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급 스트라이커 부대원과 장비를 싣고 신속히 기동하는 초고속수송함. 쌍동선인 이 배는 정면에서 보면 모양이 특이하다(작은 사진).
미국의 대북정책을 정리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포기함으로써 통치권을 인정받고 리비아를 부흥시킬 기회를 잡은 카다피와 대량살상무기 보유 의혹(미국의 철저한 조사에도 1년이 다되도록 발견되지 않았다)을 사 전쟁을 불러들이고 통치권마저 빼앗긴 후세인 모델 중에서 김정일의 운명은 어느 쪽에 가까울 것인가. 아니면 김정일은 정권을 빼앗기지도, 미국의 침공도 받지 않는 ‘제3의 길’을 개척해낼 수 있는 것일까.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국내의 많은 언론은 미국의 체니 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이라크 침공을 주장한 ‘매파’이고 파월 국무장관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비둘기파’인데, 매파가 비둘기파를 이김으로써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패배한 비둘기파와 승리한 매파는 서로 갈등을 빚어야 하는데, 둘 사이는 예나 지금이나 좋기만 하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매파와 비둘기파라는 2분법적 구도로 살펴보는 것은 위험하다. 둘은 갈등보다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미국은 먼저 비둘기파를 내세워 유화적인 조치를 취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매파를 내세워 강경책을 구사하는 ‘역할분담’적 구도를 택하고 있다. 대체로 매파적 방법은 막대한 비용과 인적 희생이 뒤따르므로 미국은 비둘기파적 방법을 선호한다. 따라서 매파가 비둘기파를 압도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으면 미국의 대외정책을 제대로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미 대외정책 2분법 아닌 ‘역할분담’
이러한 미국이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먼저 비둘기파적 요소부터 살펴보자. 4월28일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일단의 미국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들은 워싱턴DC의 국회의사당 부근에 모여 ‘북한 자유의 날’을 선포하고 북한 자유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연다. 이를 위해 관련 단체들은 3월 말부터 미국 주요 도시에 이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를 붙여나가고 있다.
‘북한 자유의 날’ 행사는 미국 상·하원 외교위에 동시 상정돼 있는 ‘북한 자유화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이벤트다. 이 법안은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마이클 호로위츠 허드슨 연구소 선임위원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것. 3월23일 미 하원 외교위는 법사위와 협의를 통해 ‘2004 북한 인권 법안(The North Korea Human Rights Act of 2004)’으로 이름을 바꾼 이 법안의 수정 초안을 내놓았다.
이 수정안은 짐 리치 하원 외교위원장(공화) 등 공화·민주당 소속 의원 10명이 공동 발의하는 형식으로 외교위에 상정되었다. 양당이 공동 발의했고 법사위와 협의도 끝낸 만큼 이 법안은 올 6월쯤 하원 외교위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외교위를 통과하면 하원 본회의 통과는 사실상 확정된 것이므로 올해 안에 법률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상원에서는 샘 브라운백 의원이 중심이 돼 북한 자유화에 관한 법안을 만들고 있는데 상원은 하원의 예에 따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자유화와 인권 등을 증진하기 위해 이 법안을 만든다’라는 목적을 밝혀놓고 있는 하원의 수정안은 북한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와 탄압 사례에 대해 이렇게 나열해놓았다.
‘북한은 김정일 1인통치가 행해지는 곳이다. 학문과 언론자유 예술 활동이 통제되고 1인숭배를 강요하며 주민을 성분별로 나누어 차별하고 있다. 중국에서 송환된 탈북자와 반당(反黨) 활동자들은 가혹한 형벌을 받고 있으며, 20여만명에 달하는 정치범이 수용소에 갇혀 노예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중국으로 탈북한 북한 여성들은 납치와 인신매매, 성폭행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일부는 (중국 남성들의) 처나 첩 또는 매춘부로 전락하고 있다.…’
마이클 호로위츠 연구원(왼쪽)과 고든 잉글랜드 미 해군장관.
이 법안이 확정되고 미 행정부가 이 법률에 따라 행동에 나서면 김정일 정권은 저항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저항에는 ‘서울 불바다’ 주장처럼 군사적인 위협을 가하는 방법이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미국의 대비책은 무엇일까.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세계 주둔 미군을 재배치하는 독트린을 추진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독트린의 일환으로 한국과 일본에 주둔한 일부 미 지상군의 철수가 거론되고 있으며 유럽(독일) 주둔 미 지상군은 2년 전 중동으로 이동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감군된 상태가 되었다. 럼스펠드 장관은 미국 처지에서 해외 여러 지역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므로 미 본토와 핵심 동맹국에만 주둔시켜두었다가 필요시 신속히 투입하는 것으로 분쟁을 막겠다고 공언해왔다.
스트라이커 부대·해상 MD 박차
미 육군은 10개 사단을 갖고 있는데, 그중 10산악·25경보병·82공정·101공중강습 등 4개 사단은 경(輕)사단으로 분류된다. 경사단은 전차나 장갑차가 적고 주로 병사(보병) 위주로 편제돼 있어 위기가 터지면 신속히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그러나 중장비가 적어 상대적으로 전투력은 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머지 6개 사단은 전차와 장갑차로 중무장하고 있어 중(重)사단으로 분류된다. 중사단은 막강한 공격력을 갖고 있지만 장비가 너무 많아 배치하는 데 한 달 가까이 소요될 정도로 느리다는 것이 약점이다. 1990년대 초반 미 육군은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경사단보다 많은 장비를 갖고 중사단보다 가벼운 장비를 보유해 경-중사단의 갭을 메울 수 있는 중간(中間) 성격의 부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여단급으로 만들어진 것이 스트라이커(Stryker) 부대다. 이 부대는 전차 없이 장갑차로만 편제되는 것이 특징인데, 이 장갑차는 C-17 같은 대형 수송기에 탑재할 수 있다. 따라서 경사단만큼 빨리 전장에 투입할 수 있으나 수송기가 적으면 많은 부대를 투입하지 못한다. 때문에 미군은 대대급 스트라이커 부대를 장비와 함께 싣고 42노트(시속 약 80km)로 달릴 수 있는 초고속수송함(HSV·High Speed Vessel)을 개발해냈다(2002년).
4월28일 ‘북한 자유의 날’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
3월22일 고든 잉글랜드 미 해군장관은 워싱턴DC 레이건 센터의 연설에서 “파시즘과 코뮤니즘을 이긴 미국은 테러리즘과의 대결에 직면해 있다”고 언급한 뒤 갑자기 화제를 돌려 “MD (미사일 방어)사업이 현실화돼 가고 있는데 미 해군은 최전방에서 미사일을 막는 역할을 하겠다. 그 첫 번째 조치로 오는 9월 동해에 이지스 구축함을 투입해 탄도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한다. 2006년까지 동해에 이지스 순양함 1척과 이지스 구축함 10척을 배치해 완벽한 해상 MD를 구축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현재 한반도를 담당하는 미 7함대에는 이지스 순양함 3척과 이지스 구축함 2척이 배치돼 있다. 그런데 잉글랜드 장관은 7함대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이지스함을 동해에 배치하겠다고 한 것. 이지스함은 이라크전에서 정밀타격으로 명성을 날린 토마호크 미사일도 다량 탑재하고 있어 미사일 방어뿐만 아니라 공격 임무도 수행할 수 있다.
결국 미국은 10여년 전에 시작한 스트라이커란 이름의 중간 기동부대와 MD 구축을 현실화해냄으로써 해외 주둔 미군을 줄이면서도 전력을 배가하는 결과를 얻었다. 북한이 북한 자유화법이라는 비둘기파 방안에 저항해 무리수를 둔다면 미국은 스트라이커 부대와 해상 MD로 북한을 다루는 매파 안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리비아 길로 갈 것인가, 이라크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