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의 임신 소식이 알려지면서 300여 년간 시행되던 왕위 계승 원칙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여러 왕국은 남자 위주로 왕위를 이어가는 전통을 오랜 세월 지켜왔다. 그중에는 남자 왕을 원칙으로 하되 재위 중인 왕에게 남자 왕손, 즉 아들이나 친손자가 없을 경우 여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나라도 있고, 남자만 왕위에 오르도록 한 나라도 있다. 영국은 전자로, 지난 900여 년간 왕위에 오른 사람 가운데 남자는 40여 명, 여자는 7명이다. 성차별이 없어지면 앞으로 이 비율은 반반이 될 것이다.
지금 유럽에는 모나코 등 소국을 포함해 10여 개 왕국이 있다. 이들도 형태는 약간씩 다르지만 남성 우위의 왕위 계승 제도를 지켜왔다. 그러나 30여 년 전 스웨덴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그 무렵 세계적으로 일었던 남녀평등 기조와 자녀를 적게 낳는 풍조가 이 변화를 주도했다. 왕족이 자녀를 많이 낳지 않아 남자 왕손이 태어날 확률이 희박해지자 여자를 왕위에 앉히지 않으면 왕의 직계 혈육을 이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첫아이가 잇는 ‘절대 장자녀 세습제’
스웨덴은 1980년 헌법을 고쳐 재위 중인 왕에게서 태어난 첫아이가 남녀 불문하고 다음 왕위를 잇는 이른바 ‘절대 장자녀 세습제(absolute primogeniture)’를 채택했다. 지금 스웨덴은 재위 중인 칼 16세 구스타프(66) 국왕의 맏이 빅토리아(35) 공주가 남동생 칼 필립 왕자를 제치고 왕세녀로 확정됐다.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등 다른 여러 유럽 왕국도 스웨덴과 같은 방식의 왕위 계승제를 채택했다. 스페인 등과 함께 끝까지 옛 방식을 고집하던 영국도 이번에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영국이 새 제도 채택을 미룬 가장 큰 이유는 왕이 자국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 군주를 겸하는 까닭에 이들 나라로부터 동의를 얻고 해당국 국내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 말고도 캐나다, 호주, 파푸아뉴기니, 뉴질랜드 등 15개 나라에서도 여왕이다.
단지 절차만 복잡한 것이 아니라, 각국 관련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해당국 내에 잠재돼 있던 정체성 문제가 촉발될 우려도 있다. 식민지 시절 잔재인 국왕 공유가 과연 법을 고쳐가면서까지 지속해야 할 문제인지를 두고 시비가 일 테고, 이는 제국의 옛터마저 완전히 소멸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11년 10월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이 결정된 직후 영국과 왕을 공유하는 나라의 정상들이 호주에서 만난 자리에서 절대 장자녀 세습을 위해 각자 자국 법을 고치기로 합의했으나, 영국이 당장 행동에 들어가지 않자 다른 나라들도 덮어두고 있었다.
영국은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세손이 차례로 즉위를 대기 중이다. 따라서 앞으로 불의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몇십 년간 세습 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지금 미리 규칙을 정해둬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만일 왕세손의 맏이로 태어난 아이가 딸일 경우, 미리 규정을 바꿔놓지 않으면 뒤이어 태어난 아들이 누나가 종전 규정에 따라 세습권 없이 출생했으므로 자신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불소급 원칙을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영국 왕실은 심각한 내분을 맞게 된다.
시대가 바뀜으로써 야기된 왕위 계승 원칙 문제는 유럽보다 일본에서 더 심각하다. 일본에서는 여성이 아예 왕이 될 수 없다. 아키히토(79) 국왕은 아들이 둘인데, 첫째 나루히토(52) 왕세자는 슬하에 딸 하나만 뒀고, 차남 아키시노(47) 왕자 역시 2005년까지 딸만 둘이었다. 게다가 아키히토 국왕의 남동생과 사촌 남동생들 역시 모두 자녀가 없거나 딸만 뒀으며, 독신으로 노년을 맞은 사람도 있다.
과거 일본에서도 특별한 경우에는 여성이 왕위를 잇는 것이 허용됐다. 실제 여덟 차례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남자 직계 왕손이 없거나, 있더라도 너무 어린 경우 여성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렇게 즉위한 여왕은 어린 남자 왕손이 장성하거나, 전 왕의 방계 혈족 중에서 남자 후계자가 정해질 때까지만 재위하는 일종의 임시 군주였다.
일본은 고심 중
또 여왕으로 즉위하려면 미혼이어야 했고, 재위 중에는 독신을 유지해야 했다. 만일 결혼한 여성이 왕위에 오르면 그 남편은 왕족과 성(姓)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따라서 그 자녀가 왕위를 이으면 이는 역성혁명에 의한 새 왕조 탄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본 왕가는 긴 세월 이 같은 부계 원칙을 지켜왔다. 일본인, 특히 우익 성향의 사람들은 이런 왕가를 ‘만세일계(萬世一系)’라고 지칭하면서 국민 정체성의 일부로 여긴다.
1880년대 일본은 임시 여왕제마저 부인한 채 프러시아 왕국(독일의 전신)의 왕실 원칙을 모델 삼아, 남자만 국왕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또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직후 미군 점령기인 1947년 또 한 차례 미국식 가치관을 접목해 왕위 계승 원칙을 개정했다.
과거 일본에서는 왕위가 끊길 위기가 닥치면 왕이나 세자가 후궁을 맞아 계속 출산을 시도하거나, 양자와 임시여왕제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신노케(親王家)라고 부르던 왕의 방계 가문을 공식적으로 인정, 그 장손 중에서 세자를 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세에 왕위 계승 원칙을 두 차례 개정해 이런 비상수단 가운데 어느 하나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 현재 일본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이 문제로 국민적 위기감이 높아지던 2000년대 중반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해 왕위 계승 원칙을 새롭게 검토하라고 맡겼다. 이 위원회의 결론이 절대 장자녀 세습제였고, 고이즈미도 이를 밀어붙이려 했으나 국민 저항이 거셌다.
절대 장자녀 세습제는 임시여왕제와 달리 ‘여왕에 이어 그 자녀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으로, 일본 우익은 이에 대해 참을 수 없어 했다.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공주가 유학을 가 파란 눈의 배필을 얻을 경우 그 자녀가 새 왕이 되도 좋단 말이냐”라는 말까지 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도 규칙 개정을 보류하라고 주장했다.
2006년 마침내 아키시노 왕자가 늦둥이 아들을 봄으로써 급한 불이 꺼졌고, 총리는 왕위 계승을 위한 새 원칙 제정을 보류했다. 시간을 좀 벌긴 했으나 위기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보수 성향의 일본인은 ‘오직 남자’인 현 제도를 고수하되 비상시에 대비해 신노케를 부활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진보 성향의 일본인은 절대 장자녀 세습에 찬성한다. 또한 중도 의견으로, 남자 위주로 왕위를 잇되 어쩔 수 없을 땐 여성이 즉위하는 현재의 영국식 방안, 또는 과거 일본식 임시여왕제로 가자는 여론도 있다. 최근까지도 계속되는 이 문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어떤 방식으로든 여성도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대세다.
앞으로 두어 세대 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될지도 모른다. ‘21세기 초 시대상의 두 가지 격변은?’ 정답은 ‘정보화 사회 정착과 부계사회 소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