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14일 아랍에미리트 연방 두바이. 유엔에서 통신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24년 만에 개최한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에서 통신 논의는 뒷전이고 난데없이 인터넷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1988년 체결한 국제통신협약은 인터넷이 보편화하기 전 합의다. 미국을 비롯한 ITU 회원국 누구도 스마트폰 시대 도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통신과 인터넷의 융합으로 통신과 인터넷 간 경계가 허물어진 지 오래다. 이런 융합통신 환경에서 국제통신협약이 인터넷을 다루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아닐까. 그런데 미국은 물론, 많은 유럽 국가가 국제통신협약에서 인터넷을 거론하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정부 중심의 의결구조를 갖는 유엔 특별기구 ITU에서 인터넷 관련 국제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비영리법인이 글로벌 인터넷 관리
그렇다면 인터넷 관련 국제협상은 어디서 해야 할까. 미국 정부가 관리, 감독하는 비영리법인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주장이다. 이쯤에서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미국 정부가 단독으로 관리, 감독하는 캘리포니아 소재 비영리법인이 글로벌 인터넷을 관리한다니 말이다.
ICANN은 미국 정부가 1998년 새롭게 만들어 실험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혁신적 모델이다. 이 획기적 글로벌 거버넌스 모델은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기업과 시민사회에 의사결정권을 주고, 미국을 제외한 모든 정부가 글로벌 인터넷 정책 관련 조언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미국은 1998년부터 2005년까지 ICANN을 내세워 자국 및 글로벌 인터넷 관리는 민간기업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민간 주도 모델을 강조했다.
이에 하루아침에 의사결정권자에서 자문역으로 전락한 정부들이 미국 중심의 인터넷 거버넌스 모델에 대항해 목소리를 높였다. 200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SIS)에서 중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아랍 국가들이 국제사회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거버넌스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해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워킹그룹을 만들었고, 2005년 제2차 유엔 WSIS는 글로벌 인터넷 관리 문제를 놓고 미국 주도권을 인정하는 캠프와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화 모델을 주장하는 캠프로 양분됐다. 양 진영의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지속적인 논의를 위해 탄생한 것이 유엔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IGF)이다.
2003년 제네바에서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해 논의할 당시 미국은 이라크전을 준비 중이었다. 아랍 국가들은 이웃 이라크가 미국에게 침공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미국이 단독으로 관리하는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를 자국 인터넷 관리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미 정부가 관리하는 인터넷 국가 도메인코드 데이터베이스에서 특정 국가의 도메인코드를 삭제해버리면 사이버공간에서 그 나라가 소멸되는 엄청난 권력을 미국이 단독으로 쥐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미국 정부와 정치적 갈등을 빚는 국가 처지에서는 불안했을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양분된 진영이 10여 년 만에 다시 두바이에서 만난 것이다. 미국 캠프는 여전히 국제통신협약이 아닌 ICANN 주도의 인터넷 관리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인터넷 관리의 국제화를 요구했던 중국, 러시아, 브라질, 아랍 국가들은 다시 한 번 유엔 특별기구인 ITU 주도의 인터넷 관리를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 거버넌스와 관련한 이 같은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많은 언론이 2012년 국제통신협약 서명은 ‘악의 축’ 중심의 인터넷 규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방을 쏟아냈다. 공교롭게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국제통신협약에 서명하기를 거부하거나 유보한 반면, 중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한 여러 아랍 국가는 국제통신협약에 서명했다.
한국 정부 역시 국제통신협약에 서명하고 돌아왔다는 이유로 시민사회로부터 인터넷 규제에 대한 의사를 표현한 것 아니냐는 지탄을 받았다. 일부 시민단체는 이번 협상을 앞두고 시민사회와 협의가 없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 거버넌스 협의회를 두고 시민사회와 여러 차례 의견 조정 과정을 거쳤으며, 필자는 인터넷 거버넌스 협의회 운영위원으로 현지에서 거버넌스 협의회와 이메일을 통해 협의를 계속해나갔다.
인터넷 거버넌스와 관련한 모든 국제협상에서 민간을 중심으로 한 민관 협력모델이 발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한 결과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국 진영의 기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ITU는 정부 중심 협상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미국 정부가 두바이 WCIT를 위해 1년 넘게 준비해온 이유도 그래서다.
경제성장 지렛대 기능 원하는 미국
미국 정부는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를 자국 경제를 좌우하는 주요 국가 전략으로 인식한다. 인터넷을 통한 경제 규모가 빠른 속도로 커지는 점을 감안해 글로벌 인터넷 관리가 중요한 성장 지렛대 기능을 하리라 보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WCIT 대사를 임명하고 WSIS를 담당했던 데이비드 그로스 전 국무부 대사, 테리 크레이머 국무부 대사와 팀을 이뤄 이번 두바이 WCIT에 대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2012년 여름 미국 하원에서 열린 인터넷 거버넌스 관련 청문회 때는 ‘만일 투표를 진행할 경우 몇 나라가 미국을 지지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WCIT 대사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를 방문해 미국 의견을 지지해줄 것을 막판까지 호소했다.
미국 정부는 ITU에 시민사회 참여를 종용해왔다. 두바이 WCIT에서 뚜레 ITU 사무총장은 이런 여론을 의식해 각국 시민사회 구성원들과 1시간 30분 동안 만났다. 한국 대표단의 시민사회 일원이던 필자 역시 면담에 참석해 시민사회와 사무총장이 참여 범위를 두고 갈등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사무총장과의 만남에 참석한 시민사회 구성원은 20명이 채 안 됐다.
ICANN을 비롯한 비정부기구 출신 인력 100여 명은 ITU 기업회원으로 등록돼 시민사회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ICANN이나 유엔 IGF 회의에서 각 정부를 통해 시민사회 참여를 독려했지만, 실제 정부 대표단 일원으로 참여한 시민사회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미국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민관 협력모델의 한계가 아닐까.
이번 두바이 WCIT의 절정은 거수 및 투표를 통해 ITU 각 회원국이 인터넷 거버넌스 관련의견을 표명한 것이었다. 첫 번째 거수는 인터넷 거버넌스를 둘러싼 미국 캠프와 국제화 캠프 간 정면 대결이었다. 국제통신협약에 인터넷 관련 결의를 포함시킬지 여부를 놓고 양 캠프가 평행선을 달리자, 의장이 동향을 파악하는 차원에서 거수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때가 새벽 1시 20분경이다. 한국은 인터넷 관련 결의를 포함시키자는 데 손을 들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제시한 것처럼 당장 ITU를 통해 인터넷 거버넌스를 국제화하자는 뜻은 아니었다. ICANN을 포함한 다양한 포럼에서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를 신중하게 지속하자는 취지였다. 이 같은 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두 번째 거수는 인권과 통신 접속 간 전면전이었다. 국제통신협약 서문에 인권 관련 문구를 포함시키자는 미국 진영 주장이 관철되자, 중국은 인권 관련 조항이 정치적 제재로 연결돼 자국 통신 및 인터넷 접속 제재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중국이 이끄는 국제화 진영은 통신과 인터넷 접속권은 인간의 기본 권리인 만큼 인권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개발도상국 상당수가 중국 측 주장을 전폭 지지했다. 계속되는 중국 측 요구에 이란이 투표를 제안했다. 이번에도 중국 측 주장에 동의하는 국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국은 기권했다.
두바이 WCIT에서 한국은 다양한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를 지지한다는 차원에서 국제통신협약에 인터넷 결의를 포함시키자는 데 손을 들었고, 중국 캠프가 주도한 기본 인권으로서의 통신 및 인터넷 접속권에는 미·중 간 균형을 고려해 기권했다. 한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 두바이에서 한국은 의견을 표명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차기 사이버스페이스 총회 개최국이자 ITU 전권회의국인 한국과의 관계 설정에 전략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국 대표단 앞자리에는 중국 대표단, 뒷자리에는 미국 대표단이 배석했다. 양국 모두 한국 표가 중요했다.
한국 2개 모델에 적극 참여를
ITU 직원과 많은 국가 대표단이 ITU 역사상 드물게 진행된 투표 현장을 기억하려고 플래시를 터뜨리고 녹음을 했다. 이 장면은 향후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물론, 양국과의 동맹이 모두 중요한 한국 측 고민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두바이 WCIT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듯싶다. 2013년 사이버스페이스 총회와 아시아·태평양 지역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 2014년 ITU 전권회의 등 한국에서 인터넷 거버넌스 관련 주요 행사가 연이어 개최될 예정이다.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기업 중심의 글로벌 거버넌스 모델과 유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글로벌 인터넷 관리 모델 개발. 한국은 정보기술 선진국으로서 책임감과 리더십을 갖고 2개의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 실험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통신과 인터넷의 융합으로 통신과 인터넷 간 경계가 허물어진 지 오래다. 이런 융합통신 환경에서 국제통신협약이 인터넷을 다루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아닐까. 그런데 미국은 물론, 많은 유럽 국가가 국제통신협약에서 인터넷을 거론하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정부 중심의 의결구조를 갖는 유엔 특별기구 ITU에서 인터넷 관련 국제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비영리법인이 글로벌 인터넷 관리
그렇다면 인터넷 관련 국제협상은 어디서 해야 할까. 미국 정부가 관리, 감독하는 비영리법인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주장이다. 이쯤에서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미국 정부가 단독으로 관리, 감독하는 캘리포니아 소재 비영리법인이 글로벌 인터넷을 관리한다니 말이다.
ICANN은 미국 정부가 1998년 새롭게 만들어 실험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혁신적 모델이다. 이 획기적 글로벌 거버넌스 모델은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기업과 시민사회에 의사결정권을 주고, 미국을 제외한 모든 정부가 글로벌 인터넷 정책 관련 조언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미국은 1998년부터 2005년까지 ICANN을 내세워 자국 및 글로벌 인터넷 관리는 민간기업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민간 주도 모델을 강조했다.
이에 하루아침에 의사결정권자에서 자문역으로 전락한 정부들이 미국 중심의 인터넷 거버넌스 모델에 대항해 목소리를 높였다. 200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SIS)에서 중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아랍 국가들이 국제사회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거버넌스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해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워킹그룹을 만들었고, 2005년 제2차 유엔 WSIS는 글로벌 인터넷 관리 문제를 놓고 미국 주도권을 인정하는 캠프와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화 모델을 주장하는 캠프로 양분됐다. 양 진영의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지속적인 논의를 위해 탄생한 것이 유엔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IGF)이다.
2003년 제네바에서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해 논의할 당시 미국은 이라크전을 준비 중이었다. 아랍 국가들은 이웃 이라크가 미국에게 침공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미국이 단독으로 관리하는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를 자국 인터넷 관리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미 정부가 관리하는 인터넷 국가 도메인코드 데이터베이스에서 특정 국가의 도메인코드를 삭제해버리면 사이버공간에서 그 나라가 소멸되는 엄청난 권력을 미국이 단독으로 쥐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미국 정부와 정치적 갈등을 빚는 국가 처지에서는 불안했을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양분된 진영이 10여 년 만에 다시 두바이에서 만난 것이다. 미국 캠프는 여전히 국제통신협약이 아닌 ICANN 주도의 인터넷 관리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인터넷 관리의 국제화를 요구했던 중국, 러시아, 브라질, 아랍 국가들은 다시 한 번 유엔 특별기구인 ITU 주도의 인터넷 관리를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 거버넌스와 관련한 이 같은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많은 언론이 2012년 국제통신협약 서명은 ‘악의 축’ 중심의 인터넷 규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방을 쏟아냈다. 공교롭게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국제통신협약에 서명하기를 거부하거나 유보한 반면, 중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한 여러 아랍 국가는 국제통신협약에 서명했다.
한국 정부 역시 국제통신협약에 서명하고 돌아왔다는 이유로 시민사회로부터 인터넷 규제에 대한 의사를 표현한 것 아니냐는 지탄을 받았다. 일부 시민단체는 이번 협상을 앞두고 시민사회와 협의가 없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 거버넌스 협의회를 두고 시민사회와 여러 차례 의견 조정 과정을 거쳤으며, 필자는 인터넷 거버넌스 협의회 운영위원으로 현지에서 거버넌스 협의회와 이메일을 통해 협의를 계속해나갔다.
인터넷 거버넌스와 관련한 모든 국제협상에서 민간을 중심으로 한 민관 협력모델이 발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한 결과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국 진영의 기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ITU는 정부 중심 협상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미국 정부가 두바이 WCIT를 위해 1년 넘게 준비해온 이유도 그래서다.
경제성장 지렛대 기능 원하는 미국
미국 정부는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를 자국 경제를 좌우하는 주요 국가 전략으로 인식한다. 인터넷을 통한 경제 규모가 빠른 속도로 커지는 점을 감안해 글로벌 인터넷 관리가 중요한 성장 지렛대 기능을 하리라 보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WCIT 대사를 임명하고 WSIS를 담당했던 데이비드 그로스 전 국무부 대사, 테리 크레이머 국무부 대사와 팀을 이뤄 이번 두바이 WCIT에 대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2012년 여름 미국 하원에서 열린 인터넷 거버넌스 관련 청문회 때는 ‘만일 투표를 진행할 경우 몇 나라가 미국을 지지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WCIT 대사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를 방문해 미국 의견을 지지해줄 것을 막판까지 호소했다.
미국 정부는 ITU에 시민사회 참여를 종용해왔다. 두바이 WCIT에서 뚜레 ITU 사무총장은 이런 여론을 의식해 각국 시민사회 구성원들과 1시간 30분 동안 만났다. 한국 대표단의 시민사회 일원이던 필자 역시 면담에 참석해 시민사회와 사무총장이 참여 범위를 두고 갈등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사무총장과의 만남에 참석한 시민사회 구성원은 20명이 채 안 됐다.
ICANN을 비롯한 비정부기구 출신 인력 100여 명은 ITU 기업회원으로 등록돼 시민사회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ICANN이나 유엔 IGF 회의에서 각 정부를 통해 시민사회 참여를 독려했지만, 실제 정부 대표단 일원으로 참여한 시민사회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미국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민관 협력모델의 한계가 아닐까.
이번 두바이 WCIT의 절정은 거수 및 투표를 통해 ITU 각 회원국이 인터넷 거버넌스 관련의견을 표명한 것이었다. 첫 번째 거수는 인터넷 거버넌스를 둘러싼 미국 캠프와 국제화 캠프 간 정면 대결이었다. 국제통신협약에 인터넷 관련 결의를 포함시킬지 여부를 놓고 양 캠프가 평행선을 달리자, 의장이 동향을 파악하는 차원에서 거수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때가 새벽 1시 20분경이다. 한국은 인터넷 관련 결의를 포함시키자는 데 손을 들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제시한 것처럼 당장 ITU를 통해 인터넷 거버넌스를 국제화하자는 뜻은 아니었다. ICANN을 포함한 다양한 포럼에서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를 신중하게 지속하자는 취지였다. 이 같은 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두 번째 거수는 인권과 통신 접속 간 전면전이었다. 국제통신협약 서문에 인권 관련 문구를 포함시키자는 미국 진영 주장이 관철되자, 중국은 인권 관련 조항이 정치적 제재로 연결돼 자국 통신 및 인터넷 접속 제재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중국이 이끄는 국제화 진영은 통신과 인터넷 접속권은 인간의 기본 권리인 만큼 인권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개발도상국 상당수가 중국 측 주장을 전폭 지지했다. 계속되는 중국 측 요구에 이란이 투표를 제안했다. 이번에도 중국 측 주장에 동의하는 국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국은 기권했다.
두바이 WCIT에서 한국은 다양한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를 지지한다는 차원에서 국제통신협약에 인터넷 결의를 포함시키자는 데 손을 들었고, 중국 캠프가 주도한 기본 인권으로서의 통신 및 인터넷 접속권에는 미·중 간 균형을 고려해 기권했다. 한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 두바이에서 한국은 의견을 표명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차기 사이버스페이스 총회 개최국이자 ITU 전권회의국인 한국과의 관계 설정에 전략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국 대표단 앞자리에는 중국 대표단, 뒷자리에는 미국 대표단이 배석했다. 양국 모두 한국 표가 중요했다.
한국 2개 모델에 적극 참여를
ITU 직원과 많은 국가 대표단이 ITU 역사상 드물게 진행된 투표 현장을 기억하려고 플래시를 터뜨리고 녹음을 했다. 이 장면은 향후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물론, 양국과의 동맹이 모두 중요한 한국 측 고민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두바이 WCIT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듯싶다. 2013년 사이버스페이스 총회와 아시아·태평양 지역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 2014년 ITU 전권회의 등 한국에서 인터넷 거버넌스 관련 주요 행사가 연이어 개최될 예정이다.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기업 중심의 글로벌 거버넌스 모델과 유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글로벌 인터넷 관리 모델 개발. 한국은 정보기술 선진국으로서 책임감과 리더십을 갖고 2개의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 실험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