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1980년 5월. 광주에 사는 택시기사 민우(김상경 분)는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끔찍이 아끼는 동생 진우(이준기 분)와 단둘이 살고 있다. 우등생인 동생 하나만 바라보며 동생과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이요원 분)를 마음에 두고 그녀 곁을 빙빙 도는 민우.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들의 일상에 어느 날 총을 든 공수특전부대가 들이닥친다. 진우는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부지하지만 눈앞에서 사랑하는 이를 하나 둘 잃고, 신애 아버지이자 택시회사 사장인 퇴역장교 출신 흥수(안성기 분)를 중심으로 시민군을 결성해 10일간의 처절한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시민군 결성 10일간 사투 평범한 삶 바꿔
영화를 보면서 내내 강우석이라는 이름 석 자를 떠올렸다. ‘실미도’에서 까딱하면 계몽주의요, 어느 순간 신파 멜로가 돼버리는 위험한 외줄타기를 하면서 강우석 감독은 역사의 화마 속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감정을 조율(혹은 심하게 말하면 조작)하는 데 진력을 다했다.
‘화려한 휴가’는 ‘실미도’를 닮았다.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은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구성해 이해하기 쉽게 영화에 이야기를 얹어내며 관객을 정서적으로 설득하는 데 공을 들인다. 역사의 순간을 재현한다고 하지만, 마치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합쳐놓은 듯한 느낌.
애국가와 총소리 가슴 울리는 소리 압권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다. 이 눈물의 공식이 그토록 뻔하다면, 왜 그 배경이 광주여야 하는가. 나쁜 군인과 더 나쁜 5공화국에 짓밟힌 땅, 광주항쟁의 역사가 대체 우리 현대사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1987년 골방에서 읽어 내려가던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그로부터 20년 후 나온 이 영화가 다른 지점은 무엇인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식의 르포를 넘어, 그토록 오랜 시간 뒤에 나온 이 영화에는 정작 감독의 역사에 대한 해석은 부재한 듯 보인다. ‘화려한 휴가’는 광주라는 땅 위에 서 있지만 광주가 보이지 않는다.
근대화 이후 세계적으로 역사적 사건에는 늘 하나의 이미지가 존재해왔다. 케네디 암살 순간이 그렇고, 베트남 전쟁에서 맨몸으로 네이팜탄을 맞은 소녀가 울부짖으며 길거리를 뛰쳐나오는 사진이 그렇다. 광주항쟁의 모든 이미지를 대표하는 사진이라면 아버지의 영정을 든 소년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담은 ‘뉴욕타임스’ 보도사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짧게라도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들은 대부분 그때 그 이미지를 반복 재현하는 욕망에 시달리는 것 같다. 임상수의 ‘오래된 정원’에서 그러한 욕망을 느꼈고, 이번에도 나무관 옆의 소년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화려한 휴가’가 그려내고자 하는 핵심에 선 광주와 광주시민이다. 어떤 컷들은 보도사진전의 그때 그 순간처럼 정확한데, 또 다른 컷들 속의 광주시민은 개그맨처럼 웃고 웃기고, 천사처럼 해맑다가 독립투사처럼 정의롭다. 맛동산 CF를 보고, ‘전설의 고향’을 단체관람하다 비장한 각오로 총을 쥐어드는 이질적인 컷들의 조합은 감독의 분열증적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민중’이라는 실체에 대한 감독의 낙관적이면서 소박한 인식을 그릇 삼아 재구성된 광주는 개편된 국정교과서적 외침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영화 초반부의 광주민중에 대한 뭉뚱그려진 묘사는 90년대 이후 나타난 가족 멜로 속 주인공들 혹은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부성애 관련 영화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영화의 캐릭터와 이미지들은 어떤 클리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주목한 부분은 이미지가 아닌 ‘사운드’였다. 광주민중을 사지로 몰아넣는 장면에서는 애국가와 계엄령의 총소리가 몽타주처럼 조합돼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죽음과 국가를 연결하며 영화를 격상시켰다. 도청에서의 마지막 날 죽음을 앞에 두고 광주시민에게 “제 이름을 기억해주세요”라며 호소하던 간호사 신애의 목소리나 광주시민의 목소리도 죄다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다. 김지훈 감독은 이러한 사운드를 통해 자신이 전하고 싶은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소리들의 강약과 흐름과 끊김은 매우 흡인력 있게 영화 속 평이한 이미지들을 뒤덮는다.
영화 캐릭터와 이미지 틀 벗어나지 못해
결론적으로 광주에 대한 9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계보 - 장선우의 ‘꽃잎’에서 이창동의 ‘박하사탕’과 임상수의 ‘오래된 정원’을 거쳐 ‘화려한 휴가’에 이르기까지 - 를 보면 광주에 대한 영화들은 오히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듯하다. 차라리 ‘화려한 휴가’가 광주사건에 대해 입을 뗀다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던 그 암흑의 시대에 나왔다면, 그리고 ‘꽃잎’이 한국영화가 뿌리부터 고사하고 있는 듯한 이 여름에 나왔다면 더 좋았겠다는 엉뚱한 상상마저 든다.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죽었던 광주의 진실은 여전히 먼 어둠 속에 잠겨 있다. 누가 영화라는 작두 위에서 빛고을의 상처에 씻김굿을 할 것인가. 폴 그린 그래스의 ‘블러디 선데이’에 나오는 다큐적인 방법도 좋고,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류의 숙연함도 좋다. 스크린에 재현된 광주를 보며 새로운 진실을 발견할 그날까지 귓가에 ‘나를 잊지 말라’고 호소했던 시민들의 가냘픈 목소리만이 뱅뱅 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