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재(51·민주당) 파주시장은 자기 소신을 밝히는 데 거침이 없다. 그는 “시정을 펼치는 기준은 파주시와 시민에게 이익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라며 “이념과 정파 이익은 그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당당한 그의 모습은 ‘시민 먼저’라는 자부심에서 비롯한 셈이다. 진보 진영에서 반대한 6·25 참전 기념비를 임진각에 세우고, 보수가 반대하는 무상급식 실현에 앞장선 그에게 언론은 ‘보수꼴통 좌파’라는 별칭을 붙였다. 모순처럼 보이는 이 별칭은 역설적으로 그가 이념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증거다. 또한 그는 스스로 ‘파주당’ 소속임을 자랑한다. 민주당 공천으로 당선했지만 시정을 펼치는 데는 정파보다 ‘시민’ 이익이 먼저라는 생각에서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구제역 파동으로 큰 고통을 겪었던 파주시는 그 이후 구제역 백서를 펴냈다. 제목은 ‘매뉴얼도 알려주지 않은 구제역 희망백서’. ‘현장과 매뉴얼을 오가며 좌충우돌 답을 찾은 잘잘못 고백서’라는 부제도 붙었다. 잘한 것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도 함께 고백하겠다는 뜻의 이 부제는 그의 평소 시정 운영의 단면을 잘 담았다. 6월 27일 오후 파주시장실에서 ‘보수꼴통 좌파’ 이 시장을 만났다. 지난 1년간 시정을 이끈 소감을 묻자 그는 대뜸 ‘거화취실(去華就實)’이라고 답했다.
“화려한 것을 버리고 내실을 기한다는 뜻입니다. (시장에 취임해) 파주시 살림을 들여다보니 부채는 많고 교육 투자는 최하위권이었습니다. 외부에 알려진 (파주시의) 화려한 이미지에 비해 내적으로 체력이 많이 떨어졌죠. ‘파주는 잘나갑니다’라고 자랑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을 과감히 공개하고 수술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먼저 ‘빚 안 지고 살자’라는 목표를 세웠다. 예산을 아껴 쓰고 지방채 발행도 최소화했다. 4년 임기 내에 파주시 빚 1600억 원 가운데 절반 이상을 갚는 것이 목표다.
“올해에만 200억 원을 갚을 예정입니다. 지난 1년처럼 예산을 운용하면 목표 달성이 가능할 듯합니다.”
집안 살림하듯 알뜰하게 시정을 이끈다는 그의 얘기에 공감하면서도 시민에게 돌아갈 혜택과 편의가 줄어드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일었다.
“빚 갚는 데 너무 신경 써서 시민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그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시민과 주민을 위해 쓸 돈은 도비, 국비에서 열심히 끌어옵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오랫동안 관료생활을 한 그는 중앙부처에 두루 포진한 고시 인맥을 적극 활용해 4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추가로 확보했다.
“다른 시군에 미안해 다 공개할 수 없지만, 도로 확충이나 하천 정비 등 주민 편익을 증진하는 데 쓸 사업비를 넉넉히 확보해뒀습니다.”
이 시장이 내세운 시정 목표는 ‘시민과 함께! 행복한 파주 만들기 프로젝트’다. 그는 자신의 시정 목표를 달성하려고 파주 균형 발전과 명품교육, 교통 선진도시 건설을 3대 역점 시책으로 추진한다.
파주 균형 발전을 위해 그는 지난해 9월 시민과 전문가로 구성된 균형발전자문위원회를 발족했다. 때마침 지난해 말 파주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됐고, 4월에는 접경지역지원법이 접경지역지원특별법으로 개정됐다. 균형 발전을 위한 법적, 제도적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자유로, 통일로, 내륙도로를 중심으로 파주 균형 발전을 위한 하드웨어 설계를 마친 그는 시민 삶의 질을 향상하는 소프트웨어를 강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그는 파주의 교육 경쟁력 강화에 관심이 많다.
“파주시에서 가장 시급하면서도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분야가 바로 교육입니다. 제가 시장에 취임한 뒤 교육예산을 3배 증액해 165억 원을 투입했습니다. 초등학생과 만 5세 유치원생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죠. 폐교를 이용해 방과 후 영어체험학교도 만들고 영어마을 위탁교육도 확대했습니다. ‘파주에 살면서도 서울 못지않게 자녀교육을 할 수 있구나’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고 싶습니다.”
파주시를 명품 교육도시로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파주를 세계적인 ‘책 도시’ 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이어진다. 파주시는 10월 출판문화단지에서 ‘파주BOOK소리2011’을 개최한다. 세계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수상작을 전시하는 ‘노벨문학상 110년 특별전’과 실크로드의 역사적 의미를 책으로 되살리는 ‘책으로 신(新)실크로드를 연다’ 같은 대규모 전시를 열 예정이다. 이뿐 아니라 한·중·일 아시아 편집자 대특강과 세계 출판포럼 등 출판 관련 전문가 대회도 계획하고 있다.
“파주BOOK소리2011은 민관이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입니다. 출판사가 행사 전반을 주도하고 시는 행사가 성공하도록 측면에서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할 계획이죠. 또 평소 찾는 사람이 적어 황량한 느낌마저 주는 출판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고 책방거리도 조성하고 있습니다.”
파주와 서울을 잇는 광역 교통노선을 확충한 것도 이 시장의 성과다. 그는 “파주에서 주요 도심 지역을 잇는 연계노선을 확충해 서울 도심으로의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켰다”면서 “교하신도시에서 서울역을 잇는 광역급행(M) 버스는 일산을 거치지 않고 제2자유로를 통해 서울 도심까지 곧바로 운행한다”고 말했다. 광역교통망 확충에 힘입어 파주는 이제 서울 주변 도시가 아닌 서울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부심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그는 왼쪽 가슴에 쌀과 책, 그리고 반도체가 한데 어우러진 배지를 달았다. 그가 직접 도안한 시 배지라고 한다.
“쌀은 농업도시 파주의 ‘근본’입니다. 그 위에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는 출판단지가 있고, ‘산업의 쌀’이라는 반도체를 파주에서 만들죠. 통일 한국의 ‘먹을거리’는 파주가 다 준비하는 셈입니다.”
그랬다. 파주는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가 살아 숨 쉬는 대한민국 축소판 같다.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한 파주의 내일은 곧 한반도의 미래이기도 하다. 파주 발전과 시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는 이 시장은 이렇게 다짐했다.
“잘한 것은 더 잘하고, 잘못한 것은 시정해나갈 겁니다.”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의 시정을 펼쳐 보이겠다는 그의 말에 믿음이 갔다.
1 파주시 균형 발전을 위해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2 파주는 명품 교육도시를 지향한다. 3 파주와 서울을 잇는 광역교통 노선을 늘렸다. 4 구제역으로 고통받는 축산농가를 방문한 이인재 시장(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