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찌개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의 음식 기호를 읽어내듯, 한 지역 또는 한 나라 사람들의 음식 기호를 분석할 수 있다. 짜고 매운 음식을 먹는 경상도 사람, 향신료를 범벅해서 먹는 인도 사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여기에 음식을 먹는 방법이나 예절 따위를 엮고 그 주변부의 정치·경제·사회적 요소들을 가미해 분류, 체계화하면 ‘음식문화’가 된다. 즉, 음식에는 어느 지역 당대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이를 잘 선별해 먹으면 문화를 섭취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음식을 문화로 이해하거나 바라보지 않는다. 배를 불리거나 세 치 혀의 감각을 충족시키는 물건쯤으로 여긴다.
고기, 채소 넣고 푹 끓이는 신선로 같은 전통음식
우리는 문화를 뭔가 고급스럽고 전통적이며 격식 있는, 겉보기에 그럴싸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음식문화’ 하면 조선시대 궁중음식을 떠올리기 쉽다. 물론 이런 음식들에도 일정한 몫이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 몫이 그리 크지 않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궁중음식을 만들고 먹었던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될까?
몇 년 전 한국 전통음식 연구가가 궁중음식에 대한 책을 출판했다는 신문기사를 읽다가 충격을 받았다.
“아름다운 우리 음식은 점점 잊히는 반면 뼈다귀해장국, 부대찌개, 쇠머리국밥 등 국적 불명의 경박한 음식들이 우리 식탁을 대신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국적 불명의 경박한 음식? 뼈다귀해장국, 부대찌개, 쇠머리국밥은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던가. 그의 말대로라면 이런 음식들은 ‘우리 음식’이 아니라는 말인데….
먼저, 뼈다귀해장국과 쇠머리국밥부터 생각해보자. 설렁탕은 임금님도 드셨다고 하는데, 그와 비슷한 이런 음식이 조선시대에 없었을까? 문헌으로 전하는 옛 음식은 권력자들의 음식이다. 민중은 자신들이 먹는 음식을 글로 남기지 못했다. 글로 남겨진 것만 ‘전통’이자 ‘우리 것’이라는 생각은 큰 잘못이다. 김홍도의 풍속화 ‘주막도’에 나오는 장국밥도 민중이 먹던 음식이니, 그럼 국적 불명이고 경박한 음식인가.
내가 보기에 조선시대 궁중음식, 즉 그 전통음식 연구가가 책에 실었다는 효종갱, 열구자탕, 석탄병, 석류탕, 수정회 같은 음식은 오히려 ‘죽은 음식’이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시대 음식이 있고, 21세기 대한민국에는 또 다른 음식이 있는 것이다.
부대찌개는 국적이 불분명하다는 말이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먼저, ‘전통’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전통이란 ‘양식과 정신’, 즉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다. 예를 들어 신선로를 전통음식이라 함은 신선로라는 음식 자체가 전통이라는 말이 아니라, 신선로라는 음식을 조리하고 먹는 양식과 정신이 우리 전통음식의 그것(양식과 정신)에 합치한다는 의미다.
전통적 시각으로 신선로를 다시 보자. 신선로는 탕류다. 탕은 우리 전통 조리양식 가운데 하나다(고기와 채소를 넉넉한 물에 넣어 푹 끓여먹는 음식이 탕이다). 그래서 신선로는 전통음식이다.
이제 부대찌개를 보자. 재료는 서양에서 온 것이라 해도 고기와 채소를 넉넉한 물에 넣고 푹 끓이는 탕이라는 우리 전통 조리법에 합치하는 음식이다. 그래서 부대찌개는 우리의 전통음식이라 할 수 있다.
한때 많은 사람들을 답사여행으로 이끈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지닌 미덕은, 저만치 있던 ‘박물관 지식’을 ‘일상의 지식’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신라의 돌탑’을 ‘대한민국의 돌탑’으로 여기도록 하기 위해 그는 돌탑에 대한 자잘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돌탑을 쌓은 신라인의 마음이 1000년 후 현재 우리의 마음과 다름없음에 눈뜨게 했다. 그 눈뜸의 도구는 사랑이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건 전과 같지 않다.” 음식을 문화로 읽기 위해서도 이런 사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