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단군왕검에 의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고 한다.”(6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B.C. 2333).”(7차 교육과정 국사 교과서, 2005년)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년).”(국사 교과서, 2007년)
무엇이 다를까? 비슷한 그림을 보여주고 다른 부분을 찾아내는 퀴즈 같다. 국사 교과서에서 고조선 건국의 서술 방식은 이처럼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올해의 가장 큰 변화는 ‘건국되었다’ ‘건국되었다고 한다’처럼 수동태로 쓰였던 역사가 능동태로 바뀌었다는 것. 또 하나는 한반도의 청동기시대가 기원전 15~13세기에서 기원전 2000~1500년경으로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놓고 말이 많다. 그중에는 “표현만 바꿨다고 신화가 역사 되나” “한반도 청동기시대를 기원전 2000년까지 끌어올리는 등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교과서에 담는 것은 무리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도 역사왜곡을 하느냐”는 비판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건국되었다’에서 ‘건국하였다’로 바뀐 것은 단순 말장난이 아니라, 한반도의 청동기시대가 기원전 2000년경까지 올라간 것과 관계가 깊다. 역사학계의 통설상, 국가의 형성은 청동기시대에 비로소 이뤄졌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넉넉히 잡아도 기원전 15세기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됐다는 고조선은 신화 속의 이야기가 돼버린다.
하지만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은 청동기 문화의 한반도 전래 시기를 15세기 이전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즉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건국됐는지는 검증할 수 없지만, 돌도끼를 들고 뛰어다니던 원시사회가 아니라 국가라는 형태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아가 만일 고조선이 지금의 한반도가 아닌 훨씬 더 북방에 자리했었다면, 세계 어느 나라든 청동기시대가 되어야 나라가 세워졌다는 통설을 걷고 역사를 본다면, 논쟁의 방향은 또 달라질 수 있다.
사실 국사 교과서가 바뀌기 전에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논쟁을 촉발한 쪽은 출판계다. ‘단군과 고조선’(이형구, 1999) ‘고조선 사라진 역사’(성삼제, 2005)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이덕일, 2006) 같은 책이 고조선 역사 복원을 주장했고, 그중 일부가 이번 국사 교과서에 반영됐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게 고고학 학설’이라는 말처럼 학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처럼 진화한다. 이런 새로운 흐름을 정리하고 독자에게 널리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출판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B.C. 2333).”(7차 교육과정 국사 교과서, 2005년)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년).”(국사 교과서, 2007년)
무엇이 다를까? 비슷한 그림을 보여주고 다른 부분을 찾아내는 퀴즈 같다. 국사 교과서에서 고조선 건국의 서술 방식은 이처럼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올해의 가장 큰 변화는 ‘건국되었다’ ‘건국되었다고 한다’처럼 수동태로 쓰였던 역사가 능동태로 바뀌었다는 것. 또 하나는 한반도의 청동기시대가 기원전 15~13세기에서 기원전 2000~1500년경으로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놓고 말이 많다. 그중에는 “표현만 바꿨다고 신화가 역사 되나” “한반도 청동기시대를 기원전 2000년까지 끌어올리는 등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교과서에 담는 것은 무리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도 역사왜곡을 하느냐”는 비판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건국되었다’에서 ‘건국하였다’로 바뀐 것은 단순 말장난이 아니라, 한반도의 청동기시대가 기원전 2000년경까지 올라간 것과 관계가 깊다. 역사학계의 통설상, 국가의 형성은 청동기시대에 비로소 이뤄졌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넉넉히 잡아도 기원전 15세기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됐다는 고조선은 신화 속의 이야기가 돼버린다.
하지만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은 청동기 문화의 한반도 전래 시기를 15세기 이전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즉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건국됐는지는 검증할 수 없지만, 돌도끼를 들고 뛰어다니던 원시사회가 아니라 국가라는 형태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아가 만일 고조선이 지금의 한반도가 아닌 훨씬 더 북방에 자리했었다면, 세계 어느 나라든 청동기시대가 되어야 나라가 세워졌다는 통설을 걷고 역사를 본다면, 논쟁의 방향은 또 달라질 수 있다.
사실 국사 교과서가 바뀌기 전에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논쟁을 촉발한 쪽은 출판계다. ‘단군과 고조선’(이형구, 1999) ‘고조선 사라진 역사’(성삼제, 2005)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이덕일, 2006) 같은 책이 고조선 역사 복원을 주장했고, 그중 일부가 이번 국사 교과서에 반영됐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게 고고학 학설’이라는 말처럼 학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처럼 진화한다. 이런 새로운 흐름을 정리하고 독자에게 널리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출판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