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사철(文史哲). 전통 인문학 분야인 문학, 역사, 철학을 이르는 말이다. 한때 문사철이 밥 먹여주느냐는 말이 있었다. 지금도 문사철은 배고프다. 하지만 최근 경영계에 인문학 바람이 불면서 세간의 관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기초단체장 중에선 독특하게 인문학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둔 유종필(54 ·서울대 철학과 78학번) 서울 관악구청장은 “인문학을 공부한 것이 구청장직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는 실제로 인문학 전도에 무모하리만큼 열심이다.
선거공약집 내용의 3분의 2를 도서관 관련 내용으로 채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반신반의하는 공무원과 지역민에게 보란 듯이 색다른 도서관을 하나씩 만들어 보이고 있다. “도서관에 돈을 다 쓸 참이냐” 또는 “돈 안 되는 일을 왜 하느냐”는 비난이 없지 않았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까지 하러 오는 요즘은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도서관 전문가다.
현실이 돼가는 ‘걸어서 10분 도서관’ 공약
유 구청장의 첫 작품은 관악산 초입의 ‘관악산 시(詩) 도서관’이다. 오며 가며, 또 누군가를 기다릴 때 시 한 수라도 읽으라는 취지에서 만들었는데 이제는 유명 장소가 됐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도서관은 꿈꾸는 자, 미래를 도모하는 자, 잡시커(jobseeker·구직자)의 오아시스가 돼야 한다’고 믿는 그는 도서관에 일자리센터까지 개설했다. 이곳에선 전문 취업상담사가 취업알선을 해준다.
작은 도서관 ‘책이랑 놀이랑 도서관’은 더욱 놀랍다. 아예 바닥 일부를 온돌로 만들었다. 책을 보기도 하고, 던지면서 놀기도 하고, 베고 자기도 하면서 꿈꾸라는 게 이 도서관의 개설 취지이자 그의 소신이기도 하다. 그의 작지만 웅대한 소신은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대학을 중퇴한 빌 게이츠가 사업 아이디어를 얻은 곳이 바로 동네 도서관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이 말을 사람을 볼 때마다 자주 강조합니다. 어렸을 때 읽은 책 한 권이 운명을 바꾼다는 소신을 갖고 있죠.”
올 하반기에는 하난곡 경로당의 여유 공간에 작은 도서관을 개설하고, 동 통폐합으로 발생한 유휴 동청사 도서열람실 5곳도 작은 도서관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시와 음악이 흐르는 공중화장실 사업의 하나로 지난 5월 신축한 신대방역 공중화장실에 시집 200권도 비치할 예정이며, 2014년까지 새마을문고 21곳도 모두 작은 도서관으로 바꿀 생각이다. ‘걸어서 10분 도서관’이라는 선거공약은 이렇게 현실이 되고 있다.
대학시절을 보낸 관악구는 유 구청장에게 제2의 고향과도 같다. “지난 일요일에도 서울대 도서관, 그때 그 자리에 다녀왔다”는 그다. 그래서일까. 책상 옆엔 책이 벽돌처럼 쌓여 있다. 요즘 어떤 책을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실리콘밸리를 알아야 벤처가 보인다’를 꼽았다.
낙성대 일대에 관악벤처밸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그의 또 다른 꿈이다. 그래서 청장 취임 이후 서울대와 관학협력을 강화하는 일에도 공을 들였고 ‘관악 Edu-Valley 2020’계획도 수립했다. 중앙정부로부터 교육특구로 지정받기도 했다. 과거 어느 청장 때보다 서울대와 관계가 좋다고 자신하는 그는 서울대를 기반으로 관악벤처밸리 구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나온 실리콘밸리 관련 책도 섭렵했다. 서울대 앞 낙성대동이 그 중심이 될 예정이다. 유치를 희망하는 분야는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연구개발(R·D) 센터로, R·D 산업 클러스터 조성이 목표다.
‘사람 중심 관악특별구’ 비전 제시
유 구청장은 남다른 지역개발론을 갖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남부순환도로 주변 토지의 종 상향 조정 문제에 관심이 지대한데, 2014년 남부순환 도시고속도로가 생기면 남부순환도로의 상시 정체 문제가 크게 해소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2016년까지는 난곡길에 지하 경전철도 들어선다. 이렇게 지역의 교통문제가 해결되면 관악구는 좀 더 살기 좋은 기초단체로서 토대를 마련하는 셈이다.
더욱이 관악구는 강남 일대보다 집값과 땅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거기에 서울대라는 지식기반과 관악산이라는 자연환경도 갖췄다. 이 모든 유인 요인을 활용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것이 그의 의도다. 유 청장은 이 대목에서 “해당 기업에 최대한 혜택을 부여하겠다”는 점을 거듭 역설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현재 남부순환도로 주변 토지의 종 상향 조정 문제를 검토 중이다.
유 청장이 설정한 관악구 비전은 ‘사람 중심 관악특별구’다. 이 비전하에 미래성장 동력으로서 지식문화특구, 꿈과 희망이 넘치는 교육혁신특구, 사람에게 투자하는 일자리복지특구,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환경특구, 구민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행정 특구를 5대 핵심 과제로 정하고 모두 54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구민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행정특구 과제와 관련해서는 ‘우문현답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여기에서 우문현답이란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의 줄임말이다. 실제 유 청장은 현장에 가기를 즐긴다. 인터뷰 중에도 등산화에 가까운 두툼한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언제든 관내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구청장이 동장이 되는 1일 동장제도와 사람 중심 관악특별위원회도 운영 중입니다. 현장중심주의는 지역민과 관악구청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 구실을 하죠.”
지역민과 활발하게 접촉하는 유 청장에게 가장 큰 고충은 각종 행사에 참석해달라는 지역 단체의 요청이다. 정치인으로서 이런 요청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불러주기를 내심 기다리는 정치인이 있는 것도 현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이를 과감히 거절했다고 한다.
“하나 둘씩 챙기다 보면 너무 많아져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아주 가끔은 평일 일과시간 중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해와 곤욕스러울 때도 있죠. 처음에는 섭섭해하는 지역민도 많았지만, 사정을 설명하고 그대로 밀고 나갔더니 이제는 다 이해해줍니다.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지역 정치풍토를 바꿔놓은 것에 그들도, 저도 보람을 느낍니다.”
유 구청장은 취임 100일 만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주최한 2010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기초자치단체장 선거공약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일찌감치 구청장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은 것.
취임 1주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그는 쉼 없이 달려왔고 공약을 하나씩 현실로 바꿔놓고 있다. 지금도 유 구청장은 문사철의 상상력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낼 기대를 안고 꿈을 꾸는 데 여념 없다. 그의 책상에는 ‘실리콘밸리를 알아야 벤처가 보인다’와 ‘꿈의 도시 꾸리찌바’라는 제목의 책이 아래위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기초단체장 중에선 독특하게 인문학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둔 유종필(54 ·서울대 철학과 78학번) 서울 관악구청장은 “인문학을 공부한 것이 구청장직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는 실제로 인문학 전도에 무모하리만큼 열심이다.
선거공약집 내용의 3분의 2를 도서관 관련 내용으로 채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반신반의하는 공무원과 지역민에게 보란 듯이 색다른 도서관을 하나씩 만들어 보이고 있다. “도서관에 돈을 다 쓸 참이냐” 또는 “돈 안 되는 일을 왜 하느냐”는 비난이 없지 않았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까지 하러 오는 요즘은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도서관 전문가다.
현실이 돼가는 ‘걸어서 10분 도서관’ 공약
유 구청장의 첫 작품은 관악산 초입의 ‘관악산 시(詩) 도서관’이다. 오며 가며, 또 누군가를 기다릴 때 시 한 수라도 읽으라는 취지에서 만들었는데 이제는 유명 장소가 됐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도서관은 꿈꾸는 자, 미래를 도모하는 자, 잡시커(jobseeker·구직자)의 오아시스가 돼야 한다’고 믿는 그는 도서관에 일자리센터까지 개설했다. 이곳에선 전문 취업상담사가 취업알선을 해준다.
작은 도서관 ‘책이랑 놀이랑 도서관’은 더욱 놀랍다. 아예 바닥 일부를 온돌로 만들었다. 책을 보기도 하고, 던지면서 놀기도 하고, 베고 자기도 하면서 꿈꾸라는 게 이 도서관의 개설 취지이자 그의 소신이기도 하다. 그의 작지만 웅대한 소신은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대학을 중퇴한 빌 게이츠가 사업 아이디어를 얻은 곳이 바로 동네 도서관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이 말을 사람을 볼 때마다 자주 강조합니다. 어렸을 때 읽은 책 한 권이 운명을 바꾼다는 소신을 갖고 있죠.”
올 하반기에는 하난곡 경로당의 여유 공간에 작은 도서관을 개설하고, 동 통폐합으로 발생한 유휴 동청사 도서열람실 5곳도 작은 도서관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시와 음악이 흐르는 공중화장실 사업의 하나로 지난 5월 신축한 신대방역 공중화장실에 시집 200권도 비치할 예정이며, 2014년까지 새마을문고 21곳도 모두 작은 도서관으로 바꿀 생각이다. ‘걸어서 10분 도서관’이라는 선거공약은 이렇게 현실이 되고 있다.
대학시절을 보낸 관악구는 유 구청장에게 제2의 고향과도 같다. “지난 일요일에도 서울대 도서관, 그때 그 자리에 다녀왔다”는 그다. 그래서일까. 책상 옆엔 책이 벽돌처럼 쌓여 있다. 요즘 어떤 책을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실리콘밸리를 알아야 벤처가 보인다’를 꼽았다.
낙성대 일대에 관악벤처밸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그의 또 다른 꿈이다. 그래서 청장 취임 이후 서울대와 관학협력을 강화하는 일에도 공을 들였고 ‘관악 Edu-Valley 2020’계획도 수립했다. 중앙정부로부터 교육특구로 지정받기도 했다. 과거 어느 청장 때보다 서울대와 관계가 좋다고 자신하는 그는 서울대를 기반으로 관악벤처밸리 구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나온 실리콘밸리 관련 책도 섭렵했다. 서울대 앞 낙성대동이 그 중심이 될 예정이다. 유치를 희망하는 분야는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연구개발(R·D) 센터로, R·D 산업 클러스터 조성이 목표다.
‘사람 중심 관악특별구’ 비전 제시
유 구청장은 남다른 지역개발론을 갖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남부순환도로 주변 토지의 종 상향 조정 문제에 관심이 지대한데, 2014년 남부순환 도시고속도로가 생기면 남부순환도로의 상시 정체 문제가 크게 해소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2016년까지는 난곡길에 지하 경전철도 들어선다. 이렇게 지역의 교통문제가 해결되면 관악구는 좀 더 살기 좋은 기초단체로서 토대를 마련하는 셈이다.
더욱이 관악구는 강남 일대보다 집값과 땅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거기에 서울대라는 지식기반과 관악산이라는 자연환경도 갖췄다. 이 모든 유인 요인을 활용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것이 그의 의도다. 유 청장은 이 대목에서 “해당 기업에 최대한 혜택을 부여하겠다”는 점을 거듭 역설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현재 남부순환도로 주변 토지의 종 상향 조정 문제를 검토 중이다.
유 청장이 설정한 관악구 비전은 ‘사람 중심 관악특별구’다. 이 비전하에 미래성장 동력으로서 지식문화특구, 꿈과 희망이 넘치는 교육혁신특구, 사람에게 투자하는 일자리복지특구,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환경특구, 구민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행정 특구를 5대 핵심 과제로 정하고 모두 54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구민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행정특구 과제와 관련해서는 ‘우문현답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여기에서 우문현답이란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의 줄임말이다. 실제 유 청장은 현장에 가기를 즐긴다. 인터뷰 중에도 등산화에 가까운 두툼한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언제든 관내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구청장이 동장이 되는 1일 동장제도와 사람 중심 관악특별위원회도 운영 중입니다. 현장중심주의는 지역민과 관악구청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 구실을 하죠.”
지역민과 활발하게 접촉하는 유 청장에게 가장 큰 고충은 각종 행사에 참석해달라는 지역 단체의 요청이다. 정치인으로서 이런 요청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불러주기를 내심 기다리는 정치인이 있는 것도 현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이를 과감히 거절했다고 한다.
“하나 둘씩 챙기다 보면 너무 많아져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아주 가끔은 평일 일과시간 중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해와 곤욕스러울 때도 있죠. 처음에는 섭섭해하는 지역민도 많았지만, 사정을 설명하고 그대로 밀고 나갔더니 이제는 다 이해해줍니다.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지역 정치풍토를 바꿔놓은 것에 그들도, 저도 보람을 느낍니다.”
유 구청장은 취임 100일 만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주최한 2010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기초자치단체장 선거공약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일찌감치 구청장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은 것.
취임 1주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그는 쉼 없이 달려왔고 공약을 하나씩 현실로 바꿔놓고 있다. 지금도 유 구청장은 문사철의 상상력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낼 기대를 안고 꿈을 꾸는 데 여념 없다. 그의 책상에는 ‘실리콘밸리를 알아야 벤처가 보인다’와 ‘꿈의 도시 꾸리찌바’라는 제목의 책이 아래위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1유종필 구청장(오른쪽)은 현장을 발로 누비며 구정을 살핀다. 2낙성대공원에도 작은 도서관이 세워졌다. 3 관악산 초입에 자리 잡은 ‘시(詩) 도서관’. 4 봉투 붙이기 체험을 하고 있는 유종필 구청장(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