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모순이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다. 회심의 펀치를 날리려는 순간 카운터펀치가 들어온다. 창과 방패가 암수 한 몸으로 뒤엉켜 있다.
축구? 90분 동안 차고 달리는 이 역동성이야말로 모순덩어리다. 골을 넣어야 이기지만 수비를 허술하게 할 수는 없다. 축구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가 지닌 복합적 의미를 풀어보려는 이 연재의 맨 처음을 ‘모순’이란 단어로 시작하는 까닭은, 첫 회가 바로 오프사이드이기 때문이다.
오프사이드라는 발상 자체가 모순에서 비롯됐다. 축구의 기원에 대해서는 2000년 전쯤 중국 한나라에서 ‘츄슈’라는 놀이를 했다는 것을 포함해, 각 대륙의 유구한 민속문화가 거론된다. 그중에는 8세기경 영국 군인들이 템스 강으로 쳐들어온 덴마크 군대를 물리치면서 적군 장수의 머리를 발로 찬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규정 없애면 지루한 ‘뻥’ 축구만 반복
그러던 것이 마을 대항의 풍습이 됐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여했기 때문에 수십 명씩 우르르 몰려다녔고, 부상자도 많이 생겼다. 이로 인해 영국에서는 1310년경부터 1840년경까지 42차례나 축구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오프사이드의 원형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상대 진영에 너무 깊숙이 가 있으면 격투를 벌일 위험성이 있고, 또 쉽게 골을 넣으면 축제가 일찍 끝나기 때문에 일정 지점까지는 미리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오프사이드는 1863년 런던에서 11개 클럽이 모여 축구협회(The FA)를 창설하고 규칙을 정하면서 시작됐다.
오프사이드가 없는 축구를 잠시 상상해보자. 실제로 이런 푸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프사이드 때문에 골이 많이 터지지 않는다” “오프사이드 논란이 끊이지 않으니 없애는 게 낫겠다”…. 그러나 이 규정을 없앤 축구는 지금 우리가 보는 축구가 결코 아니다.
먼저 키 큰 공격수가 상대 문전에서 어슬렁거리고, 미드필더들은 웬만하면 크로스를 올린다. 지루한 ‘뻥’ 축구만 반복되는 것이다. 게다가 키가 작은 선수도 활약할 수 있는 현대 축구의 매력이 사라지고 만다. 이것은 결코 축구가 아니다.
다시 오프사이드를 적용해보자. 수비진은 상대 공격수를 멀찍이 밀어낸다. 그로 인해 최종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에 모순의 공간이 생긴다. 이 모순의 공간 때문에 일자 수비, 오버래핑, 월 패스, 섀도 스트라이커, 사이드 어태커 등의 용어가 실질적인 의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속적으로 오프사이드 규정을 완화해왔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때는 공격수가 상대 최종 수비수와 ‘동일선상’에 있을 경우 오프사이드가 아닌 것으로 고쳤다. 극단적인 수비 축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후인 2006년 독일월드컵부터는 오프사이드 구역 안에 있어도 공격 상황에 가담하지 않으면 반칙이 아닌 것으로 규정이 완화됐다. 그럼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공을 건드리지 않더라도 상대 문전으로 달려가는 것 자체가 ‘공격적 행위’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러 논란에도 오프사이드 규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규정으로 인해 상대의 전술을 역이용하려는 모순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축구의 역동성도 더욱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오프사이드 논란은 가벼운 찰과상에 불과하며, 오히려 그런 논란과 더불어 현대축구는 미증유의 흥미로운 용광로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다.
축구? 90분 동안 차고 달리는 이 역동성이야말로 모순덩어리다. 골을 넣어야 이기지만 수비를 허술하게 할 수는 없다. 축구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가 지닌 복합적 의미를 풀어보려는 이 연재의 맨 처음을 ‘모순’이란 단어로 시작하는 까닭은, 첫 회가 바로 오프사이드이기 때문이다.
오프사이드라는 발상 자체가 모순에서 비롯됐다. 축구의 기원에 대해서는 2000년 전쯤 중국 한나라에서 ‘츄슈’라는 놀이를 했다는 것을 포함해, 각 대륙의 유구한 민속문화가 거론된다. 그중에는 8세기경 영국 군인들이 템스 강으로 쳐들어온 덴마크 군대를 물리치면서 적군 장수의 머리를 발로 찬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규정 없애면 지루한 ‘뻥’ 축구만 반복
그러던 것이 마을 대항의 풍습이 됐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여했기 때문에 수십 명씩 우르르 몰려다녔고, 부상자도 많이 생겼다. 이로 인해 영국에서는 1310년경부터 1840년경까지 42차례나 축구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오프사이드의 원형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상대 진영에 너무 깊숙이 가 있으면 격투를 벌일 위험성이 있고, 또 쉽게 골을 넣으면 축제가 일찍 끝나기 때문에 일정 지점까지는 미리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오프사이드는 1863년 런던에서 11개 클럽이 모여 축구협회(The FA)를 창설하고 규칙을 정하면서 시작됐다.
오프사이드가 없는 축구를 잠시 상상해보자. 실제로 이런 푸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프사이드 때문에 골이 많이 터지지 않는다” “오프사이드 논란이 끊이지 않으니 없애는 게 낫겠다”…. 그러나 이 규정을 없앤 축구는 지금 우리가 보는 축구가 결코 아니다.
먼저 키 큰 공격수가 상대 문전에서 어슬렁거리고, 미드필더들은 웬만하면 크로스를 올린다. 지루한 ‘뻥’ 축구만 반복되는 것이다. 게다가 키가 작은 선수도 활약할 수 있는 현대 축구의 매력이 사라지고 만다. 이것은 결코 축구가 아니다.
다시 오프사이드를 적용해보자. 수비진은 상대 공격수를 멀찍이 밀어낸다. 그로 인해 최종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에 모순의 공간이 생긴다. 이 모순의 공간 때문에 일자 수비, 오버래핑, 월 패스, 섀도 스트라이커, 사이드 어태커 등의 용어가 실질적인 의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속적으로 오프사이드 규정을 완화해왔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때는 공격수가 상대 최종 수비수와 ‘동일선상’에 있을 경우 오프사이드가 아닌 것으로 고쳤다. 극단적인 수비 축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후인 2006년 독일월드컵부터는 오프사이드 구역 안에 있어도 공격 상황에 가담하지 않으면 반칙이 아닌 것으로 규정이 완화됐다. 그럼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공을 건드리지 않더라도 상대 문전으로 달려가는 것 자체가 ‘공격적 행위’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러 논란에도 오프사이드 규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규정으로 인해 상대의 전술을 역이용하려는 모순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축구의 역동성도 더욱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오프사이드 논란은 가벼운 찰과상에 불과하며, 오히려 그런 논란과 더불어 현대축구는 미증유의 흥미로운 용광로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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