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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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감정을 이야기로 저장

자극적 사건 남자보다 10~15% 더 잘 기억… 월경주기 따라 인지능력도 변해

  • < 이한음/ 과학칼럼니스트 > ehanum@freechal.com

    입력2004-10-04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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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는 감정을 이야기로 저장
    남편은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 부부간의 감정대립을 부인은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여성의 뇌가 감정 변화를 일으키는 자극적인 사건이나 장면을 더 잘 기억하도록 조직돼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뉴욕주립대의 투어한 캔리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남녀 각 12명에게 96장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각 사진이 얼마나 자극적인지 점수를 매기도록 한 뒤 3주 후에 다시 그 사진들을 보여주고, 자신이 어떤 점수를 매겼는지 기억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 자극적인 것을 느끼고 기억하는 데 있어 여성이 남성보다 10~15% 더 정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의 뇌를 자기공명장치(MRI)로 촬영해 본 결과 자극적인 장면에서 여성의 신경이 남성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남녀의 뇌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다루고 있음을 밝혀냈다.

    스트레스에 순응 우울증 잘 걸려

    남성은 우뇌를 더 사용하는 반면 여성은 좌뇌를 더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투어한 캔리 교수는 “감정과 관련된 사건이나 대상을 기억하는 심리적 과정이 남녀가 다른 것 같다”며 여성이 주로 언어사용과 관련된 좌뇌를 사용해 기억하는 것은 “여성들이 본 장면을 이야기로 만들어 저장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처럼 여성들이 감정적인 내용을 오래 기억하는 것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우울증이 더 많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자는 감정을 이야기로 저장
    심리학자인 다이언 핼펀은 남녀가 자극적인 감정에 달리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가 뇌 구조와 관련이 있으며 이런 차이는 지능에도 적용된다고 말한다. 지능검사 결과를 전체적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 특히 핼펀은 남성이 여성보다 시각과 공간을 다룬 문제와 수학능력을 다룬 문제에 뛰어난 반면, 여성은 기억과 언어능력을 다룬 문제에 뛰어나다는 것에 주목한다. 또 지능검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과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 즉 양극단 그룹에 속하는 남성의 비율이 더 높다고 말한다.



    이러한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 지금까지 축적된 증거들은 성호르몬이 일찍부터 뇌에 영향을 미쳐 남녀의 뇌신경 배열을 다르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체내의 성호르몬 수치 변화가 인지능력 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최근 연구 결과는 월경 주기에 따라 여성의 인지능력에 변화가 일어나며, 에스트로겐 같은 여성호르몬 수치가 높아질 때 언어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남성은 테스토스테론 같은 남성호르몬 농도가 높아질 때, 시각과 공간 문제 해결 능력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남녀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진화심리학이 내놓은 해답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원시시대에 남성은 멀리 나가 사냥을 하고 여성은 주변에서 식물을 채집하는 등 역할 분담을 했기 때문에, 남성은 시각과 공간 능력이 발달했고 여성은 기억과 언어 능력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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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의 스트레스 대응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근의 논문도 이 가설을 인용하고 있다. 이 논문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남성은 대항을 하는 반면 여성은 회피하고 순응하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또 남성은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반면 여성은 거의 예외 없이 친구에게 이야기한다. 이런 행동 차이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남성은 무기를 들고 적이나 동물에 대항해서 싸워야 했던 반면에, 여성은 주거지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서로 돕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의 뇌는 5만년 전에 살던 조상들의 뇌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남녀의 역할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어 왔다. 최근 들어서는 그 변화 또한 가속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성 역할 변화가 앞으로 남녀의 뇌 구조와 행동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도 흥미로운 주제가 된다.

    性역할 급변 행동변화에 주목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헬렌 피셔는 현재의 추세로 보면 경제 부문에서 21세기에 여성의 타고난 재능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피셔는 여성이 정신적으로 유연하고 직관적이며, 맥락을 고려하고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남성의 뇌에 비해 여성의 뇌가 좌우가 덜 분화되어 있다는 연구결과와 어느 정도 부합되는 듯하다.

    하지만 저명한 심리학자 폴 블룸이 말한 것처럼, 어떤 면에서 이런 연구 결과들은 우리가 지녀왔던 상식을 재확인해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즉 새롭게 발표되는 연구 결과들 중에서 우리의 직관이나 상식에 어긋나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러한 생물학적 남녀 차이가 남녀 차별의 근거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급속도로 진행되는 남녀의 역할 변화를 반영하는 연구 결과도 나올 만하지 않을까? 가령 여성의 수학적 재능이 훨씬 뛰어나다는 연구 보고서,변화하는 성 역할에 맞는 생물학적 근거가 급속히 자리를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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