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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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화신, 화려한 컴백

  • 입력2005-12-23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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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의 화신, 화려한 컴백
    맥베스가 권력욕을 이기지 못해 덩컨왕을 살해하는 순간 그는 이런 외침을 듣는다. “더 이상 잠을 못 잔다! 맥베스는 잠을 죽였다.” 악을 행하는 사람이 그 악행으로 말미암아 숙면의 기쁨을 영원히 빼앗긴다는 유명한 말이다. 그리고 결국 맥베스는 휴식할 수 없는 자신의 삶에 절망하고, 맥베스 부인은 씻을 수 없는 손의 핏자국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린다.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긴 잠옷을 끌며 촛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다니는 맥베스 부인의 모습. 허공에 손을 씻으며 절망적으로 자신의 죄악을 발설하는 이 몽유병 장면은 맥베스의 욕망을 부추기는 세 마녀의 그로테스크한 장면들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의 지배적 이미지이리라.

    화제작 시리즈의 하나로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레이디 맥베스’(5월20일~6월18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는 이 몽유병 장면으로 시작된다. 지옥의 개의 눈빛처럼,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개의 푸른 조명으로 시작하는 연극에서 맥베스 부부의 죄악은 이미 일어났다. 신경쇠약에 빠진 맥베스 부인(서주희), 그녀의 꿈 속에 나타나 기억의 길을 열어나가는 그녀의 죄의식이 연극의 주인공이다. 맥베스 부인은 최면술에 걸린 듯 전의의 심리치료에 응해 자신의 죄를 처음부터 끝까지 되돌아본다. 시간은 처음부터 다시 흐르고, 전의(정동환)는 맥베스이기도, 마녀이기도 하다.

    이 공연은 98년 1월의 첫 공연과 99년 가을 서울연극제 참가에 이어 세번째 올려지는 공연이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으로 옮겨 공연되는 이번 공연은 점점 더 강해져 가는 물체극의 요소를 느끼게 한다. 천을 씌운 나무판에 진흙을 던져 사람의 뼈다귀 형상을 그리고, 그것을 칼로 찢어 왕의 살해를 재현하는 장면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강렬하다. 거기에 이번에는 얼음을 깎아 사람 모습을 만들고 그것을 찍어내려 부숴버리는 행위가 첨가되었다. 얼음조각은 맥베스 부인이 자기 손을 찍는 도구가 되고, 흘러내려 물이 된다. 강물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보는 레이디 맥베스, 양심은 뱀이 되어 그녀의 목을 휘감는다.

    무대미술을 맡은 이영란의 물체극은 밀가루, 진흙, 얼음, 형체 없는 물질들로 형체를 만들어 강렬하고 충격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물질들의 변신은 이 연극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공명의 4인조 음악, 음향과 함께 물질들이 형상화하는 이미지들은 관객의 원초적 감각을 자극하며 눈과 귀로 엄습해 들어온다.



    이 연극에서 레이디 맥베스는 상당히 한국적으로 채색되어 있다. “자식을 잃으면 세상을 다 잃는 법”이라며 자식의 죽음과 부재를 강조하는 레이디 맥베스. “남자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과정을 즐기지만 여자는 남자가 쟁취한 권력 그 자체를 즐긴다”는 그녀의 모습은 언뜻 얼마 전의 ‘옷로비 사건’을 떠올리게도 한다.

    죄의식을 닦을 수 없어 죽어가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부인과는 달리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 부인이 정화되어 순결한 상태로 죽는 것을 허락한다. 던지고, 찌르고, 깨부수는, 한판 굿과 같은 기억의 여행 끝에 그녀는 마침내 편안한 잠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모호한 말로 삶의 비밀을 캐는 셰익스피어의 모습보다는, 우리 몸의 더러움을 씻어내 아름다움을 되찾으려는 역사적 인간의 몸부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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