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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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골프광, 사고 차에서 나오며 ‘빈 스윙’

조주청의 골프 잡설 ④

  • 입력2007-03-19 16: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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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말리는 골프광, 사고 차에서 나오며 ‘빈 스윙’
    김해년이라는 고향친구 부인이 들려준 얘기다. 그날 밤따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옆에서 잠을 자던 남편이 없어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짚이는 데가 있었다. 아까 저녁을 먹고 들어온 남편은 한숨을 푹푹 쉬며 줄담배만 피워댔다. 넥타이를 풀다가도 동작을 멈춘 채 골똘히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한숨만 쉬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면 신경질만 냈던 것이다.

    친구 부인은 덜컥 겁이 났다. 낮에 거래처와 다퉈 이 밤중에 멱살잡이라도 하러 간 건가? 별별 생각을 다 하며 불을 켰더니 남편이 깔고 자던 요까지 함께 없어졌다. 서재 문을 연 부인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이랬다. 남편은 의자를 벽에 붙인 뒤 요를 그 위에 걸쳐놓고, 바닥엔 고스톱 칠 때 쓰던 군용 담요를 깔고 피치샷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속옷만 입은 채. 남편은 부인을 힐끔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 오늘 그린에지에서 세 번이나 뒤땅 찍어서 얼마 깨졌는지 알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김희선 프로의 경험담이다. 김 프로의 팬인 골프광이 김 프로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김 프로는 그의 아파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별천지에 온 것이다.

    넓고 으리으리한 집 안은 어느 한구석 흐트러진 곳 없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가 거실에 시원하게 펼쳐진 벨기에산 카펫 한복판을 두 손가락으로 집어올리자 지름 108mm의 동그란 카펫조각이 올라왔다. 정말 놀라 자빠질 일은 그 좋은 마루판에 구멍을 뚫어 그린의 홀 깊이와 똑같이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내 친구 안영규는 구로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다. 닥터 안은 이웃에 사는 선배의사 차덕원 박사를 아주 존경한다. 닥터 안이 차 박사를 존경하는 이유는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과 인품 외에 또 하나가 있다.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골프가 싱글이라는 것과 골프에 대한 열정이 매우 뜨겁다는 것이다.



    어느 늦가을 그 지역 의사회 회원들과 프라자CC에서 라운드를 마치고 떠들썩하게 저녁을 한 뒤 각각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올 때였다. 차 박사의 차가 길을 벗어나 질척거리는 논으로 굴렀다. 뒤따라오던 일행의 차들이 일제히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너무나 놀라 “어~ 어~” 하고 있는데 논에서 두 번이나 굴러 뒤집어진 차에서 차 박사가 기어나왔다. 그러더니 비틀거리며 서서 두 팔을 오른쪽으로, 왼쪽 어깨를 턱밑까지 넣어서 왼쪽으로 두 번 휘둘러 빈 스윙을 해 보이더니 그대로 쓰러져 기절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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