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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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서 살살 녹는 건강식

  • 시인 송수권

    입력2005-03-21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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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안에서 살살 녹는 건강식
    홍합은 ‘자산어보’에 담채(淡菜)로 기록되어 있다. ‘본초강목’에서도 각채(殼菜) 또는 동해부인(東海夫人)으로 표기한 것을 보면 갯바위에 붙어 사는 담채류의 한 서식종임을 알 수 있다. 예봉(銳峯) 밑에 더부룩한 털이 있으며 수백, 수천 마리가 해안절벽에 군생한다. 껍질의 빛깔은 흑진주처럼 반들거리고 새까맣다. 살의 빛깔은 붉거나 희다. 맛은 백합향에 가깝고 감미롭다. 백합이 뻘을 먹고 향을 밴다면 홍합은 소금기의 바닷물을 먹고 향을 밴다.

    ‘자산어보’에선 콧수염을 뽑을 때 피가 나는 사람은 홍합의 수염을 불로 태워서 그 재를 바르면 낫는다고 하여 지혈작용제로 그 효능을 말하고 있다. 또 음부(淫部)에 상한(傷寒)이 생길 때도 불로 따뜻이 하여 그 재를 귀밑에 바르면 특효하다고 했다. ‘일화자본초’(日華子本草)에서도 그 형상은 기이하나 아주 사람에게 이롭다고 그 효능을 밝히고 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건강식
    홍합의 또 다른 종류로 소담채(小淡菜)와 적담채(赤淡菜)도 있다. 섬지방에서는 담치라 부른다. 담치류가 많은 절벽 밑에 돔떼가 모여드는 것도 이 맛과 향 때문이다. 서해안에서 꽃게를 내황후(內黃侯), 횡횡거사(橫橫居士), 서호판관(西湖判官)이라 부른 데 비해 ‘본초강목’의 동해부인은 음식에서 말하는 유감주술(類感呪術)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그 모양새가 꼭 ‘그것’과 같아서다. 더구나 맑은 물 속에 비친 홍합은 그 빛깔의 곱기가 일품이다.

    홍합음식은 서구에서도 각광받지만 서울에서는 대학로의 ‘張’(02-742-4788)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홍합찹쌀죽(뚝배기 1인분 1만2000원)과 홍합오븐구이(한 접시 1만원)에서 돋아나는 향과 맛은 입안에서부터 목까지 감칠맛이 착 달라붙는다. 뱃속이 꼬르륵거릴 때 그 약효 때문에 국정홍보처에 나가는 박상건 시인이 잘 가는 집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연극인, 무용가 등 예술가와 연예인, 의사, 교수 등 ‘전문일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한다.

    서구적 간판들로 가득 차 있는 대학로 한가운데 단 한 글자의 한문인 초록색 ‘張’(대표 지영랑·48)은 퍼뜩 시선을 끈다. 가정집처럼 층층이 놓인 화분을 지나쳐 현관을 들어서면 우아하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문을 연 지 14년째인 ‘張’은 홍합찹쌀죽이나 오븐구이로도 유명하지만 봄베이카레(1인분 7500원)와 순이탈리아식 스파게티(1인분 7500원)로도 유명하여 퓨전시대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건강식
    또 신세대의 입맛을 겨냥한 스파게티 피자(2인분 1만6000원)가 개발식품으로 놓여 입맛을 돋우고 있다. 카레는 순인도식 향을 한국인의 취향인 은은한 향에 맞도록 마늘 생강 코코넛 등을 배합한 노하우가 뛰어나다. 홍합찹쌀죽은 홍합과 찹쌀, 허브, 백포도주를 넣고 끓인, 이탈리아식 조리 기법을 접목한 것이다. 스태미너 음식인 홍합찹쌀죽은 피곤에 지친 위장을 달래기에 좋은 영양식이다. 홍합은 또 숙취에 효능이 탁월하여 오븐구이와 해물볶음의 국물은 술안주로서도 그만이다.

    특히 홍합구이는 일반적으로 국물에 소주를 마시는 것이 해안지방의 생활양식인데, 이것을 도시인의 취향에 맞추어 맥주나 와인에 곁들일 수 있도록 고급안주로 개발한 품목이다. 이 맛의 비밀은 허브 계통의 향료와 백포도주로 속살을 양념해 1500도가 넘는 오븐에서 순간적으로 뒤집는 이탈리아식 정통 요리법을 이용한 데 있다. 홍합구이와 함께 여러 해물과 홍합 속살을 뚝배기에 넣고 토마토 소스로 볶는 해물볶음 또한 독특하다. 점심시간에는 지영남씨가 직접 나와 맛있는 홍차 한 잔을 대접하기도 한다.

    서울 동숭동 샘터사 건물 뒷골목에 들어서서 조금 올라가면 왼쪽에 커다란 주차장이 나오는데, 초록색 간판의 ‘張’은 바로 그 주차장 왼쪽 너머에 있다. 홍합찹쌀죽과 스파게티, 홍합오븐구이와 카레, 신세대와 스파게티 피자, 서구식(西區食)과 전통식(傳統食)의 만남은 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張’의 각별한 애착과 노력이란 점에서 그 값을 높이 매길 만한 사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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