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씨는 그동안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에 재학중인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머물면서 국내 언론의 관심을 피해왔다. 만일 이재용씨가 현재 서류 상으로만 ‘삼성전자 부장’으로 되어 있는 상태에서 삼성전자의 정식 이사로 선임된다면 이건희 회장의 후계 구도가 전면화하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일종의 정면승부 방식이다.
국세청 삼성 압박 모종의 조치와 연관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 역시 “1월 중순 이후 여러 가지 방면에서 국세청의 태도가 변화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국세청은 그동안 ‘과세의 근거가 없다’는 원론적 입장을 반복해왔다. 참여연대측은 책임있는 국세청 고위관계자로부터 ‘좀 기다려 달라’는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전달받고 이재용씨와 국세청에 대한 공격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좀 기다려 달라’는 국세청의 메시지는 이재용씨의 편법 승계와 변칙 증여에 대한 모종의 조치가 임박했을 수도 있음을 나타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도 “한편으로는 국세청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면서 한편으로는 더욱 강도 높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안팎의 상황이 맞물려 삼성측으로 하여금 ‘삼성전자 이사 기용’이라는 방식으로 이재용씨 문제에 관한 승부수를 띄우게 되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사장단 인사를 포함해 주요 임원 인사를 주총에 앞서 발표하던 대기업들이 소액주주들의 비판을 의식해 주총 당일에야 공개한다는 방침이어서 주총 당일까지는 ‘이재용 이사설’에 대해 아무도 확실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형편. 하지만 이와 관련해 삼성 관계자는 “19일 이후 주주총회 안건을 포함한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해 머지않아 이재용씨 이사 선임 여부 등을 포함한 승계 구도가 어느 정도 가시화할 것임을 암시했다.
그러나 이씨가 공식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서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한둘이 아니다. 이재용씨의 이사 승진이 이건희 회장 후계구도의 전면화를 의미하는 만큼 이에 따른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삼성 내부에서도 이재용씨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해 ‘한번쯤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대두하는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재용씨의 증여세 포탈 문제에 대한 해법과 관련해 강온양론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넘어가자’는 주장과 ‘인정해 보았자 우리만 피해볼 것’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후자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전자의 주장은 이재용씨 편법 증여에 관한 비난 여론이 고조되면서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이재용씨의 경영 일선 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이재용씨도 삼성측의 편법 증여 등 일련의 조치가 자신에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한 적이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이러한 주장은 이재용씨의 최측근들에게서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

한편 이재용씨가 이사로 선임된다고 하더라도 기존 이사들과는 뭔가 다른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게 삼성 주변의 관측이다. 이를테면 다른 사업부문의 인수 합병이나 e비즈니스 전략 수립 등 이재용씨가 미국 유학 생활과 e삼성 등을 통해 쌓아온 그만의 ‘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에서 업무가 주어질 것이라는 전언이다. 이씨 본인도 과거의 아날로그식 경영인과는 다른 ‘디지털 경영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것. 게다가 이씨는 미국 유학 생활 중에서도 이 분야의 국제적 인사들과 적지 않은 교분을 쌓아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또 다른 부분 중 하나는 이재용씨가 사실상 대주주 역할을 하고 있는 e삼성의 진로다. 그러나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에서 이재용씨와 관련한 e삼성 창립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신응환 이사도 지난해 연말 e삼성 인터내셔널 대표자리를 그만두고 소속사를 삼성 SDI(구 삼성전관)로 옮긴 상태. e삼성 인터내셔널측은 “신이사가 e삼성을 떠나 ‘본관’쪽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재무팀 소속의 신응환 이사가 가끔씩 사무실에 들를 뿐이며 외부에서 별도의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e삼성은 최근 초반에 벌여놓았던 다양한 아이템을 추스르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뒤 사업 규모를 일부 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씨와 관련해) 여러가지 사업 구도는 잡아놓았지만 뚜렷한 사업 성과를 낼 만한 아이템이 많지 않아 정비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재용씨가 삼성전자 이사 자격으로 경영 일선에 등장한다면 e삼성 등 핵심적인 e비즈니스 계열사들과 연계해 삼성전자에서 일정한 사업 분야를 맡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아직 삼성 내에서도 이재용씨의 등장과 관련해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 않은 만큼 주총 당일까지 방법론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씨가 학업을 모두 마치고 ‘준비된 경영자’로서 그룹 전면에 등장하더라도 여태까지의 과정을 보면 ‘상처뿐인 영광’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삼성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