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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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보복’ 이스라엘 정조준

야신 잃은 하마스 복수 공언 … 해외조직 가동 땐 지구촌 안전지대 없을 듯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4-04-01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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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22일 새벽 5시경 IAF(이스라엘 공군) 소속 아파치 헬기가 가자 시내에 3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목표는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 68살 병든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하마스의 창시자이자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상징은 이 미사일 공격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야신은 가자 시내에 위치한 오마리 모스크에서 아침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이 표적암살로 그를 따르던 경호원 7명이 사망하고 야신의 두 아들을 포함한 17명이 부상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15만 인파가 운집했고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전역에서는 허공을 향해 쏘아대는 총성과 ‘피의 보복’을 다짐하는 섬뜩한 구호로 뒤덮인 항의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아라파트 수반이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3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이 모든 장면은 자치지역 내에서 야신의 존재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주류에 아라파트가 있다면 그 반대쪽에 야신이 있었다. 팔레스타인 내 무슬림 형제단을 이끌며 이슬람 종교운동에 헌신하던 야신은 1987년 1차 인티파다가 발발하자 하마스(아랍어로 이슬람 저항운동의 이니셜. 문자 자체의 의미는 열심, 열광의 뜻)를 설립해 대(對)이스라엘 저항운동에 적극 나서면서 종교운동뿐 아니라 민족운동 지도자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하마스는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세속주의를 비판하며 이슬람 원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해방투쟁을 이끌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PLO 간에 이뤄진 1993년 오슬로 협정에 적극 반대하면서 급격히 강경노선을 걷는다. 하마스의 궁극적 목표는 팔레스타인 전 영토에 이슬람 국가를 설립하는 것이기에 영토의 일부분에 자치정부를 세우는 데 반대한 것이다.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된 아라파트는 공식적으로 무장투쟁의 수단을 버려야 했지만 하마스는 이를 무기로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지지를 얻으며 성장하고, 야신은 대이스라엘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야신은 對이스라엘 저항운동의 상징적 인물

    그러나 이스라엘의 시각에서 야신은 테러리스트일 뿐이고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최대의 ‘공공의 적’이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최고 살인자이자 테러리스트를 제거했다”는 아리엘 샤론 총리의 발언과 “셰이크 야신은 팔레스타인의 빈 라덴이며, 그의 손은 이스라엘의 피로 물들어 있다”는 샤울 모파즈 국방부 장관의 발언은 야신과 하마스를 바라보는 이스라엘의 시각을 대변한다. 모파즈 장관은 구체적 수치를 언급하며 야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마스는 2000년 9월 인티파다 이래로 425건의 테러공격을 감행했고 377명의 이스라엘 시민을 살해했으며 2076명의 부상자를 발생하게 했다.” 그럼에도 이번 결정을 내린 샤론 내각에 대한 안팎의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1996년 이스라엘은 이른바 ‘기술자’로 불리던 하마스의 폭탄제조 기술자 이흐예 아야쉬를 암살했다. 하마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연쇄 자살테러를 감행했고, 열흘 동안 60여명의 이스라엘 시민이 희생되었다. 이번에는 ‘기술자’가 아닌 최고지도자가 암살되었으니 앞으로 다가올 보복테러의 규모도 짐작할 수 있다. 하마스뿐 아니라 알 아크사 순교여단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내 모든 무장조직, 레바논의 헤즈볼라 또한 복수를 다짐하고 나섰다. 이스라엘은 지금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샤론 내각이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고도 그런 위험한 결정을 내린 이유는 가자 지구에서의 IDF(이스라엘 방위군)의 ‘일방적 철수’ 계획과 관련 있다. 샤론은 국내외에 가자에서의 철수를 약속했고, 이는 이스라엘 정가의 뜨거운 이슈로 논의되고 있었다. 그러나 MI(이스라엘 군 정보기관)가 3월 초 작성한 보고서는 현 상황에서의 IDF 철수는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테러공격의 승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마스는 IDF의 철수가 무장투쟁의 결과이고, 더 강력하고 계속적인 무장투쟁으로 이스라엘을 완전히 철수시킬 수 있다고 선동했다.

    이러한 가운데 3월14일 지중해 해안도시 아쉬돗 항구에서의 자살테러로 10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하마스가 주도하고 알 아크사 순교여단이 공조한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를 가자에서의 철수 후 하마스가 감행할 전면 테러공격의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에서의 전면철수 전에 반드시 하마스의 세력을 제압해야 했던 것이다.

    샤론 내각은 이미 야신을 비롯한 하마스 지도자 암살계획을 승인한 바 있다. 작년 9월 F-16 전투기를 동원해 하마스 지휘부의 회합이 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자 시내의 한 아파트에 무려 250kg의 폭탄을 퍼붓고도 야신 제거에 실패했다. 그러다 이번 아쉬돗 항구 테러사건 뒤 다시 암살계획을 실행에 옮겨 성공한 것이다. 샤론 내각은 이번 사건이 단기적으로 보복테러의 위협으로 이스라엘 사회의 불안을 가중할 것이나 장기적으로는 하마스를 비롯한 다른 무장투쟁 조직세력의 무력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고지도자 사후 조직이 분파되거나 와해된 예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마스에게도 이 예가 적용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가능성이 없진 않다. 국내뿐 아니라 주변 아랍국을 비롯한 미국, 유럽에도 조직망을 가지고 있는 하마스는 야신을 비롯한 지휘부의 잦은 투옥, 추방, 암살로 인해 이미 90년대 초반 집단지도 체제를 도입했다. 야신은 이들 조직망과 지휘부를 하나로 통합하는 구심점이었다. 야신이 암살당한 다음날 하마스는 서둘러 야신의 후계자로 가자지구 내에서 넘버 2로 알려진 압델 아지즈 란티시(57)를 옹립했다. 란티시는 현재 남아 있는 하마스 국내파 지도자 중 가장 강경노선을 걷는 인물로 이스라엘의 표적암살 리스트 1순위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작년 여름 그에 대한 암살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그가 야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란티시에게는 야신이 갖고 있던 종교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하마스의 핵심 이데올로기다. 따라서 최고지도자에게 종교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조직의 정체성과도 관련된 문제다. 하마스의 다양한 조직망과 지휘부가 각각 제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하마스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어떻게 야신의 암살에 대해 복수할 것인가이다. 란티시는 이미 “복수는 이 인물(야신)의 크기만큼이 될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이에 걸맞은 보복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져가는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기에 하마스는 총력을 기울여 이 문제에 집중할 것이다. 이 점은 하마스의 해외조직과 알 카에다와 같은 다른 무장조직이 연계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더욱이 하마스의 해외조직은 국내파들보다 더욱 강경노선을 띠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이들 보복테러의 희생자는 비단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 세계 사람들이 희생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스라엘의 일간지 ‘하아레츠’는 논설에서 “야신의 암살은 정당하다. 그러나 ‘정당’이 반드시 ‘현명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허용된다’라고 말할 때 그것이 언제나 ‘바람직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의도대로 장기적 관점에서 테러조직 세력이 약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정부의 의도는 여러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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