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치과의사 출신 변호사, 남편은 현직 검사, 남동생은 현직 판사, 올케는 약사 출신 변호사. 이쯤 되면 아주 ‘무서운 가족’이 아닐까?
한집안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4명인 아주 특별하고도 신기한 집안이 있다. 더욱이 여자들은 모두 법대가 아닌 의대와 약대를 나와, 결혼한 다음에 사시에 합격했다. 이 전통을 잇겠다는 듯 여동생은 대학교를 졸업한 지 10년 만에 다시 법대를 다니고 있고, 교사를 하던 여동생 남편은 현재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중. 한마디로 보기 드문 법조 가족인 셈이다. 특히 남매간에 부부가 모두 사시에 합격한 경우는 법조계에도 전무후무하다.
화제의 집안은 대외법률사무소의 전현희 대표 변호사(38) 가족. 전씨는 지난 90년 서울대치대를 졸업하고 치과의사로 활동해 오다 지난 96년 사시에 합격(28기),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다. 로펌에 들어가 실전 경험을 쌓은 전씨는 치과의사 생활의 노하우를 살려 지난 6월 후배들과 함께 의료전문 종합법률사무소를 개소했다.
4명이 서울대 동기면서 사시 선후배 ‘이채’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의료사고 환자의 무료 변론도 소홀히 하지 않아 벌써부터 굵직굵직한 의료 관련 소송이 폭주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아쉽게도 남편이 ‘특수통’ 검사인 관계로 법정에서 부부간의 대결은 당분간 볼 수 없을 듯하다. 언젠가 벌어질 남편과의 대결에서 절대로 질 수 없다는 게 전씨의 다짐.
남편 김헌범씨(37)는 서울지검 남부지청 공판부 검사. 지난 94년 전씨보다 2년 일찍 사시에 합격해(26기) 일찌감치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네 명 중 사시 합격이 가장 빠르다. 대학 졸업 후 사시 공부를 계속했던 김씨는 당시 치과의사였던 부인 전씨의 내조를 톡톡히 받았다. 전씨는 당시까지만 해도 전도양양한 ‘고시생’ 남편을 내조하는 착한 의사 아내였던 것.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후 수원지법 여수지원과 인천지검 특수부 등 외지를 돌아다니던 김검사가 최근 서울로 부임했지만 이들 부부는 하루 한 시간 이상 대화하기가 힘들다. 김검사의 퇴근도 늦지만, 학구파인 부인 전변호사가 언제 퇴근할지 기약이 없기 때문. 하지만 전변호사에게 있어 김검사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지원해 주는 아낌없는 후원자다. 김검사의 지원이 없었으면 지금의 의료전문 법률사무소는 없었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전변호사의 남동생인 전상근 대전지법 서산지원 판사(36)는 매형인 김검사가 합격한 다음 해인 지난 95년(27기) 법조계에 발을 내디뎠다. 서울지법 형사부를 거쳐 서산지원에 지난 2월 발령이 나면서 주말부부가 됐다. 약사인 부인이 사시 준비를 하며, 전혀 집안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은’ 대범한 남편이기도 하다. 2차 시험에서 전체 3등을 하고도 한 과목 과락 때문에 시험에 떨어져 군대를 갔다 오는 등 시험운이 따르지 않았지만 어쨌든 누나보다는 1년 일찍 합격했다.
전판사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에 타고난 판사라는 느낌을 주는 스타일. 아내의 일이라면 자신이 한발 양보하고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는 김검사와 달리, 부인이 하는 일과 자신의 일을 명확히 선을 그으면서도 참견은 하지 않는 공과 사가 분명한 대쪽 성격의 소유자다.
이 집안 최고의 ‘미스터리 인물’은 전판사의 부인인 법무법인 이산(移山)의 전순덕 변호사(37). 지난 88년 서울대약대를 졸업하고 월급 약사생활을 하던 그녀는 지난 92년 빈민 의료봉사 활동을 벌이다 93년부터 변리사 시험을 준비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과보다는 문과 쪽에 더 관심이 많고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싶었던 전씨는 당시 지적재산권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자 변리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
그러다 95년 남편 전씨가 사시에 합격하자 마음을 고쳐먹는다. “남편도 하는데 내가 왜 못 하느냐”는 배짱도 있었지만 민법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고. 또한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업무가 전문화되는 만큼 특허소송이나 상표소송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변호사가 없다는 것에 착안했다. 변리사 공부 한 것이 시험 합격에 많은 도움이 됐지만 전판사의 ‘합격 특강’ 도움도 컸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집안일에 무관심해 준 것이 가장 큰 도움”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사시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3년 만인 지난 98년(30기) 합격의 영광을 얻었다.
두 쌍 모두 남편 외조 큰 힘 … 혹시 秘傳이라도?
사법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에 입문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전변호사의 전문성은 벌써 선배 변호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특허소송, 상표소송, 실용신안, 의장 등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소송에서 그녀는 패소한 적이 없다. 특히 약품·화학과 관련한 특허권 분쟁이나 지적권 소송에서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존재. 지적권 관련 분야에 전문가가 없기도 했지만 약사 출신인 그녀를 일반 변호사들이 당해내기는 벅찬 것이 사실이다. 그녀는 특허전문 변호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변리사 사무실 생활을 거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나와서도 바로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고, 변리사 사무실에 들어가 먼저 분위기를 익힌 것. 이젠 그녀는 약사 전순덕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지적권 전문, 또는 특허 전문 변호사가 되어 있다.
이들은 또 나이는 다르지만 서울대 84학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매형과 처남 사이인 김검사와 전판사는 법대 동기생. 전판사의 두 살 위 누나인 전현희 변호사가 서울대치대를 1년 재수해서 들어가고 전판사가 1년 일찍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생긴 일이다.
결국 서울대약대를 정상적으로 들어간 전순덕 변호사와 시누이 전현희 변호사는 전문직 자격증을 둘이나 가진 ‘파워여성’답게 둘 다 연하의 남자와 결혼한 셈이 됐다. 이 두 부부는 모두 동아리(당시는 서클) 활동을 하다 부군을 만난 것까지 같다. 그 후 긴 연애기간을 거쳐 김검사 부부는 지난 91년, 전판사 부부는 지난 95년 결혼했다. 전판사 부부는 만난 지 10년 만의 결혼이었다. 결혼할 때는 치과의사와 약사였지만 결혼 5년 안에 모두 법조인이 됐다. 전변호사는 김검사가 사시에 합격할 때까지 의사 생활을 하며 내조를 했고,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김검사는 의사인 아내가 변호사가 되겠다고 할 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검사와 전판사의 경우는 법대를 진학해서 공인의 길을 정상적으로 밟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도대체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의사, 약사, 그것도 판·검사의 부인들이 갑자기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변호사가 된 이유는 뭘까? 전현희 변호사와 전순덕 변호사의 일치하는 대답은 변호사가 의사나 약사보다 더 적성에 맞다는 것. “부모님의 반대만 없었다면 문과로 가서 바로 법대를 지원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는 의대·약대를 나오고 의사와 약사를 한 게 이들에게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걷는 데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지만 현재의 위치까지 오는 데 그 만큼 시간이 많이 걸린 ‘원초적 이유’를 밝히라면 역시 부모님의 탓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 당시에는 여자가 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면 무조건 이과에 가야 하는 분위기였으니까 굳이 어머니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의사 경력이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요.”(전현희 변호사)
하지만 이들이 안정되고 편한 의자를 박차고, 이해 관계 대립의 한복판에 서기로 결정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들은 “불이익과 부정에 맞서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해 제2의 자아실현을 하고 싶다”(전현희 변호사) “오랜 고생 끝에 특허를 따도 분쟁에 휘말려, 특허권을 빼앗기거나 억울하게 자신의 지적재산을 도용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이 워낙 강했다”(전순덕 변호사)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런 ‘아줌마’들의 ‘환골탈태’는 시댁과 친정의 이해와 도움이 없었다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유교적 남편의 권리를 일찌감치 포기한 남편들의 부모님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들의 시댁은 욕심 많은 며느리를 위해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특히 김검사 부모님은 전변호사가 고시 준비 시절 아이를 대구로 데려가 키워주기까지 했다. 전판사 부부는 아예 출산을 부인의 합격 이후로 미뤘다. 그래서 마흔이 가까운 전판사 부부의 아이는 이제 겨우 세 살이다.
“며느리, 딸을 가리지 않고 빨래와 청소는 모두 내 차지였지만 어쩌겠어. 공부하겠다는데….” 전판사의 어머니 김명순씨(66)는 아들과 사위가 사시에 합격했을 때보다 딸과 며느리가 사시에 합격했을 때가 더 기뻤다고 말할 만큼 진보적이다. 그녀 스스로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스타일이다. 지난 97년 환갑이 지난 나이에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해 당당히 중개사 자격증을 따냈다. 복덕방을 차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자식들이 법 공부를 한다기에 자신도 재미로 시작한 것이 합격으로 이어졌다. 자식들이 어머니 머리를 닮았냐는 질문에 “내 머리를 닮았다면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지”라고 자신감을 보인다.
여동생 남편도 올해 2차시험 치르고 발표 기다려
결국 ‘패밀리의 전통’은 전현희 변호사 여동생인 전현주씨(33)에게도 이어져, 한국외대 졸업 10년 만에 한국방송통신대학 법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 “변호사는 힘들고 법무사나 법조 계통의 일을 모색하고 있다”는 게 그녀의 포부. 만약 전씨의 남편 김주영씨마저 이번에 최종 합격하면 이 집안에는 법조인이 5명이나 탄생하게 된다.
일반인들이 역시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의사와 약사를 하던 ‘아줌마’가 어떻게 단시간에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느냐는 사실일 듯하다. 혹 이들 집안에만 전해오는 ‘비기’(秘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 이에 대해 전상근 판사는 “본래 사시 합격자가 보던 책과 노트는 모두 비기가 된다”며 “하지만 김검사와 내가 공부하던 책과 노트는 워낙 시간이 오래돼 현재까지 비기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알 듯 모를 듯한 대답으로 질문을 회피한다. 김헌범 검사는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긴 했지만 매년 바뀌는 시험문제를 어떻게 알 수 있냐”며 “전문직 생활을 한 게 법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판사나 검사, 변호사 모두 법정에서 만나면 경쟁자일 수 있고 한 번의 실수가 엄청난 피해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항상 따뜻한 가족의 관계에 머무를 수만은 없습니다. 잘못에 대해서는 서로에게 따끔한 충고와 비판을 가할 수 있는 진정한 반려자가 되어야겠죠.” 조용하지만 무서운 전씨네 가족은 오늘도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아 하루를 힘차게 시작한다.
한집안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4명인 아주 특별하고도 신기한 집안이 있다. 더욱이 여자들은 모두 법대가 아닌 의대와 약대를 나와, 결혼한 다음에 사시에 합격했다. 이 전통을 잇겠다는 듯 여동생은 대학교를 졸업한 지 10년 만에 다시 법대를 다니고 있고, 교사를 하던 여동생 남편은 현재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중. 한마디로 보기 드문 법조 가족인 셈이다. 특히 남매간에 부부가 모두 사시에 합격한 경우는 법조계에도 전무후무하다.
화제의 집안은 대외법률사무소의 전현희 대표 변호사(38) 가족. 전씨는 지난 90년 서울대치대를 졸업하고 치과의사로 활동해 오다 지난 96년 사시에 합격(28기),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다. 로펌에 들어가 실전 경험을 쌓은 전씨는 치과의사 생활의 노하우를 살려 지난 6월 후배들과 함께 의료전문 종합법률사무소를 개소했다.
4명이 서울대 동기면서 사시 선후배 ‘이채’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의료사고 환자의 무료 변론도 소홀히 하지 않아 벌써부터 굵직굵직한 의료 관련 소송이 폭주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아쉽게도 남편이 ‘특수통’ 검사인 관계로 법정에서 부부간의 대결은 당분간 볼 수 없을 듯하다. 언젠가 벌어질 남편과의 대결에서 절대로 질 수 없다는 게 전씨의 다짐.
남편 김헌범씨(37)는 서울지검 남부지청 공판부 검사. 지난 94년 전씨보다 2년 일찍 사시에 합격해(26기) 일찌감치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네 명 중 사시 합격이 가장 빠르다. 대학 졸업 후 사시 공부를 계속했던 김씨는 당시 치과의사였던 부인 전씨의 내조를 톡톡히 받았다. 전씨는 당시까지만 해도 전도양양한 ‘고시생’ 남편을 내조하는 착한 의사 아내였던 것.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후 수원지법 여수지원과 인천지검 특수부 등 외지를 돌아다니던 김검사가 최근 서울로 부임했지만 이들 부부는 하루 한 시간 이상 대화하기가 힘들다. 김검사의 퇴근도 늦지만, 학구파인 부인 전변호사가 언제 퇴근할지 기약이 없기 때문. 하지만 전변호사에게 있어 김검사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지원해 주는 아낌없는 후원자다. 김검사의 지원이 없었으면 지금의 의료전문 법률사무소는 없었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전변호사의 남동생인 전상근 대전지법 서산지원 판사(36)는 매형인 김검사가 합격한 다음 해인 지난 95년(27기) 법조계에 발을 내디뎠다. 서울지법 형사부를 거쳐 서산지원에 지난 2월 발령이 나면서 주말부부가 됐다. 약사인 부인이 사시 준비를 하며, 전혀 집안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은’ 대범한 남편이기도 하다. 2차 시험에서 전체 3등을 하고도 한 과목 과락 때문에 시험에 떨어져 군대를 갔다 오는 등 시험운이 따르지 않았지만 어쨌든 누나보다는 1년 일찍 합격했다.
전판사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에 타고난 판사라는 느낌을 주는 스타일. 아내의 일이라면 자신이 한발 양보하고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는 김검사와 달리, 부인이 하는 일과 자신의 일을 명확히 선을 그으면서도 참견은 하지 않는 공과 사가 분명한 대쪽 성격의 소유자다.
이 집안 최고의 ‘미스터리 인물’은 전판사의 부인인 법무법인 이산(移山)의 전순덕 변호사(37). 지난 88년 서울대약대를 졸업하고 월급 약사생활을 하던 그녀는 지난 92년 빈민 의료봉사 활동을 벌이다 93년부터 변리사 시험을 준비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과보다는 문과 쪽에 더 관심이 많고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싶었던 전씨는 당시 지적재산권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자 변리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
그러다 95년 남편 전씨가 사시에 합격하자 마음을 고쳐먹는다. “남편도 하는데 내가 왜 못 하느냐”는 배짱도 있었지만 민법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고. 또한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업무가 전문화되는 만큼 특허소송이나 상표소송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변호사가 없다는 것에 착안했다. 변리사 공부 한 것이 시험 합격에 많은 도움이 됐지만 전판사의 ‘합격 특강’ 도움도 컸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집안일에 무관심해 준 것이 가장 큰 도움”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사시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3년 만인 지난 98년(30기) 합격의 영광을 얻었다.
두 쌍 모두 남편 외조 큰 힘 … 혹시 秘傳이라도?
사법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에 입문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전변호사의 전문성은 벌써 선배 변호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특허소송, 상표소송, 실용신안, 의장 등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소송에서 그녀는 패소한 적이 없다. 특히 약품·화학과 관련한 특허권 분쟁이나 지적권 소송에서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존재. 지적권 관련 분야에 전문가가 없기도 했지만 약사 출신인 그녀를 일반 변호사들이 당해내기는 벅찬 것이 사실이다. 그녀는 특허전문 변호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변리사 사무실 생활을 거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나와서도 바로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고, 변리사 사무실에 들어가 먼저 분위기를 익힌 것. 이젠 그녀는 약사 전순덕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지적권 전문, 또는 특허 전문 변호사가 되어 있다.
이들은 또 나이는 다르지만 서울대 84학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매형과 처남 사이인 김검사와 전판사는 법대 동기생. 전판사의 두 살 위 누나인 전현희 변호사가 서울대치대를 1년 재수해서 들어가고 전판사가 1년 일찍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생긴 일이다.
결국 서울대약대를 정상적으로 들어간 전순덕 변호사와 시누이 전현희 변호사는 전문직 자격증을 둘이나 가진 ‘파워여성’답게 둘 다 연하의 남자와 결혼한 셈이 됐다. 이 두 부부는 모두 동아리(당시는 서클) 활동을 하다 부군을 만난 것까지 같다. 그 후 긴 연애기간을 거쳐 김검사 부부는 지난 91년, 전판사 부부는 지난 95년 결혼했다. 전판사 부부는 만난 지 10년 만의 결혼이었다. 결혼할 때는 치과의사와 약사였지만 결혼 5년 안에 모두 법조인이 됐다. 전변호사는 김검사가 사시에 합격할 때까지 의사 생활을 하며 내조를 했고,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김검사는 의사인 아내가 변호사가 되겠다고 할 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검사와 전판사의 경우는 법대를 진학해서 공인의 길을 정상적으로 밟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도대체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의사, 약사, 그것도 판·검사의 부인들이 갑자기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변호사가 된 이유는 뭘까? 전현희 변호사와 전순덕 변호사의 일치하는 대답은 변호사가 의사나 약사보다 더 적성에 맞다는 것. “부모님의 반대만 없었다면 문과로 가서 바로 법대를 지원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는 의대·약대를 나오고 의사와 약사를 한 게 이들에게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걷는 데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지만 현재의 위치까지 오는 데 그 만큼 시간이 많이 걸린 ‘원초적 이유’를 밝히라면 역시 부모님의 탓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 당시에는 여자가 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면 무조건 이과에 가야 하는 분위기였으니까 굳이 어머니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의사 경력이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요.”(전현희 변호사)
하지만 이들이 안정되고 편한 의자를 박차고, 이해 관계 대립의 한복판에 서기로 결정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들은 “불이익과 부정에 맞서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해 제2의 자아실현을 하고 싶다”(전현희 변호사) “오랜 고생 끝에 특허를 따도 분쟁에 휘말려, 특허권을 빼앗기거나 억울하게 자신의 지적재산을 도용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이 워낙 강했다”(전순덕 변호사)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런 ‘아줌마’들의 ‘환골탈태’는 시댁과 친정의 이해와 도움이 없었다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유교적 남편의 권리를 일찌감치 포기한 남편들의 부모님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들의 시댁은 욕심 많은 며느리를 위해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특히 김검사 부모님은 전변호사가 고시 준비 시절 아이를 대구로 데려가 키워주기까지 했다. 전판사 부부는 아예 출산을 부인의 합격 이후로 미뤘다. 그래서 마흔이 가까운 전판사 부부의 아이는 이제 겨우 세 살이다.
“며느리, 딸을 가리지 않고 빨래와 청소는 모두 내 차지였지만 어쩌겠어. 공부하겠다는데….” 전판사의 어머니 김명순씨(66)는 아들과 사위가 사시에 합격했을 때보다 딸과 며느리가 사시에 합격했을 때가 더 기뻤다고 말할 만큼 진보적이다. 그녀 스스로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스타일이다. 지난 97년 환갑이 지난 나이에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해 당당히 중개사 자격증을 따냈다. 복덕방을 차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자식들이 법 공부를 한다기에 자신도 재미로 시작한 것이 합격으로 이어졌다. 자식들이 어머니 머리를 닮았냐는 질문에 “내 머리를 닮았다면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지”라고 자신감을 보인다.
여동생 남편도 올해 2차시험 치르고 발표 기다려
결국 ‘패밀리의 전통’은 전현희 변호사 여동생인 전현주씨(33)에게도 이어져, 한국외대 졸업 10년 만에 한국방송통신대학 법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 “변호사는 힘들고 법무사나 법조 계통의 일을 모색하고 있다”는 게 그녀의 포부. 만약 전씨의 남편 김주영씨마저 이번에 최종 합격하면 이 집안에는 법조인이 5명이나 탄생하게 된다.
일반인들이 역시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의사와 약사를 하던 ‘아줌마’가 어떻게 단시간에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느냐는 사실일 듯하다. 혹 이들 집안에만 전해오는 ‘비기’(秘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 이에 대해 전상근 판사는 “본래 사시 합격자가 보던 책과 노트는 모두 비기가 된다”며 “하지만 김검사와 내가 공부하던 책과 노트는 워낙 시간이 오래돼 현재까지 비기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알 듯 모를 듯한 대답으로 질문을 회피한다. 김헌범 검사는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긴 했지만 매년 바뀌는 시험문제를 어떻게 알 수 있냐”며 “전문직 생활을 한 게 법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판사나 검사, 변호사 모두 법정에서 만나면 경쟁자일 수 있고 한 번의 실수가 엄청난 피해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항상 따뜻한 가족의 관계에 머무를 수만은 없습니다. 잘못에 대해서는 서로에게 따끔한 충고와 비판을 가할 수 있는 진정한 반려자가 되어야겠죠.” 조용하지만 무서운 전씨네 가족은 오늘도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아 하루를 힘차게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