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침이 고인다</b><br> 김애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308쪽/ 1만원
손 기자는 “아비를 존경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딱한 눈으로 바라보지도 않는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상상력에서 문단은 새로운 가족 로맨스를 발견했기에 김애란에게 열광한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김애란을 눈여겨봐야 할 요인으로,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네의 모든 정보가 집결하고 관리되는 공간인 편의점을 통해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은밀한 작동원리를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톡톡 까발리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2005년 말에 나도 한 잡지에 ‘달려라 아비’를 올해의 책으로 추천했다. 내가 그 책을 추천한 이유는 김애란의 소설이 가장 탁월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면서 386세대의 자식 세대에 의한 ‘아버지’에 대한 조명이 곧 큰 화두가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사회에서는 박정희로 대표되는 아버지 세대와 현 정권 실세인 386세대가 남북문제나 민주화 같은 시대적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일단 386세대가 그 논쟁에서 ‘승리’했다고 볼 수 있지만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 아래 ‘먹고사는’ 문제만은 어쩌지 못해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 양쪽으로부터 배척당하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져들었다. 이때 김애란은 자식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실종됐다고 담담히 표현했는데 이것을 부재(不在) 상태인 아버지와 조심스럽게 화해를 모색하는 징후로 보았던 것이다.
‘침이 고인다’란 두 번째 소설집에서 김애란이 들고 나온 것은 ‘방’이다. 표제작은 자신의 13평 원룸에 우연히 찾아온,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은 기억을 가진 후배와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를 그린다. 여기서 원룸은 샤워기 아래서 그것을 아주 사실적이고 감각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공간이다.
‘도도한 생활’의 반지하방에 놓여 있는, 집주인에게 결코 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야 들여놓을 수 있었던 피아노는 개인의 자존심의 표상이다. ‘성탄특선’에서 한 쌍의 연인은 경제적 이유로 사귄 지 이태 동안 성탄 전야를 함께 지낼 수 없었지만, 정작 그 이유가 해소되고서는 함께 지낼 ‘지상의 방 한 칸’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자오선을 지날 때’의 주인공은 책상 한 칸이 내 몫의 공간, ‘모든 사람이 지나가는 곳’인 학원 근처 여성 전용 독서실에서 임용고사 재수생과 5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언니와 함께 지낸다. ‘네모난 자리들’에서 내가 그렇게 힘들여 찾아간 방은 늘 부재중이다. ‘기도’에서 나는 막내와 작은 원룸에서 함께 지내지만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언니는 신림동의 월 14만원에 공동욕실과 PC실이 있는 방으로까지 쫓겨 올라간다.
김애란의 작품에 등장하는 방이라는 공간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아마 ‘지구방’으로 불러도 무방할 만한 공간이다. 손에 손을 맞잡고 사는 ‘지구촌’이 아니라 0.5평일망정 자신의 공간이 존재한다면 그곳은 어느 곳이든 연결할 수 있는 방이 된다. 그 방에서 인터넷을 연결하면 그곳은 시장과 도서관, 사교클럽이 된다. 김애란의 소설에서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그만한 방 하나 마련하지 못해 힘겨운 삶을 억지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반지하방에 놓여 있는 치지도 못하는 피아노는 어쩌면 사치로 비쳐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지구방 하나 마련하기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견고해진 대학은 더는 지성과 감성을 기르는 공간이 아니다. 단지 취업을 위한 지식이나 조건을 마련하는 통과의례의 장소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온 가족이 희생해야 한다. 자식을 전교 1등으로 만든 강남 어머니가 쓴 책이 화제가 되는 세상에 더 말해 무엇하랴. 그렇다고 ‘잘난’ 대학 나왔다고 안정된 직장이 기다리고 있는가? 직장에 들어갔다고 평생이 보장되는가? ‘지상의 방 한 칸’이나마 유지하려고 평생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나라 전체가 ‘경제를 살리자’고 아우성이다. 그런 현실이 김애란으로 하여금 방 한 칸 마련에 목숨 거는 애처로운 인생들을 그리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번 소설집에서도 아버지는 무능의 극치를 달린다. 아버지가 자신 있게 할 줄 아는 말은 ‘그류’(그래유의 줄임말)라는 단 한마디다. 생활력 강한 어머니가 애써 벌어놓은 돈을 ‘그류’를 무심코 내뱉으며 남에게 빌려주거나 빚보증을 서 결국 가족을 궁지에 내모는 난감한 사람이다. 그러고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대학을 다니는 딸에게 돈을 요구하는 참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다. 한국사회가 ‘아버지’의 새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듯 김애란 소설의 아버지는 여전히 허공을 맴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