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7일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2 협동조합의 날’ 기념식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협동조합’이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려고 여러 사람이 자발적으로 출자해 결성한 조직으로, 공동 소유에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다. 협동조합은 사업체이긴 해도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기업과 다르다. 사람들의 필요를 해결하려고 만든 인적 결사체인 만큼, 조합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이윤만 유지하는 ‘원가경영’, 이용한 만큼 돌려주는 ‘이용배당’이 협동조합의 특징이다.
협동조합으로 활로 찾는 직장인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은 “흔히 협동조합을 만들어 재화나 용역을 싸게 사서 조합원들에게 비싸게 팔아 이용배당금을 많이 남긴 뒤 조합원에게 그만큼 더 돌려주면 좋으리라 생각하기 쉬운데, 협동조합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 배당금 범위를 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시작해 160년 역사를 가진 협동조합은 세계적으로 생산자, 소비자, 근로자, 신용, 보험, 주택, 스포츠 등 다양한 사업과 업무 영역에서 활성화됐다. 우리의 협동조합 기본법은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법에 따른 협동조합 유형은 조합원의 필요를 충족하는 일반 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나누어진다. 일반 협동조합은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 생산, 판매, 제공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업조직을 가리킨다. 비영리법인인 사회적 협동조합은 지역주민들의 권익, 복리 증진과 관련한 사업을 수행하거나 취약계층에 사회 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조직을 가리킨다. 일반 협동조합에는 생활·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구매협동조합과 이용협동조합이 있으며, 사업·경영을 목적으로 하는 직원협동조합과 사업자협동조합이 있다. 상호 제공·상호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다중이해관계자협동조합도 일반 협동조합에 속한다.
현재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협동조합은 사회적 협동조합 9곳, 일반 협동조합 61곳으로 대리운전, 생활폐기물, 컨설팅, 유아교육, 미용기기, 도시농업, 개인택시, 주차, 의료소비자, 출장음식업, 택배, 상조, 건축, 재활용의류 등 다양한 분야가 망라돼 있다.
협동조합이 각광받는 이유는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5명 이상이 모이면 누구나 설립할 수 있고, 기존 주식회사나 비영리법인과 달리 소액으로 소규모 창업이 가능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뿐 아니라 취약계층이 자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법 시행을 앞두고 발 빠르게 준비해 이미 설립신고를 마친 곳이 많지만, 아직까지 법 시행 초기이다 보니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폭발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뭔가요?”라는 초보적인 질문에서부터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차이점은?”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구체적 질문까지 다양한 글들이 올라와 있다.
협동조합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설립 과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서울시와 대전시는 법 시행 이전인 2011년 11월 1일부터 상담센터를 위탁, 운영해오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권역별로 운영 중인 4개 상담센터가 지난 50일간 상담한 실적은 총 1009건에 달하고, 시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협동조합은 31곳이다.
노욱 한살림서울생활협동조합 상담센터장에 따르면, 지금까지 상담 126건이 이뤄졌다. 노 센터장은 “센터 개설 초기에는 협동조합에 대한 일반적인 문의가 대부분이었으나 법이 시행되면서 설립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문의가 늘어났다. 상담내용도 협동조합 설립 절차와 필요한 서류, 서류 작성법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많다”고 말했다. 또한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협동조합으로 활로를 찾으려는 소상공인이나 직장인이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들은 일정 정도 기술과 경험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실제로 조합 설립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대전시 풀뿌리협동조합 상담센터 담당자에 따르면, 하루 평균 3~4건의 상담이 이뤄진다고 한다.
상담센터를 찾는 사람의 연령층은 40~50대가 가장 많으며, 대학생을 비롯한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그중 은퇴를 앞두었거나 은퇴자가 많은 50~60대는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반면 20대 대학생은 학교나 대학생활협동조합, 사회단체 등을 통해 협동조합을 접하고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핵심 중의 핵심은 민주적 운영
서울시 신청사 1층에 마련한 열린민원실 내 ‘협동조합 신고지원 창구’ 전경(위). 수원시는 2012년 12월 21일 김기태 한국협동 조합연구소 소장을 초빙해 협동조합설립 희망자에게 교육을 실시했다(아래).
협동조합의 장점은 배당보다 서비스 이용이 목적이기 때문에 큰 수익을 기대하지 않아도 조합원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사업체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원가에 지속가능성을 위한 최소한의 마진만 더한 가격으로 운영할 수 있어 협동조합을 이용하는 조합원들의 비용절감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소수 지배주주의 의사결정 방식으로 운영되는 일반 기업에 비해 조합원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적 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해야 하는 만큼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시간과 비용이 더 소요될 수 있다. 이러한 단점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주의를 당부한다.
노욱 센터장은 “일반 협동조합은 엄연한 사업체이기 때문에 사회와 시장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비즈니스 모델을 잘 만들어야 사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협동조합을 유지할 수 있다. 협동조합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버리고 냉철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주의점은 또 있다. 협동조합은 출자금 액수와 상관없이 1명1표를 행사하는 여러 사람이 모인 조합인 만큼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따라서 운영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조합원 사이의 갈등을 없애야 한다. 갈등을 줄이려면 목표와 생각을 공유하는 조합원의 동질성이 중요한 만큼 조합원을 신중하게 구성해야 한다. 특히 어떤 사업에 어떤 유형의 협동조합이 적합한지를 따지는 것이 협동조합 성공의 필수요건이다.
한편 협동조합 설립 과정에서 필요한 사업계획서, 사업 관련 인·허가증 등 관련 서류가 적지 않으므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일반 협동조합의 설립 과정은 발기인 모집(조합원 자격을 갖춘 5명 이상) → 정관 작성(목적, 명칭 및 주된 사무소 소재지, 조합원과 대리인 자격, 조합원의 가입과 탈퇴 및 제명에 관한 사항, 출자 1좌의 금액과 납부 방법 및 시기, 조합원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사항, 잉여금과 손실금 처리에 관한 사항, 사업 범위 및 회계에 관한 사항, 해산에 관한 사항, 총회와 이사회 운영 등 14가지 필수 항목 기재) → 설립 동의자 모집-창립총회 → 설립 신고(정관 1부, 창립총회 의사록 1부, 사업계획서 1부, 임원명부 1부에 임원 이력서 및 사진 게재, 설립 동의자 명부 1부 등 제출) → 사무 인수인계(발기인에서 이사장으로) → 출자금 납부 → 설립 등기(관할 등기소) → 협동조합(법인격 부여) 출범으로 이뤄진다.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 과정은 일반 협동조합과 유사하지만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5명 이상의 ‘설립 동의자 모집’은 일반 협동조합과 같지만, 반드시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를 2명 이상 포함해야 한다. ‘설립 신고’가 아닌, 소관 중앙부처 장으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아야 하는 점도 일반 협동조합과 다르다.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상담센터를 내방한 사람이 협동조합과 관련한 상담을 받고 있다.
“협동조합 설립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구체적으로 접근하면 생각보다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설립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정관 작성’ 시 설립 예정인 법인(협동조합)의 명칭이 기존에 있는 법인 명칭과 동일한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특별시와 광역시를 포함해 시군구 안에서는 동일한 명칭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일 명칭 여부는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정관 작성 시 사업계획 및 예산안이 필요하므로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그에 따른 최소 1년간 소요 예산을 미리 계획하고 작성해야 한다. 사업계획서에는 조합원과 직원에 대한 상담·교육 훈련·정보 제공 사업, 협동조합 간 협력을 위한 사업, 협동조합의 홍보 및 지역사회를 위한 사업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그 밖에 설립 신고 전 협동조합의 사업 내용에 따라 관련법에 의거, 사업자등록을 해야 한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협동조합 설립 신고 시 서류가 미비하면 ‘보완’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협동조합 신고필증 교부가 미뤄질 수 있다. 한편 ‘설립 등기’ 과정에 필요한 서류로는 설립등기신청서, 설립 신고서(신고필증), 창립총회 의사록 사본, 정관 사본 등이 있으며 창립총회 의사록은 공증을 받아야 한다. 정관 사본은 기획재정부가 고시한 ‘협동조합 표준정관례’를 참조해 작성한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은 “협동조합은 사람(조합원)이 중요한 인적 결사체다. 다시 말해 사람이 모여 만든 하나의 사회인 동시에 사업체이다. 사업을 통해 인적 결사체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잘 잡아가야 하는데, 사실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상담하다 보면 ‘협동조합을 하면 돈을 잘 버나’ ‘정부 지원이 있나’ 같은 금전과 관련한 질문이 많다. 그런데 협동조합을 운영할 때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이 깨지면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고 충고했다.
협동조합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지자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담센터를 전국적으로 늘리는 데 필요한 지원을 모색 중이다. 법 시행 초창기인 만큼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 부족, 정보 부족과 관련해 그 보완책으로 교육과 홍보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