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영화 흙먼지 속으로…](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11/16/200411160500105_1.jpg)
육지의 교통로가 따로 발달하지 않은 탓에 수상로를 이용하는 이들이 많고, 무엇보다 물이 귀한 말리의 현실을 볼 때, 강에서 풍요롭게 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는 몹티는 신의 축복을 받은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부강한 왕국으로 손꼽히던 말리의 옛 영화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는 사실이 몹티의 매력이라 할 수 있었다.
한때 말리는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부강한 왕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번영을 구가했다. 기원 전후부터 열린 사하라사막 교역로에 있으면서 금·상아·노예 등의 집산지로 교역로를 장악한 왕국들이 그들 나름의 문화를 꽃피웠다. 그 가운데 주된 왕국으로는 8~13세기의 가나 왕국, 13~16세기의 말리 왕국, 14~16세기의 송가이 왕국 등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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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 사이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정책이 유행처럼 번져가면서 아프리카는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경이 정해졌다. 마치 파이를 잘라 배를 채우듯 아프리카 대륙을 나누어 가지는 서구의 막강한 힘 앞에서 아프리카는 무기력하게 굴복해 한 나라가 두 나라로 나뉘고, 자신들의 언어 대신 유럽의 말과 글을 써야 했으며, 경제적 수탈 등 갖은 역경을 겪어야 했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는 전통적 문화와 국가의 주체성을 가질 여력이 없어 오늘날까지도 그 후유증을 수습하지 못했다. 프랑스의 단독무대가 되다시피 한 서북아프리카 내륙의 나라 말리 역시 그들 고유어 대신 프랑스어를 국어처럼 사용하며, 경제적 의존도 또한 높다. 이웃 나라인 세네갈이나 코트디부아르처럼 가난을 피할 여력이 없었기에 말리는 세계 최빈국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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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티, 아니 말리의 젖줄인 이 강은 사막 한가운데서 흘러 들어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려지지 않아 ‘수수께끼의 강’으로 불렸다. 스코틀랜드의 탐험가 망고파크가 1769년경 잠비아강을 타고 들어와 이 강을 발견한 뒤 많은 탐험가들이 나이저강 주변을 탐험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때 이곳은 늪과 숲이 있고 일대에 사자가 많아 숲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습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그러한 풍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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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흙의 마을’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몹티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모스크 역시 흙으로 지어졌다. 모스크는 이곳 사람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 교도의 성소인데, 중동 지역의 이슬람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붕과 첨탑은 찾아보기 힘들다. 진흙과 나무로 만들어진 모스크는 독특한 조형미와 기하학적 외형을 지녀 마치 지상의 건축물이 아니라 우주영화에 나오는 4차원 세계의 건축물 같은 느낌을 준다. 어떻게 진흙으로 저렇듯 독특한 모습의 사원을 만들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어 한달음에 달려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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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열기로 감싸인 몹티에 석양빛이 물들기 시작하면 삶의 열기도 잠시 식어간다. 이 밤,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아가는 소몰이 떼의 아련한 풍경 속으로 사라지는 몹티에는 지난날의 영화도 함께 먼지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