5월17일 “장례비용 전액을 유족이 부담했다”고 답하다가 다음날 “교비로 부담한 사실이 있지만 유족이 97년 2월 기부금으로 갚았다”고 해명했다. 사립학교법 26조는 학교법인 기본재산 출연(기증)자 중 생계가 곤란한 자에 한해 장례비를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탈법이 있어도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게 교육부의 현실이다. 교육부 양창현 전문대학지원과장은 “몰랐다. 학교설립 초기에 이런 부정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실사할 의무도 없는데다 회계감사를 하기 전엔 모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허위보고 사례를 적발했다면 미출연 금액을 즉각 학교법인으로 환수하는 조치를 취하지만, 청강학원의 경우 2년의 시효가 지나 징계가 불가능하다는 것. 이는 사학의 금전 관련 부정을 미리 견제할 장치가 전무함을 뜻한다.
취재차 만난 청강대의 한 관계자는 “고질적인 부패 사학과 동일시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물론 청강대 케이스가 사학의 ‘부정’치고는 ‘경미’하다고 할 측면도 있다. 그러나 평판이 좋은 전문대에서조차 개교 6개월 만에 이같은 탈법이 있었다는 것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비리를 일삼을 수 있는 한국 사학의 부패 메커니즘을 암시하는 한 본보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원 민주화 쟁취를 위한 사학연대’(이하 사학연대)엔 갖가지 재단비리에 얼룩진 전문대 및 4년제대, 중-고교의 사례들이 모이고 있다. 사학연대 관계자는 “아직 표면화하진 않았지만 A대, Y대, K대, S대 등 몇몇 사립전문대가 학내 분규 발생 조짐을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사학비리는 재단회계에 밝은 ‘내부 고발자’가 없으면 드러나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그럼에도 부패-비리 감시기능을 해야 할 교육부의 감사활동은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최근 몇 년간 국정감사에 제출한 교육부 감사자료를 수집-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 24년간 단 한 번의 종합감사(부분-사안-기강 감사 제외)도 받지 않은 사립대가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사립전문대는 142개 중 89개가 단 한 번의 종합감사조차 받지 않았다. 반면 국-공립 전문대는 16개 중 6개가 종합감사(3개교는 3회 이상)를 받았다. 박거용 연구소장(상명대 교수· 영어교육과)은 “교육부는 일시 가용 감사인력이 2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주기적인 감사가 힘들다고 하지만 부패 방지를 위해 최소 몇 년에 한 번씩이라도 사립전문대 종합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교육부 감사담당관실 관계자는 “교육부 행정감사 규정상 국-공립 대학(교)은 3년의 종합감사 주기가 있으나, 별도 주기가 없는 사립대학(교)의 경우 사안이 있을 때 계통(부분)감사를 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유는 역시 감사인력 부족 문제가 가장 크다”고 답했다.
사학비리 근절은 과연 요원한 난제인가. 교육전문가들은 사학 정책방향이 사학의 자주성 보장과 사학 운영의 공공성 강화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들의 기본시각과 주장이 크게 엇갈려 양자간 균형을 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영철 수석연구위원은 “학교의 학사-인사-재정 운영의 책무성을 강화하고, 설립-경영 주체인 재단과 학사운영 주체인 학교 간 관계를 명확히 하여 학교운영에 대한 재단의 부당한 간여와 간섭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또 “학내에 학교운영에 관한 심의기구를 활성화해 교직원 인사 및 사학재정 운영을 투명화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교육 사기꾼’을 척결할 시점은 이미 무르익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립학교법 개정을 비롯한, 사학재단 부패 방지를 위한 각계의 노력은 아직 가시밭길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