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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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안주 속 지방이 간에 그대로 쌓이는 이유

[이광렬의 화학 생활] 알코올 분해하느라 지방 태우는 NAD+ 조효소 줄어든 탓

  • 이광렬 고려대 화학과 교수

    입력2025-11-3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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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고도 어려운 단어 ‘화학’. 그러나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에는 화학이 크고 작은 마법을 부리고 있다. 이광렬 교수가 간단한 화학 상식으로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법, 안전·산업에 얽힌 화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음주로 간에서 에너지 대사 조효소인 NAD+가 줄어들면 술과 함께 먹은 안주 속 지방이 분해되지 못하고 고스란히 저장된다. GETTYIMAGES

    음주로 간에서 에너지 대사 조효소인 NAD+가 줄어들면 술과 함께 먹은 안주 속 지방이 분해되지 못하고 고스란히 저장된다. GETTYIMAGES

    더는 올해 건강검진을 미룰 수 없는 시기다.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건강검진에서 간 건강이 나빠졌다는 결과가 나올까 봐 걱정할 것이다. 그동안 마신 술을 해독하느라 간이 얼마나 혹사됐는지 본인이 잘 알기 때문이다. 흔히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부른다. 상태가 크게 안 좋아질 때까지 통증이 거의 없다 보니 간 관련 질환은 병증이 상당히 진행된 후에야 알아차리게 되기 때문이다.

    술로 생기는 알코올성 지방간

    간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간은 에너지를 비축하는 저장소다. 체내로 들어온 당분 가운데 신체 활동에 쓰고 남은 것을 글리코겐 형태로 저장해뒀다가, 혈액 속 당분이 너무 적어지면 이를 분해해 포도당을 만든 뒤 혈액 속으로 보낸다. 간 덕분에 혈액에 적정 수준의 당이 유지돼 정상적으로 신체 활동을 하고 저혈당 쇼크도 겪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간은 쓰레기 처리장 역할을 한다. 섭취한 음식이나 약에 들어 있는 독성물질, 체내 다양한 대사 과정에서 만들어진 독성물질을 분해해 배출한다. 따라서 간 기능이 나빠지면 몸속 독성물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건강이 크게 악화할 수 있다. 간염, 간경화, 간암 같은 병증이 생기면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간 관련 질환 가운데 흔한 것은 간이 부어오르는 지방간이다. 말 그대로 간에 지방이 낀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언제 지방간이 생기는지, 지방간이 생기면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지 알아보자.

    우리는 음식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프라이드치킨이 집으로 배달된다. 큰돈 들이지 않고 열량을 채울 수 있는 방법도 많다. 라면, 캔 햄 등 저렴한 고열량 음식이 주변에 널려 있다. 이런 음식을 먹고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체내에 잉여 열량이 쌓인다. 우리 몸은 쓰고 남은 포도당을 지방으로 바꿔 지방세포에 차곡차곡 쌓기 때문에 이 경우 간 속 지방세포에도 지방이 쌓이면서 통통하게 차오른다. 즉 비만이 지방간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런데 비만이 아니어도, 술만 마셔도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 음주 후 간 수치를 측정하면 수치가 너무 높아 깜짝 놀랄 것이다. 에틸알코올(C2H5OH·술)은 알코올 분해효소에 의해 분해되면서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만든다. 아세트알데하이드는 알데하이드 분해효소에 의해 최종적으로 아세트산, 즉 식초 성분으로 바뀌는데, 아세트알데하이드 상태로 머무는 동안 간세포에 극독으로 작용한다. 이때 손상되거나 괴사한 간세포가 세포 내 효소를 혈액으로 방출해 간 수치 상승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 알코올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대사 조효소인 NAD+ 상당수가 NADH로 환원된다. 지방을 태우는 역할을 하는 NAD+가 지나치게 적어지면 술과 함께 먹은 안주 속 지방은 전혀 분해되지 못한 채 간에 저장된다. 습관적인 음주가 지방간으로 가는 지름길인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알코올성 지방간을 가진 사람이 영양 결핍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방을 연소해 몸이 쓸 에너지를 만들지 않고 저장만 하니 정작 몸은 영양 부족 상태에 빠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당연히 간 본연의 해독 기능도 잘 수행하지 못한다. 독성물질이 체내에 그대로 남아 늘 피로하고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또한 지방이 쌓인 간은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당뇨를 불러온다.

    비만으로 생긴 지방간은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하면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 하지만 알코올성 지방간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알코올은 분해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독성물질을 만들어 간세포를 파괴한다. 그리고 간에 염증이 생겼다가 낫는 과정에서 흉터 자국이 남는데, 이 흉터 자국이 너무 많으면 간이 딱딱해지는 경화로 이어진다. 간경화의 일부는 결국 간암으로 진행된다. 통계에 따르면 알코올성 지방간 환자 10~35%가 간염을 겪고, 그중 일부는 간경화와 간암을 경험한다. 매년 간경화 환자의 약 3%가 간암으로 사망한다.

    인슐린 주사 맞은 뒤 음주 금물

    알코올성 지방간은 이렇게 무섭지만 의외로 흔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알코올 40g을 꾸준히 마시면 알코올성 지방간이 생긴다. 40g은 소주 한 병 혹은 와인 두 잔(큰 잔)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다. 하루에 소주 한 병씩을 마시는 사람이 주변에 꽤 많지 않은가.

    술이 특히 더 해롭게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당뇨 환자가 인슐린 주사를 맞은 뒤 술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인슐린은 세포들에 혈액 속 당을 흡수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호르몬이라서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 혈당 수치가 떨어진다. 혈당이 너무 낮아지면 간은 혈액으로 당을 다시 내보내 적절한 수치로 조절하는데, 이때 술이 들어와버리면 간은 오로지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만 전념하고 당을 혈액으로 내보내는 일을 등한시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혈액에 당이 너무 없어 저혈당 쇼크가 발생하는 것이다. 술을 마시다가 머리가 아프다며 타이레놀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진통제를 먹는 것도 위험하다. 간이 술을 분해하느라 약을 분해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 때문이다. 이러면 간은 알코올과 진통제라는 독성물질 2연타를 맞고 아주 큰 손상을 입게 된다. 

    술은 현대인이 가장 손쉽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이다. 친구, 동료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술자리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리는 시간이다. 그렇지만 술은 간을 비롯한 신체 기능에 일절 도움이 안 되는 그야말로 독이다. 그러니 적당히, 간헐적으로만 즐기자. 

    이광렬 교수는… KAIST 화학과 학사, 일리노이 주립대 화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게으른 자를 위한 아찔한 화학책’ ‘게으른 자를 위한 수상한 화학책’ ‘초등일타과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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