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1일 지방선거 투표 종료 직후 열린우리당 상황실에서 선거 참패 예측 보도를 보며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열린우리당 지도부.
우리당이 정계개편 국면에 접어들면서 ‘춘추전국시대’의 막이 올랐다. 각 계파들은 자신들의 구상을 봇물처럼 쏟아냄으로써 그야말로 정계개편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를 활짝 열었다.
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가 스타트를 끊었다. 그는 11월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새 아침론’을 거론하면서 ‘통합신당’을 공식화했다.
우리당은 최근 의원총회에서 갑론을박 끝에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인 12월9일까지 당의 진로와 정계개편 방향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 책임 있게 당론을 수렴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별로 없다.
현재 당내는 ‘통합신당’과 ‘재창당’의 두 기류로 나뉜다. 하지만 두 기류 속에서 각각 세력의 주체 및 응집하는 방식 등에 따라 핵분열이 일어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결국 정치판은 내년 3, 4월까지 시계(視界) 제로의 정계개편 국면을 헤매면서 계파 간 치열한 주도권 쟁탈전을 지속할 전망이다.
주도권 노리는 GT·DY
당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김근태(GT), 정동영(DY) 현·전 의장 간의 ‘연합전선’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최근 당내에서는 ‘김근태·정동영 합의→친노세력의 전당대회 추진 명분 제거→선도탈당그룹 견제 등 통합신당 창당’ 순서의 시나리오가 흘러나온다. 김근태·정동영 연대를 중심으로 잡고 친노 진영을 위축시켜 통합신당을 성사시키겠다는 의도다.
당내 DY계는 30∼40명, GT계는 20명 안팎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연합전선을 펼쳐 정계개편의 구심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GT 측에서는 유선호·최규성·문학진 의원, DY 측에서는 이강래 의원을 중심으로 물밑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
민평련 측의 한 관계자는 “당내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GT와 DY밖에 없다. 통합신당을 만들더라도 우리당 중심의 정계개편을 도모하려면 이들이 뭉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즉, 당장 논란이 되고 있는 전당대회 개최 여부와 시기 등을 결정하고 질서 있는 ‘헤쳐 모여’를 위해 당헌, 당규 개정 등을 추진할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우리당 주도로 정계개편의 논의를 이끌어가려면 무엇보다 ‘선도탈당 그룹’을 막아내는 역할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무현과 DJ 연합전선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전격 회동이 정계개편 논의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통합신당에 반발하는 그룹들은 당장 ‘영호남 화합 신당’을 제기했다. 여당 내 영남권 대표주자인 김혁규 의원은 “향후 정계개편은 김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이 중심이 되는 영호남 화합의 신당 창당을 목표로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무현-김대중 회동’에 가장 고민스러운 계파는 민주당과 고건 전 총리가 아닐까 싶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양자 회동 직후 “노 대통령이 워낙 어려우니까 김 전 대통령의 호남 지지층을 활용하려는 정치적 계산”이라면서 “한마디로 노 대통령의 여당 집안 단속용”이라고 깎아내렸다. 11월2일 ‘신당 창당’을 선언한 고건 전 총리 역시 ‘떨떠름’하기는 마찬가지.
고 전 총리의 한 핵심 측근은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 모두 고 전 총리가 범여권의 대표주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귀띔했다. 이 측근은 “고 전 총리의 신당 창당이 성공할 경우 누가 가장 피해를 보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당분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강력한 협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도세력 통합을 주장하는 고 전 총리가 ‘비(非)노·비(非)DJ’ 노선을 확립한 순간이다. 전·현직 두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기색깔 찾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고 전 총리의 지역적 기반이 호남인 만큼 DJ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살아 있는 권력’인 노 대통령의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그럼에도 고 전 총리는 전·현직 대통령과 각을 세울 경우 범여권 통합에 훨씬 더 넓은 스펙트럼을 차지하게 된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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