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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폭포가 떨어지는 강의 폭은 50∼75m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가까이 다가서지 않고서는 떨어지는 폭포수가 보이지 않고 거대한 굉음과 함께 치솟는 물보라만 보인다. 이 굉음 때문에 현지에서는 이 폭포를 ‘천둥소리가 나는 연기’라고 하였는데, 1855년 리빙스턴이 이를 발견하면서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 빅토리아 폭포라 부르게 되었다.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짐바브웨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리빙스턴은 방적공장 직공으로 일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마침내 글래스고 대학에서 그리스어와 신학, 의학을 배우기에 이르렀다. 1840년 런던 전도협회가 그를 남아프리카로 파견하기로 한 결정은 그에게 또 다른 삶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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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는 도로 사정이나 일반 사람의 생활상과 달리 호텔이며 관광시설은 여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았다. 그레이트 짐바브웨에 있는 호텔도 그러했고 특히 빅토리아 폭포 관광지는 유럽의 휴양지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도로를 따라 처음 빅토리아 폭포 관광지역에 들어갔을 때는 호텔이며 관광 시설이 별반 있겠는가 싶고, 있어도 얼마나 비싸겠는가 하며 화려해 보이는 한 호텔로 들어갔다.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호텔은 라운지에서부터 선진국의 일류급 호텔과 맞먹었고, 숙박비 역시 200~300달러에 달했다. 하는 수없이 길을 되돌아나와 작은 호텔에 짐을 풀었다. 작은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시설이 깨끗하고 나무로 짠 침대며 통일된 장식의 방안이 제법 고급스러웠다. 다음날 아침 호텔에 딸린 제반 시설을 둘러보니 레스토랑이며 수영장이 잘 갖춰져 있고, 관광을 위한 각종 이벤트를 연결하는 여행사들도 들어와 있었다.
빅토리아 폭포와 가장 가까이 있는 한 호텔에 들렀을 때는 더욱 놀랐다. 폭포의 이름을 딴 빅토리아 호텔은 외양부터가 남달랐다. 하얀색 회벽에 고풍스러운 장식들과 종업원들의 깍듯함까지, 이곳이 짐바브웨인가 싶을 정도였다. 이미 1800년대부터 유럽의 부호들이 이 호텔에 와서 휴식을 취했다고 하는데, 그 전통과 직원들의 예의 범절이 지금까지 내려온다고 했다. 호텔에 마련된 몇 개의 방에는 호텔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자료들을 모아두기도 했는데, 가구며 장식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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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백인이 모는 ‘부시’라는 이름의 스포츠용 2인승 소형 비행기를 타고 그렇게 보고픈 빅토리아 폭포를 하늘에서 보기로 했다. 땅에서 보던 폭포의 모습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굽이굽이 흐르는 잠베지강이 칼로 단면을 자른 듯 넓게 퍼진 절벽을 따라 떨어지는 모습이 때마침 시작한 노을과 맞물리며 황금빛으로 빛났다. 이미 나이애가라 폭포를 본 적이 있는 나였지만 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이곳에 있었다. 100달러 하는 비행기 삯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이 아름다움을 가지기 위해 영국은 1980년대까지도 짐바브웨를 놓지 않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영국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모습이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짐바브웨도 이 점에서는 영국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영국이 아니었다면 이 폭포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처럼 휴양지로 각광 받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의 교육이 없었다면 빅토리아 호텔과 같은 멋을 유지하지 못했을 지 모르는 일이다. 이곳은 짐바브웨라기보다 ‘영국의 일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것은 빅토리아 호텔 탓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만 아프리카이고 시설은 선진국인 호텔의 경험과 대비되는, 작은 촌락에서 만난 짐바브웨 가족과의 만남 역시 소중한 경험이었다. 보통 아프리카에서는 사진 촬영을 하면 돈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내가 만난 짐바브웨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법 큰 아이, 어린 동생 3명을 거느린 한 엄마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집을 구경시켜 주었다. 가난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비굴하거나 슬픔에 찌들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해 보였고, 때묻지 않은 심성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짐바브웨는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앞으로 사정이 얼마나 나아질지 장담할 수도 없는 나라다. 그러나 이곳 사람은 어떤 다른 나라 사람보다 부자인지 모른다. 단지 현대 문명이 미치지 않았을 뿐, 아프리카에 속한 나라치고는 물이 풍부하고 자연 환경이 좋으며 사람이 선하여 ‘살아가는 맛’이 있는 까닭이다. 빅토리아 호텔 종업원에게 한 달 월급을 물었더니 호텔 하루 숙박비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그들의 수입을 떠나 나는 그들이 이미 선진 사람이라 느꼈다. 그만큼 예의를 알고 삶의 진정한 기쁨을 알고 있으며 선한 마음을 가진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