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김기창(1914~2001) 화백의 생전 일화 한 토막. 운보는 법주사에서 묵던 날 새벽 종소리에 잠을 깨 절간을 산책하다 영감을 얻어 ‘새벽 종소리’라는 작품을 그렸다. 이 말을 듣고 한 지인이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이 어떻게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운보는 이렇게 대답했다. “소리를 들어야 깨는 것은 아니지요.”
침묵의 세계 속에 살았지만 비할 바 없는 정열과 힘으로 생전 1만5000여점의 작품을 제작했던 운보.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1년이 흘렀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바보천재 운보 그림전’은 운보의 1주기 추모 전시회다. ‘입체파적 풍속화’ ‘예수의 생애’ ‘바보산수 바보화조’ ‘추상의 세계’ 등 네 갈래로 나뉜 운보의 그림 100여점이 전시된다.
“운보는 무려 70년간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손이 떨리고 정신이 혼미했던 최후 몇 년간을 제외하면 평생 동안 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85세까지 그렸으니까요.”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 최은주 분관장의 말이다. 최분관장은 ‘운보는 예술가와 장인의 기질을 동시에 타고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즉 뛰어난 손재주를 지닌 천부적 장인이자 70년의 긴 세월 동안 쉴새없이 창조정신을 발휘한 독창적 예술가라는 뜻이다.
100여 화폭 천재화가 ‘숨결’ 가득
보통의 화가들은 ‘척 보면 누구 그림인지 안다’는 식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김창렬의 물방울이나 박수근의 여인 그림은 문외한도 알아볼 만큼 작가의 개성이 뚜렷하다. 그러나 운보에게서 이처럼 일관된 경향을 찾기란 쉽지 않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입체파적 풍속화와 세필로 꼼꼼하게 그린 성화 연작 ‘예수의 생애’는 한 작가의 작품으로 믿기 어려울 만큼 판이하다. 바보산수와 바보화조는 또 어떤가. 아이의 그림처럼 서툰 터치와 붓질 속에서 천진난만한 세계를 만끽하던 운보는 다시금 문자추상이라는 미답의 경지로 뛰어들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화가의 실험정신은 끝이 없었다.
이번 전시의 첫번째 주제인 ‘입체파적 풍속화’에서는 아내이자 그림의 동반자였던 우향 박래현의 숨결이 확연히 묻어났다. 그러나 비슷한 경향을 추구하면서도 우향과 운보의 그림에서는 차이가 느껴진다.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수학한 우향의 화폭에는 치밀함과 긴장감이 가득하다.
반면, 이당 김은호를 사사한 것이 미술교육의 전부였던 운보의 그림은 그와 딴판이다. 그의 화폭에서는 단순함과 삶에 대한 낙관적 시각 그리고 해학이 담겨 있다. 화면 가득히 굴비 굽는 석쇠를 그린 ‘굴비’에서는 연탄불의 매캐한 냄새와 함께 짭쪼름한 생선 비린내까지 맡아질 듯하다.
2부에 전시된 성화 ‘예수의 생애’는 운보가 한국전쟁 때 군산에 피란가 있던 중 한 독일인 신부의 의뢰를 받아 그린 연작이다. 신앙에 의지해 피란생활의 고단함을 이겨내던 운보는 화가적 상상력을 발휘, 예수를 조선의 사대부로 변모시켰다. 아기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은 소가 매어진 외양간이 되었고 예수를 유혹하는 사탄은 어리숙한 표정의 도깨비로 변했다. 냉랭해 보이는 서양의 성화와 달리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운보의 생전에 열린 마지막 전시회에서 이 연작에 대해 특별한 감동을 표시하기도 했다.
제3 전시장의 ‘바보산수 바보화조’는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교접하는 새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오두막 안에서 오수를 즐기는 농부의 모습에 운보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충북 청원에 은거하던 70, 80년대에 운보는 집중적으로 바보산수를 그렸다. 재직하던 수도여사대(현 세종대) 교수직에서도 물러나 거칠 것 없는 자유인의 신분이었다. 운보가 가장 그리고 싶어 그린 그림들이라는 바보산수 속에서는 언뜻 현대회화의 세련된 미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운보의 정열은 여기서 사그라지지 않았다. 남들 같으면 이미 붓을 놓고 은퇴했을 70대 나이에 운보는 다시금 실험을 시작한다. 문자추상과 붓 대신 봉걸레에 먹을 묻혀 그림을 그리는 ‘봉걸레 추상’이다. 운보의 4기이자 마지막 경향이 된 추상작품들에는 꺼지지 않는, 아니 더욱 형형해진 예술혼이 맹렬하게 타오른다.
4개의 방을 가득 메운 그림들은 저마다의 미감을 뽐내고 있었다. 운보 특유의 실험정신과 건강함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림들이라 인상적인 작품을 손꼽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악사와 무희들을 그린 그림이었다. 운보는 평소 음악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목을 쭉 뺀 채 피리를 불고 있는 악사들과 그에 맞추어 너울너울 어여쁜 춤사위를 추고 있는 여인들. 침묵 속에 평생을 산 화가가 그린 소리가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더 아름답고 온전하게 화폭에 실려 있었다(4월 7일까지, 문의 02-2020-1620).
침묵의 세계 속에 살았지만 비할 바 없는 정열과 힘으로 생전 1만5000여점의 작품을 제작했던 운보.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1년이 흘렀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바보천재 운보 그림전’은 운보의 1주기 추모 전시회다. ‘입체파적 풍속화’ ‘예수의 생애’ ‘바보산수 바보화조’ ‘추상의 세계’ 등 네 갈래로 나뉜 운보의 그림 100여점이 전시된다.
“운보는 무려 70년간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손이 떨리고 정신이 혼미했던 최후 몇 년간을 제외하면 평생 동안 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85세까지 그렸으니까요.”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 최은주 분관장의 말이다. 최분관장은 ‘운보는 예술가와 장인의 기질을 동시에 타고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즉 뛰어난 손재주를 지닌 천부적 장인이자 70년의 긴 세월 동안 쉴새없이 창조정신을 발휘한 독창적 예술가라는 뜻이다.
100여 화폭 천재화가 ‘숨결’ 가득
보통의 화가들은 ‘척 보면 누구 그림인지 안다’는 식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김창렬의 물방울이나 박수근의 여인 그림은 문외한도 알아볼 만큼 작가의 개성이 뚜렷하다. 그러나 운보에게서 이처럼 일관된 경향을 찾기란 쉽지 않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입체파적 풍속화와 세필로 꼼꼼하게 그린 성화 연작 ‘예수의 생애’는 한 작가의 작품으로 믿기 어려울 만큼 판이하다. 바보산수와 바보화조는 또 어떤가. 아이의 그림처럼 서툰 터치와 붓질 속에서 천진난만한 세계를 만끽하던 운보는 다시금 문자추상이라는 미답의 경지로 뛰어들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화가의 실험정신은 끝이 없었다.
이번 전시의 첫번째 주제인 ‘입체파적 풍속화’에서는 아내이자 그림의 동반자였던 우향 박래현의 숨결이 확연히 묻어났다. 그러나 비슷한 경향을 추구하면서도 우향과 운보의 그림에서는 차이가 느껴진다.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수학한 우향의 화폭에는 치밀함과 긴장감이 가득하다.
반면, 이당 김은호를 사사한 것이 미술교육의 전부였던 운보의 그림은 그와 딴판이다. 그의 화폭에서는 단순함과 삶에 대한 낙관적 시각 그리고 해학이 담겨 있다. 화면 가득히 굴비 굽는 석쇠를 그린 ‘굴비’에서는 연탄불의 매캐한 냄새와 함께 짭쪼름한 생선 비린내까지 맡아질 듯하다.
2부에 전시된 성화 ‘예수의 생애’는 운보가 한국전쟁 때 군산에 피란가 있던 중 한 독일인 신부의 의뢰를 받아 그린 연작이다. 신앙에 의지해 피란생활의 고단함을 이겨내던 운보는 화가적 상상력을 발휘, 예수를 조선의 사대부로 변모시켰다. 아기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은 소가 매어진 외양간이 되었고 예수를 유혹하는 사탄은 어리숙한 표정의 도깨비로 변했다. 냉랭해 보이는 서양의 성화와 달리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운보의 생전에 열린 마지막 전시회에서 이 연작에 대해 특별한 감동을 표시하기도 했다.
제3 전시장의 ‘바보산수 바보화조’는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교접하는 새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오두막 안에서 오수를 즐기는 농부의 모습에 운보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충북 청원에 은거하던 70, 80년대에 운보는 집중적으로 바보산수를 그렸다. 재직하던 수도여사대(현 세종대) 교수직에서도 물러나 거칠 것 없는 자유인의 신분이었다. 운보가 가장 그리고 싶어 그린 그림들이라는 바보산수 속에서는 언뜻 현대회화의 세련된 미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운보의 정열은 여기서 사그라지지 않았다. 남들 같으면 이미 붓을 놓고 은퇴했을 70대 나이에 운보는 다시금 실험을 시작한다. 문자추상과 붓 대신 봉걸레에 먹을 묻혀 그림을 그리는 ‘봉걸레 추상’이다. 운보의 4기이자 마지막 경향이 된 추상작품들에는 꺼지지 않는, 아니 더욱 형형해진 예술혼이 맹렬하게 타오른다.
4개의 방을 가득 메운 그림들은 저마다의 미감을 뽐내고 있었다. 운보 특유의 실험정신과 건강함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림들이라 인상적인 작품을 손꼽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악사와 무희들을 그린 그림이었다. 운보는 평소 음악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목을 쭉 뺀 채 피리를 불고 있는 악사들과 그에 맞추어 너울너울 어여쁜 춤사위를 추고 있는 여인들. 침묵 속에 평생을 산 화가가 그린 소리가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더 아름답고 온전하게 화폭에 실려 있었다(4월 7일까지, 문의 02-2020-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