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이다. 방송국에서는 너나없이 올해 가요계를 종합한다. 전부 인기몰이에 앞장섰던 음악이 대상이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인기나 판매량, 혹은 한류와 상관없이 올해도 한국 대중음악의 미적 수준을 넓힌 뮤지션이 있었다. 그중 음반 3장을 골라봤다.
하헌진의 ‘[오]’
한국 대중은 대체로 블루스에 어떤 선입관을 갖고 있다. 얼굴을 찌푸리고 목을 쥐어짜며 일렉트릭 기타를 울려대는 음악, 청승맞게 질질 짜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헌진은 그런 선입관을 깨고 쑥 등장한 서울의 젊은 블루스맨이다. 16세부터 기타를 잡은 그는 독학으로 블루스 근본인 미시시피 블루스를 추구해왔다.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담담하고 건조하게 주변의 사소한 일을 읊조렸다. 그 읊조림과 함께 아르페지오와 피킹, 슬라이딩 같은 기타 주법이 힘차고 단단하게 흘렀다.
‘개’ ‘지난여름’ 2장의 이피반 레코드(EP) 앨범을 스스로 제작해 홈페이지에서 판매했던 그는 세 번째 EP 앨범 ‘[오]’에 이르러 소박하게나마 유통을 시도했다. 앨범 2장을 통해 애호가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퍼진 덕분일 것이다. 전작에서 보여준 화려한 플레이 대신 단순한 연주를 들려준다. 그러나 명징하다. 생활의 고단함과 잡생각을 증류해서 뽑아낸 문장이 느긋하게 가사가 된다.
어둠이 살짝 걷힌 음악은 듣는 이의 귀에 얼큰한 취기를 뿜어낸다. 그리하여 목화밭에서의 땀내와 싸구려 버번 향으로 뒤범벅된 20세기 초 흑인들의 무미건조한 자조가 되살아난다. 엄숙하지도, 결연하지도, 도취적이지도 않은 어느 가난한 젊은이의 삶이 이 젊은 블루스맨의 성대와 손가락에 의해 울리고 튕긴다.
정차식의 ‘격동하는 현재사’
1세대 인디밴드 가운데 ‘레이니썬’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홍대 앞을 중심으로 한 인디신(인디밴드가 활동하는 장소나 무대)의 주류가 펑크와 모던록이었던 반면, 부산에서 출발한 그들은 헤비메탈을 계승했다. ‘앨리스 인 체인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들 음악은 ‘귀곡 메탈’이라고 불렸다. 다운 템포의 음산한 사운드를 기저에 깐 뒤 울부짖고 흐느끼는 정차식의 보컬은 그런 ‘귀곡’의 원천이다.
‘격동하는 현재사’는 정차식의 두 번째 솔로앨범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주를 이루지만 그 위에서 물어뜯고, 포효하고, 두들기고, 내리치는 그의 목소리가 웬만한 밴드의 그것보다 훨씬 큰 격랑을 일으킨다. 그의 목소리는 20대 성욕, 30대 물욕, 50대 권력욕 등 그 모든 것의 본질이라 할 만한 수컷의 탐심을 다채롭게 드러낸다. 록과 판소리, 그레고리안 성가 등 좀처럼 접붙이기 힘들 것 같은 요소가 그의 본능 아래서 용광로 주물처럼 섞인다.
무키무키만만수의 ‘2012’
무키무키만만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만난 두 친구로 이뤄진 밴드다. 무키가 장구와 퍼커션과 보컬을, 만수가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을 맡았다. 이 앨범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다. 열광하거나 기겁하거나. 그들 음악은 최근 한국 대중음악을 설명하는 어떤 단어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음악이 어떤 감정 상태를 반영하는 소리라면, 무키무키만만수는 시쳇말로 ‘멘붕’의 현현이다. 2012년의 단어라 할 만한 그 ‘멘털 붕괴’ 말이다.
자기애 결여의 자학, 남자친구보다 머리가 크다는 걸 알았을 때의 좌절감, 벌레를 발견했을 때의 쇼크. 희로애락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순간을 ‘개드립’에 가까운 가사로 그려낸다. 그 가사를 얹은 음악은 펑크적이지 않은 펑크다. 펑크의 본질적 속성은 퇴적과 침식이 아닌, 융기와 붕괴다. 무키무키만만수의 음악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 역시 음악 생태계 흐름에서 갑자기 융기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들 음악의 뿌리는 산울림으로 귀결된다. 무키무키만만수가 첫 공연에서 앨범에도 담았던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 거야’를 연주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김창완은 이 리메이크곡을 듣고 열광했다). 이 연관성은 다시 1990년대 중반 크라잉넛과 황신혜밴드로 이어진다. 무키무키만만수는 크라잉넛과 황신혜밴드의 상징적 본질을 융합해 새로운 융기를 이끌었다. 그들이 한국 펑크의 리셋버튼을 누른 셈이다.
하헌진의 ‘[오]’
한국 대중은 대체로 블루스에 어떤 선입관을 갖고 있다. 얼굴을 찌푸리고 목을 쥐어짜며 일렉트릭 기타를 울려대는 음악, 청승맞게 질질 짜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헌진은 그런 선입관을 깨고 쑥 등장한 서울의 젊은 블루스맨이다. 16세부터 기타를 잡은 그는 독학으로 블루스 근본인 미시시피 블루스를 추구해왔다.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담담하고 건조하게 주변의 사소한 일을 읊조렸다. 그 읊조림과 함께 아르페지오와 피킹, 슬라이딩 같은 기타 주법이 힘차고 단단하게 흘렀다.
‘개’ ‘지난여름’ 2장의 이피반 레코드(EP) 앨범을 스스로 제작해 홈페이지에서 판매했던 그는 세 번째 EP 앨범 ‘[오]’에 이르러 소박하게나마 유통을 시도했다. 앨범 2장을 통해 애호가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퍼진 덕분일 것이다. 전작에서 보여준 화려한 플레이 대신 단순한 연주를 들려준다. 그러나 명징하다. 생활의 고단함과 잡생각을 증류해서 뽑아낸 문장이 느긋하게 가사가 된다.
어둠이 살짝 걷힌 음악은 듣는 이의 귀에 얼큰한 취기를 뿜어낸다. 그리하여 목화밭에서의 땀내와 싸구려 버번 향으로 뒤범벅된 20세기 초 흑인들의 무미건조한 자조가 되살아난다. 엄숙하지도, 결연하지도, 도취적이지도 않은 어느 가난한 젊은이의 삶이 이 젊은 블루스맨의 성대와 손가락에 의해 울리고 튕긴다.
정차식의 ‘격동하는 현재사’
1세대 인디밴드 가운데 ‘레이니썬’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홍대 앞을 중심으로 한 인디신(인디밴드가 활동하는 장소나 무대)의 주류가 펑크와 모던록이었던 반면, 부산에서 출발한 그들은 헤비메탈을 계승했다. ‘앨리스 인 체인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들 음악은 ‘귀곡 메탈’이라고 불렸다. 다운 템포의 음산한 사운드를 기저에 깐 뒤 울부짖고 흐느끼는 정차식의 보컬은 그런 ‘귀곡’의 원천이다.
‘격동하는 현재사’는 정차식의 두 번째 솔로앨범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주를 이루지만 그 위에서 물어뜯고, 포효하고, 두들기고, 내리치는 그의 목소리가 웬만한 밴드의 그것보다 훨씬 큰 격랑을 일으킨다. 그의 목소리는 20대 성욕, 30대 물욕, 50대 권력욕 등 그 모든 것의 본질이라 할 만한 수컷의 탐심을 다채롭게 드러낸다. 록과 판소리, 그레고리안 성가 등 좀처럼 접붙이기 힘들 것 같은 요소가 그의 본능 아래서 용광로 주물처럼 섞인다.
무키무키만만수의 ‘2012’
무키무키만만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만난 두 친구로 이뤄진 밴드다. 무키가 장구와 퍼커션과 보컬을, 만수가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을 맡았다. 이 앨범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다. 열광하거나 기겁하거나. 그들 음악은 최근 한국 대중음악을 설명하는 어떤 단어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음악이 어떤 감정 상태를 반영하는 소리라면, 무키무키만만수는 시쳇말로 ‘멘붕’의 현현이다. 2012년의 단어라 할 만한 그 ‘멘털 붕괴’ 말이다.
자기애 결여의 자학, 남자친구보다 머리가 크다는 걸 알았을 때의 좌절감, 벌레를 발견했을 때의 쇼크. 희로애락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순간을 ‘개드립’에 가까운 가사로 그려낸다. 그 가사를 얹은 음악은 펑크적이지 않은 펑크다. 펑크의 본질적 속성은 퇴적과 침식이 아닌, 융기와 붕괴다. 무키무키만만수의 음악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 역시 음악 생태계 흐름에서 갑자기 융기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들 음악의 뿌리는 산울림으로 귀결된다. 무키무키만만수가 첫 공연에서 앨범에도 담았던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 거야’를 연주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김창완은 이 리메이크곡을 듣고 열광했다). 이 연관성은 다시 1990년대 중반 크라잉넛과 황신혜밴드로 이어진다. 무키무키만만수는 크라잉넛과 황신혜밴드의 상징적 본질을 융합해 새로운 융기를 이끌었다. 그들이 한국 펑크의 리셋버튼을 누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