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찍이 2년 전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서 세계최강 이창호 9단을 상대로 파죽의 2연승을 거둬 세계를 놀라게 하고도 이후 내리 3연패를 당해 ‘소년 챔프의 꿈‘을 접어야 했던 이세돌 3단에게 이번 후지쯔배 준결승은 벼르고 별렀던 설욕전이었다. 마치 터키전에서 시작 휘슬과 동시에 한 골을 허용한 한국 축구처럼 초반 포석에서 이창호 9단의 실리작전에 말려 힘든 국면을 꾸려나가야 했던 이세돌 3단은, 그러나 상대가 지나치게 ‘빨대작전‘으로 일관한 데 힘입어 중반 이후 반격의 기틀을 잡았다. 백1로 건너붙인 수에 흑‘가‘로 후퇴하지 않고 2로 즉각 응했다. 방심하고 있다는 증거. 백3과 흑4를 교환한 뒤 백5에 붙이고 7로 끼울 때까지만 해도 다들 백9의 기막힌 한 수를 생각하지 못했다. 흑8의 단수에 그저 백‘나‘에 있겠거니 여겼는데 백9가 떨어졌다.

주간동아 344호 (p8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