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안랩 건물.
실제 코스닥시장에서는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창당 관련 테마주가 동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안 의원이 설립한 안랩을 비롯해 써니전자, 다물미디어 등이 관련주다.
정치테마주는 대통령선거(대선)를 앞두고 특히 기승을 부렸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른바 이명박, 박근혜, 이회창, 정동영 등 대선후보 테마주나 2012년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 테마주가 그랬다.
‘묻지 마’식 투자 관행 여전
테마주는 사실 업종 분석이나 경영지표와 무관하게 특정 정치나 사회, 문화적 요소가 주가 부양 효과를 내리라는 기대감에서 비롯됐다. 특히 정치테마주의 경우 특정 기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정치인이 당선되면, 또는 해당 정치인이 내놓은 정책이 구체화되면 후광효과를 통해 해당 기업들이 경영적으로 수혜를 입으리라는 기대감이 주가를 부양한다는 것이다.
테마주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재선 당시에도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한 기업의 주가가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몇몇 종목에 불과해 열풍이라고 보긴 어려웠다는 게 전문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그 폐해가 심각하다. 막연한 기대감에 한 방을 노린 ‘묻지 마’식 투자 관행, 이를 악용한 시세 조종세력의 준동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위 테마주라는 것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연결고리가 부실한 경우가 많다. 2007년 대선 당시에도 상장사 대표나 친인척이 대선후보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으면 무조건 주가가 오르는 식의 과열양상을 보였다. 심지어 특정 상장사는 아무 이유 없이 주가가 급등했는데, 시장에서는 회사 대표가 과거 특정 대선후보와 한 차례 만난 적 있다는 루머가 고작이었을 정도다.
테마주의 말로는 비참하다. 대부분 주가가 급등한 뒤 급락하면서 고점에서 뛰어든 개미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다. 하지만 당국의 경고에도 투자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테마주는 시가총액이 작은 소형주 위주인데, 일부 투자자가 한 방을 노리고 가격 변동이 큰 종목에 멋모르고 뛰어드는 것”이라며 “일반 투자자가 급등하는 주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뛰어들었다 낭패를 보곤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창당 관련 테마주에 포함된 써니전자의 중국지사(왼쪽)와 안랩, 솔리드 등 업체들의 연구소가 들어선 판교테크노밸리.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유력 대선후보의 경선과 출마선언이 이어진 같은 해 9월께 최고 62.2%까지 상승한 정치테마주 수익률은 대선 전날 0.1%까지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이 끝난 뒤인 지난해 3~5월에도 안 의원 등 특정 정치인의 활동과 연계된 루머가 형성되면서 주가가 요동쳤다. 그러나 소재가 사라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수익률은 4%에 불과했다. 이는 같은 기간 코스피, 코스닥지수 상승률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치테마주 가운데서도 실적에 따라 수익률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2012년 9월 62.2%까지 상승한 정치테마주를 경영 실적이 부진했던 적자종목(79개)과 흑자지속주(68개)로 구분한 결과 각각 상승률이 39.2%, 23%로 구분됐다. 특정 루머가 퍼져 주가가 오를 때 실적부진주의 주가 상승률이 흑자지속주 상승률보다 높은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루머가 소멸하면 실적부진주의 수익률은 상대적인 급락세를 보였다. 결국 정치테마주도 주가 상승은 경영 실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이다.
폭등과 폭락 ‘롤러코스터 효과’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보면 정치테마주의 ‘롤러코스터 효과’는 더욱 분명해진다. 정치테마주 시가총액은 2012년 6월 1일 15조2000억 원에서 대선 정국이 치열하던 같은 해 9월 19조6000억 원까지 상승했다 지난해 12월 20일 13조1000억 원으로 대선 전보다 오히려 줄었다.
분석 기간 개별종목 최고가와 지난해 12월 20일 현재가를 비교한 결과 최고가 대비 평균주가는 반토막에 가까운 48%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들생명과학과 우리들제약, 위노바, 미래산업, 신우, 에듀박스 등 6개 종목은 80% 이상 하락했다(표 참조). 2012년 말 ‘문재인 테마주’로 꼽혔던 우리들생명과학과 우리들제약 주식은 각각 최고가 3640원과 3400원을 기록했지만 1년 뒤인 지난해 12월 20일 현재 각각 388원, 407원으로 폭락했다. 이들 종목은 2012년 결산과 지난해 9월 분기결산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루머로 부양된 주가가 루머가 소멸될 때 회복 불능 상태에 빠져 투자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뿐 아니다. 정치테마주 상당수에 시세 조종세력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2년 1월 발족한 금융감독원 테마주 특별조사반이 조사한 결과, 147개 대선테마주 가운데 49개(33.3%) 종목에서 불공정거래 혐의가 적발됐다. 3개 중 1개꼴이다. 대선테마주 거래에 관여한 행위자만 47명, 부당이익은 660억 원에 달한다.
4개 종목의 경우 5회 이상 불공정거래 조사 대상에 포함됐고, 특정 종목은 8차례나 조사 대상에 꼽혀 ‘정치테마주=시세 조종세력 개입’이라는 공식이 형성됐다는 점을 보여줬다.
최근에는 테마주가 선거철이 아닌데도 상시 고개를 든다. 이른바 정책테마주가 그것인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4대강테마주, 녹색성장 및 자전거테마주가 대표적이다.
현 정권 들어서도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상하원 연설에서 비무장지대(DMZ)에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언급하자 이른바 DMZ테마주라는 게 형성됐다. 같은 해 8월에는 평화자동차 사장이 또다시 이를 언급하자 DMZ테마주가 이상 급등 현상을 보였다.
자본시장 건전성도 해쳐
주로 DMZ 근처에 땅이나 공장을 보유한 기업들이 테마주 명단에 오르내렸다. 공원이 조성되면 정부의 토지 매입으로 재산 증식이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일신석재, 코아스, 이화공영, 루보, 삼륭물산 등이 DMZ테마주로 분류됐는데, 일주일여 만에 주가가 최대 80%까지 상승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DMZ 관련주의 움직임이 단순 기대감에 비해 너무 큰 폭으로 움직인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부지 매각을 통해 수익을 얼마만큼 창출할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가가 급등하는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 금융당국이 DMZ테마주 15개 종목에 대해 2013년 한 해 동안 수익률 추이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8월 12일부터 5영업일 동안 30%가량 상승해 9월 말에는 47.5%까지 급등한 DMZ테마주가 10월 말부터 급락해 지난해 12월 20일에는 10.2%까지 주저앉았다.
지난해 12월 현재 DMZ테마주의 평균주가는 최고가 대비 65% 수준에 머물렀다. 또 DMZ테마주의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영업이익률은 1~2%에 불과해 상장업체 평균 대비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은 주식은 루머에 의해 요동치고, 결국 투자자에게는 독이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준 셈이다.
문제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정치테마주 준동이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특별조사국 하은수 테마기획조사팀장은 “정치테마주는 풍문만으로 단기간 급등락할 뿐 아니라, 실적 부진 기업의 주가가 과도하게 상승해 자본시장 건전성을 해칠 우려가 크다”면서 “6월 지방선거에 편승해 정치테마주가 다시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투자자의 신중한 투자를 당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