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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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족 부흥 완성!”

시진핑 ‘제2 남순강화’ 통해 국정운영과 10년 밑그림 공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2-12-31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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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민족 부흥 완성!”

    2012년 12월 8일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남해함대 소속 최신예 구축함 하이커우호에 올라 해상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2012년 12월 8일 오전 9시 55분 광둥성 선전시에 있는 롄화산 공원을 깜짝 방문했다. 이 공원에는 개혁·개방 정책을 총설계한 덩샤오핑 동상이 있다. 미니버스를 타고 이곳을 찾은 시 총서기는 동상에 헌화하고 세 번 허리를 숙여 절했다. 이날 행사는 중국 역대 국가 최고지도자들이 방문했을 때와 달리 매우 조촐하게 진행됐다. 어떤 의전 절차도 없었고, 환영 현수막을 내걸거나 붉은 카펫을 깔지도 않았다. 공원에 아침 운동을 나온 시민 200여 명이 시 총서기 주변으로 몰려들었는데도 경호원과 공안요원들이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덩샤오핑과 시중쉰의 그림자

    시 총서기는 즉석연설을 통해 “개혁·개방 정책은 정확한 결정이었으며, 중국은 앞으로도 부국부민(富國富民)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사는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 총서기는 현장을 떠나기 전 시민들과 악수를 나눴다. 방탄 승용차 대신 소형 버스에 올라타서는 창문을 열어 손을 흔드는 등 격의 없는 모습도 보였다. 관영 신화통신을 비롯해 대규모 기자단이 동행 취재하지도 않았고, 남방일보 등 일부 현지 언론만 행사 내용을 보도했다.

    시 총서기가 덩샤오핑을 롤모델로 삼고 ‘제2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개혁·개방 정책을 강조하고 나섰다. 남순강화는 1989년 톈안먼 사태, 1991년 옛 소련과 동구권 붕괴 이후 계획경제 복귀를 주장하는 보수파 목소리가 높아지자, 덩샤오핑이 88세 노구를 이끌고 1992년 1월 18일부터 2월 21일까지 선전, 상하이, 주하이 등 남부 경제특구를 순시하면서 개혁·개방 정책 확대를 역설한 것을 말한다. 시 총서기는 2012년 12월 7∼11일 취임 후 첫 지방 시찰에 나서면서 ‘개혁·개방 1번지’라고 부르는 선전을 비롯해 주하이, 포산, 후이저우, 광저우 등을 방문, 개혁·개방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시 총서기의 첫 지방 시찰은 여러모로 덩의 남순강화와 판박이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시 총서기가 ‘친민(親民) 스타일’을 선보인 점이다. 선전에서 숙박할 때는 영빈관을 마다하고 호텔 스위트룸도 아닌 일반 객실을 사용했으며, 식사도 호텔 뷔페에서 해결했다. 대중교통 통제도 최소화했으며, 시민들과 자유롭게 악수하고 유아원을 방문해 어린이를 안아주기도 했다. 한 가정집을 방문해서는 비가 새는 지붕을 수리해줄 것을 지시했다. 이 같은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 ‘정치 쇼’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민생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시 총서기의 ‘덩샤오핑 따라 하기’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지난 30여 년간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 등 각종 불평등이 심화하고 부정부패가 확산하면서 국민 불만이 고조된 상태다. 특히 당내에선 개혁·개방 정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다. 시 총서기는 개혁·개방 노선에 대한 의구심이나 부정적 여론에 쐐기를 박고 앞으로 각종 부작용을 해결하는 동시에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려고 제2 남순강화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국유기업 개혁, 부정부패 척결

    “중화민족 부흥 완성!”
    또 다른 측면에서는 아버지 시중쉰 전 부총리의 유지를 이어갈 것임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문화대혁명 당시 숙청됐다가 1978년 광둥성 당서기로 복직한 시중쉰은 선전을 경제특구로 지정해줄 것을 덩에게 건의하는 등 개혁·개방 선구자라는 말을 들어왔다. 당시 시중쉰은 굶주린 선전 주민이 철조망을 넘어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으로 집단 탈주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시중쉰의 경제특구 설립안은 당내 보수파 반대에 부닥쳤지만 덩이 지지함으로써 중국이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시 총서기의 첫 시찰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정치적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한편 시 총서기의 행보는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차별화하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 후 주석은 2002년 12월 5일 총서기 취임 이후 첫 지방 시찰지로 ‘공산혁명의 성지’ 시바이포를 방문해 혁명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시바이포는 허베이성 스자좡시에 있는데,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이 1949년 본토에서 국민당 세력을 몰아낸 뒤 베이징 입성을 앞두고 국정운영을 구상했던 곳이다. 당시 후 주석이 마오의 공산혁명을 추종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면, 시 총서기는 덩의 정신을 이어받을 것임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시 총서기는 덩의 남순강화를 수행했던 원로 간부 4명과 함께 일부 일정을 소화했고, 덩이 장녀 덩린을 데리고 다녔듯이 외동딸 시밍쩌와 동행했다.

    시 총서기는 시찰 현장에서 “빈말은 나라를 망칠 뿐, 실천으로 나라를 키워야 한다(空談誤國, 實干興邦)”는 덩의 남순강화 한 대목을 거듭 언급했다. 선전에서는 민간기업 두 곳을 방문해 지지 의사를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후 주석 집권 시절, 중국 경제는 발전했지만 경제발전의 주역인 민간기업은 국유(국영)기업에 비해 푸대접을 받았다. 이 때문에 시 총서기는 앞으로 후 주석과 다르게 개혁·개방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민간기업에 상당한 비중을 둘 가능성이 높다. 시 총서기가 “경제구조의 전략적 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국유기업에 대한 개혁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에는 국유기업이 14만5000여 개 있으며, 이들이 기업 전체 순이익의 43%를 차지한다. 은행, 석유, 통신, 건설 등 주요 산업을 독점한 초대형 국유기업들은 관리들과 결탁해 대출 등에서 온갖 특혜를 누려왔다. 이런 구조를 혁신하지 않으면 중국 경제의 앞날이 어둡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화민족 부흥 완성!”

    2012년 12월 11일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광둥성 한 마을을 방문해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유기업 개혁은 부정부패 척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동안 당정, 군부 고위 간부들과 가족 등 권력 실세들은 국유기업과 결탁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시 총서기는 최우선 과제로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운 바 있다. 그는 11월 17일 취임 후 처음 열린 정치국 집체학습연설에서 “부패가 만연하면 당도, 국가도 망한다”고 경고했다. 시 총서기가 부정부패 척결에 나선 것은 박사학위 논문지도 교수이자 멘토로 알려진 쑨리핑 칭화대 교수의 영향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쑨 교수는 “당이 앞으로 5~10년 내 과오를 바로잡지 못하면 국가에 큰 변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 총서기는 첫 시찰에 맞춰 주하이시 헝친신구, 광저우시 난사신구, 사오관시 스싱현 등 3개 지역을 반부패 시범특구로 선정했다. 시 총서기는 이들 3곳을 부정부패 척결의 교두보로 삼아 단계적으로 전국으로 확대해나간다는 전략이다.

    구축함 타고 남중국해 항해

    시 총서기 행보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군사력 강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시 총서기는 2012년 12월 8~10일 인민해방군 남해함대와 광저우 군구 본부, 선전과 주하이의 전차 부대 등을 방문했다. 시 총서기가 후 주석으로부터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넘겨받아 군권을 장악한 후 일선 부대를 찾은 것은 당시가 처음이다. 특히 시 총서기는 남해함대의 구축함 하이커우호에 승선해 남중국해를 항해하며 함포 사격 훈련 등을 지켜봤다. 선상 식당에서 직접 식판에 밥을 퍼 담아 사병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이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시 총서기는 광저우 군구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싸우면 이기는 것이 강군의 핵심 요소”라면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부국(富國)과 강군(强軍)을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총서기가 구축함을 타고 남중국해를 둘러본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일이다. 남중국해는 중국이 필리핀,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지역이다. 중국 정부는 시 총서기 체제 출범 후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강도 높은 영유권 강화 조치를 잇달아 내놓았다. 주변국들과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는 지역을 자국 영토로 표시한 지도를 인쇄한 새 전자여권을 제작해 발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여권에서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대부분과 필리핀,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연안은 물론 인도와의 국경 분쟁 지역, 대만 등을 모두 자국 영토로 표시했다. 특히 남중국해의 경우, 중국이 1948년 일방적으로 설정한 이른바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nine dash line)’을 근거로 지도를 작성했다. 남해구단선은 중국이 남중국해의 80%에 달하는 지역을 자국 영토로 주장하려고 그려놓은 9개 선을 말한다.

    이와 함께 중국은 남중국해를 불법 진입하는 외국 선박을 단속한다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했다. 남중국해를 관할하는 하이난성 인민대표대회가 통과시킨 조례를 보면 남중국해 도서에 불법 상륙하거나 남중국해에 불법 진입하는 외국 선박에 대해 승선 임검(검문), 선박 검사, 추방, 정선 명령, 항로 변경 지시, 회항 명령 등 6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돼 있다. 2013년 1월 1일부터 발효된 이 조례에 따라 중국 정부는 공권력을 행사할 계획이다.

    시 총서기는 남해함대와 광저우 군구 방문에 앞서 2012년 12월 5일 베이징에서 제2포병 부대 지휘관들을 만나 미사일 전력 강화를 지시했다. 제2포병 부대는 1966년 창설한 전략 미사일 부대로 단·중·장거리 지대지미사일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직접 지휘하는 제2포병은 육·해·공 3군 편제와 별도로 편성됐으며 본부는 베이징에 있다. 시 총서기는 군권을 잡은 후 가장 먼저 웨이펑허 제2포병 사령원(사령관) 겸 중앙군사위 위원에게 상장 계급장을 수여한 바 있다. 시 총서기는 “제2포병 부대는 중국 전략 억지력에서 핵심이며 대국 지위를 떠받치는 버팀목”이라고 강조했다.

    시 총서기의 목표는 부국강병을 통해 중화민족의 부흥을 완성하는 것이다. 부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계속 추진하되 민생에 역점을 두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것이다. 강병은 말 그대로 군사력 강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시 총서기의 제2 남순강화는 앞으로 자신이 통치할 10년간의 국정운영과 목표에 첫발자국을 새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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