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3월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들러 조계사 불자 10여명과 함께 108배를 올리고 있다.3월25일 서울 영등포 열린우리당 당사에서 상임중앙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정동영 의장.3월25일 오후 민주당 사무처 당직자들이 조순형 대표에게 구국의 결단을 내려줄 것(사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부터).
총선과 대선 행보가 뒤섞인 이들의 신경전은 격렬하다. 관전자들로서는 이들의 불꽃 튀는 레이스가 싫지 않다. 이들의 등장으로 ‘4·15’총선이 한층 더 박진감 있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효과 5%?…TK 우호 분위기
박대표의 총선 코드는 ‘감성’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에다 ‘박정희’ 향수까지 비벼넣은 이 코드는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손색이 없다. 감성코드를 선점한 정의장이 어색할 정도다. 정의장의 트레이드마크인 감성전략을 박대표가 선택한 이유는 그만큼 사정이 급박하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감성을 통한 대중접근 방식은 단기간에 가시적 효과를 내는 데 유리하다.
취임 후 조계사를 찾아 3000배를 올리자는 기획은 박대표의 대표적인 감성전략 가운데 하나였다. ‘3000’은 불교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의미로 통용된다. 박대표는 3000배를 통해 한나라당의 과거 부패를 참회하려 했다. 한나라당의 비전과 희망도 3000배를 통해 제시하려 했다. 그러나 3000배에 뒤따르는 육체적 후유증을 잘 알고 있는 조계사 주지 지홍 스님이 “큰일을 하실 분인데 무리인 것 같다”고 막고 나서 3000배 이벤트는 수포로 돌아갔다.
박대표에게 선친 ‘박정희’는 계승과 극복의 대상이다. ‘박정희’는 오늘의 박근혜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많은 국민들은 박근혜를 통해 ‘박정희’의 카리스마를 찾았다. 독재와 유신 등 굴곡과 부정으로 채색된 아버지를 부정하지 않는 배경이다. 대표 취임 후 당내 한 인사가 “아버지와 선을 긋자”는 주장을 제기했을 때다. 박대표는 “차라리 대표를 그만두지…”라는 표정으로 맞섰다고 한다.
박대표의 또 다른 총선 코드인 경제살리기도 굳이 따지자면 선친에게서 정치를 배운 산물이다. 5·16 군사쿠데타 당시 사관학교 교수로 있다 생도를 이끌고 지지대열에 합류했던 K씨(예비역 장군)의 말이다.
“영부인역을 맡은 70년 중반 박대표는 밤낮으로 ‘경제, 경제’ 하는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봤다. 정치는 곧 경제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느긋한 정동영 민생행보 일단 숨고르기
3월 24일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그러나 박대표가 마주한 정치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임시전당대회 명칭에서 드러나듯 박대표는 6월 정기전당대회까지 시한부 대표다. 지도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는 셈이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지지율은 생각보다 상승 움직임이 둔하다. ‘현장’에서는 예상만큼 ‘박근혜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론조사기관은 박근혜 효과가 5%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영남, 특히 TK지역에 한정된 표심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이런 평가는 개헌 저지선인 100석도 건지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으로 이어진다. 박근혜 체제 일주일을 지켜본 당 외곽조직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브랜드에 목을 매는 것은 위험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박대표는 무엇보다 탄핵민심을 되돌려야 하지만 마땅한 수단이 없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조용히 지켜봐야 한다”는 게 박대표 입장이지만, 국민들은 그런 소극적인 자세에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눈치다. 마음은 바쁜데 몸은 따라주지 않는 형국이다.
정동영 의장이 3월28일 대전 오페라웨딩홀에서 열린 `민주수호 민생안정 선거위원회` 출범식 중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된 장향숙 중앙위원의 손을 잡고 있다.
정의장의 지난 ‘2개월’은 민생투어로 집약된다. 노란 점퍼를 입고 재래시장과 과수농가, 기업현장 등을 쉴새없이 누비고 다닌 그의 역동적인 모습은 새로운 정치를 갈구하는 유권자들을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2월 말 1500여명의 전국 상인 대표자들을 국회로 불러모아 ‘눈물의 축제’를 연 것은 대표적인 민생투어의 성공사례로 볼 수 있다. 당시 전국 재래 시장상인 대표들은 ‘정의장만 믿겠다’는 깊은 신뢰를 보냈다. 정의장의 릴레이 재래시장 방문은 이런 신뢰가 바탕에 깔렸다. 당내 젊은 인사들과 당직자들조차 정의장의 발빠른 움직임과 의욕에 혀를 내두른다.
3월25일 정의장은 강행군하던 민생행보를 접었다. 평소 ‘분’ 단위로 스케줄을 짜 움직이던 그의 우보(牛步)는 당연히 눈길을 끌었다. 측근들이 분석한 정의장의 우보는 두 가지 의미를 띠고 있다. 우선 지지율이 급상승한 후 당지도부를 안정화하고 20여일 남은 총선기간의 막판질주를 위한 호흡조절이라는 것. 중첩되는 박대표의 민생 및 이벤트 행보에 대한 차별화 전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정의장은 박대표의 벤치마킹이 영 걸리는 듯한 표정이다. 한 측근은 “그 많은 전략 중 하필…”이라며 박대표의 민생행보에 마땅치 않은 반응이다.
정의장은 가급적 박대표를 피하려 한다. 박대표가 “대표회담을 하자”며 손을 내밀자 “탄핵안 가결부터 먼저 사과하라”고 손을 뿌리쳤다. 3월25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매일경제신문 창간 기념식 참석계획을 바꿔 불참한 것도 박대표와의 조우를 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YTN 주최 5당 대표 토론회 불참도 같은 맥락이다. 정의장측은 “박대표를 상대하는 것은 박대표를 키워주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철저하게 무시하는 것이 전략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회동은 피하지만 잽은 아끼지 않는다. 정의장은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박대표가 한나라당을 어떻게 계승할지, 본인이 적극 동참한 ‘의회 쿠데타’에 대한 입장과 철학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총선과 대권 레이스 연계 불꽃 튀는 경쟁
정의장은 앞으로 민생투어의 콘텐츠를 상당 부분 바꿀 계획이다. 지금까지의 민생투어가 구호와 홍보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민생과 정책에 접목시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것. 여당대표만이 할 수 있는 책임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과 공약으로 묶어내는 작업이다. 그렇다고 정치적 공세의 끈을 늦추는 것은 아니다. 정의장은 탄핵규탄과 민주수호의 의지를 민생투어 곳곳에 담을 계획이다. 이른바 탄핵세력에 대한 심판론이다.
1월10일, 우리당 지지율은 20.7%(R&R 조사)로 3당 가운데 3위였다. 그러나 다음날 전당대회를 통해 정의장이 등장한 뒤 26.3%(12일 폴엔폴 조사)로 급상승했다. 여기에 탄핵 후폭풍이 가세하면서 당 지지도가 45%대를 맴돌고 있다. 정의장의 총선행보는 이 지지도를 ‘굳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대운이 들고 있는 형국이지만 정의장도 부담은 있다. 우선 대승 분위기에 대해 “우리당이 잘해서가 아니다”고 지적한다. 탄핵 후폭풍이 야당을 덮쳤고, 그 반사이득을 취했다는 주장에 정의장이 “아니다”며 내밀 수 있는 카드가 사실 마땅치 않다. 야당은 이런 허점을 파고들고 유권자들은 언제 양비론으로 돌아설지 모른다. 지도체제에 대한 문제제기도 숨은 복병이자 악재임이 틀림없다. 당 내부에서는 당지도부를 ‘불안한 동거’로 규정하는 사람이 많다. 대안이 없어 참고 있지만 총선이 끝난 뒤 필연적으로 당의 노선과 관련해 정의장과 생각을 달리하는 측의 반격이 뒤따를 것이라는 지적이다.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이라는 정의장의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고,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판을 몰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부딪치는 이 두 갈래 목소리는 총선 후 우리당 내부의 권력투쟁을 예고한다. 정의장의 굳히기냐, 박대표의 뒤집기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역전을 노리며 뒤늦게 뛰어든 민주당 추위원장도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별도기사 참조). 막 오른 한글세대 3인방의 1라운드 레이스가 불꽃을 튀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