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호반건설의 ‘벌떼입찰’ 관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89년 김상열 호반장학재단 이사장이 자본금 1억 원으로 창업한 호반건설은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13조7840억 원, 재계 서열 33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본업인 건설업 분야에서 국토교통부(국토부) 시공능력평가 1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최근 레저·금융·미디어 등 사업 다각화에도 나섰다.
서울 서초구 호반건설 본사. [뉴스1]
페이퍼컴퍼니 앞세워 공공택지 확보
호반건설의 사세 확장 비결은 ‘무차입 경영’이라는 분석이 많다. 호반건설은 부채 비율 20% 이하의 높은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는 현금 부자로 유명하다. 이렇게 확보한 현금으로 공공택지를 매입한 후 아파트를 분양해 높은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협력업체 공사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지급하는 등 ‘상생 기업’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이 같은 호반건설의 급성장 이면에 꼼수 벌떼입찰과 부당내부거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6월 15일 호반건설이 벌떼입찰로 입찰받은 공공택지를 총수인 김상열 이사장의 장·차남이 최대주주로 있는 자회사에 부당 지원하는 등 부당내부거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608억 원을 부과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2010~2015년 사실상 페이퍼컴퍼니인 자회사를 다수 동원해 경기 화성 동탄, 김포 한강, 의정부 민락 등 23개 공공택지를 확보했다. 이 공공택지를 다시 총수 아들들이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각각 넘겨 분양매출 5조8575억 원, 분양이익 1조3587억 원을 얻게 했다. 이 과정에서 호반건설 측은 사업시행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 자회사에 2조6393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호지급보증과 인력도 지원했다. 호반건설이 편법 입찰로 알짜배기 공공택지를 입찰받아 얻은 수익에 비해 과징금 액수가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김상열 호반장학재단 이사장(왼쪽)과 장남 김대헌 호반그룹 기획총괄사장.[뉴시스]
공정위 “역대 세 번째 규모 과징금”
공정위는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이다. 호반건설에 대한 과징금 규모와 관련해 공정위 측은 “사안이 굉장히 중하다고 봐서 부당 지원 사건 중 역대 세 번째 규모로 과징금이 부과됐다”며 “불법 전매를 통한 부당 지원에 관해 시장에 충분히 경종을 울렸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부과하기로 한 과징금 608억 원의 내역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갈래다. 우선 호반건설이 확보한 공공택지를 자회사에 사실상 무상으로 양도한 행위에 대한 과징금이 약 360억 원이다. 벌떼입찰에 나선 자회사의 입찰 신청금을 무상 대여하는 등 부가적인 부당 지원 및 사익 편취와 관련된 과징금이 약 240억 원이다. 이 가운데 핵심 부당내부거래 행위인 ‘공공택지 양도’ 과징금이 360억 원에 그친 것은 “택지 양도로 이뤄진 부당 지원 금액 규모를 정확히 특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게 공정위 측 설명이다.호반건설의 편법 벌떼입찰 의혹을 정조준한 것은 원희룡 장관이 이끄는 국토교통부(국토부)다. 원 장관은 6월 16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공정위가 과징금 608억 원을 부과했지만, 호반건설의 두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들은 분양이익만 1조30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불공정도 이런 불공정이 없다”면서 “현재 호반건설의 2019~2021년 벌떼입찰 건도 국토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원 장관이 언급한 호반건설의 2019~2021년 벌떼입찰의 구체적 내용을 묻는 질문에 국토부 관계자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9월 편법 벌떼입찰에 연루된 업체 10곳을 적발하고 경찰에 수사 의뢰한 데 이어, 올해 4월 추가로 13곳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일부 업체가 페이퍼컴퍼니 등 청약 자격이 없는 부적격 법인을 여러 개 내세운 벌떼입찰로 공공택지를 부당하게 공급받았다는 의혹이다. 공공택지 입찰 과정에서 업체 측이 제출한 서류 내용도 국토부의 현장점검 결과 상당 부분 허위로 밝혀졌다. 가령 현장점검 결과 한 건설사 직원들은 서류상 등록된 곳이 아닌, 모기업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또 다른 업체는 모기업과 사무실을 공유하면서 건설업과는 관련 없는 업무만 수행했는데, 국토부가 점검에 나서자 사무공간을 급조하려다 적발됐다.
덩치 키운 자회사 합병으로 경영권 승계
일각에선 호반건설을 둘러싼 리스크가 과징금 납부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공정위는 호반건설의 공공택지 전매 행위가 2010~2015년 집중적으로 이뤄져 부당내부거래 관련 공소시효(5년)가 지났다며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당장 공정위가 들여다본 부당내부거래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공소시효 15년) 등 추가 의혹이 불거지면 검찰이 수사에 나설 수도 있다. 이 경우 검찰이 자회사에 대한 부당 지원을 결정한 책임자가 누구인지, 그 과정에서 편법 경영권 승계는 없었는지 살피면서 수사가 호반건설 총수 일가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공정위 발표 직후 호반건설 측은 “공정위 결정과 관련해 조사 과정에서 충분히 소명했음에도 당사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공정위 의결 결과에 대해 의결서 접수 후 이를 검토해 향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간동아’는 6월 21일 호반건설 측에 △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 시정명령 및 과징금 608억 원 부과 △벌떼입찰에 관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처벌 의지 표명 △자회사 가치를 높인 후 합병해 사실상 승계를 마무리한 것과 관련된 논란 등에 대한 입장을 물었으나 업체 관계자는 “답변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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