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루미에의 2005년산 와인.
이 마을 양조장 조르주 루미에(G. Roumier)를 찾았다. 지금은 양조장을 세운 조르주의 손자 크리스토프(Christophe)가 책임자다. 그가 와인셀러로 가자며 앞장섰다. 부르고뉴에선 보르도의 웅장한 지하셀러를 기대해선 안 된다. 아담한 셀러에서 그는 “2006년 빈티지는 2005년보다 못하지만 포도밭에서 더 많이 일을 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날씨가 좋으면 자연은 완벽한 포도를 농부에게 선사한다. 빈티지가 덜 좋다는 건 그만큼 농부의 노동이 더 필요하단 의미다. 일조량을 높이기 위해 잎사귀를 돌리거나 잘라내고, 질이 떨어지는 포도송이는 제거해야 한다. 수확량이 줄어들더라도 그렇게 해야 좋은 빈티지의 와인을 얻을 수 있다.
해발 300m 완만한 능선에서 수확 최고품질 자랑
부르고뉴의 모든 토지는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교회와 왕실 소유였다. 혁명 이후 시민에게 매각됐는데, 넓은 포도밭은 시민들이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소규모 단위로 나눠졌다. 나폴레옹 시대 만들어진 파격적인 상속법으로 모든 자녀는 남녀 평등하게 토지를 상속받게 됐는데, 이런 과정에서 포도밭은 다시 한 번 잘게 쪼개졌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부르고뉴의 포도밭은 대부분 여러 주인이 분할 소유하고 있다.
샹볼 뮈지니 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수십 개의 특별한 이름을 가진 포도밭이 있는데, 그중에서 ‘연인’이라는 뜻의 레자무레즈(Les Amoureuses)는 이 지역 최고의 포도밭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곳이다. 면적은 0.39ha. 즉 사방 62m 정도의 작은 구역이다. 크리스토프는 이곳에서 2005년에는 오크통(225ℓ들이 약 300병) 여섯 개 반을 채웠지만, 2006년에는 겨우 네 개 채웠다. 즉 2005년에는 2200병, 2006년에는 1200병을 생산했다. 수량이 적으니 와인도 귀하다.
2005년 레자무레즈는 체리향으로 꽉 찬 느낌이다. 부르고뉴의 훌륭한 빈티지가 선사하는, 약한 듯하나 형태가 일그러지지 않는 피네스(finesse·조화로움, 기품 등을 평가하는 와인 용어)를 실감케 했다. 부드러운 질감 속에 탱탱하게 당겨진 가녀린 실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침에 개봉했다는 말을 듣고 의아해하는 내게 크리스토프는 “15년 이상 숙성시킬 것”이라며 웃었다. 아직 오크통에 있는 2006년 레자무레즈는 통 속의 영향을 받아 감미로운 초콜릿과 바닐라 향이 풍성했다. 평소 오크의 화려한 향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레자무레즈는 좀 다르게 다가왔다. 체리와 장미의 향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