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GettyImages]
향후 AI 분야에서 벌어질 미·중 갈등 양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4월 11일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같이 전망했다. 지금까지는 미·중 모두 자국 AI 기술 및 산업 성장에 몰두했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현실에서도 그 징후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최근 중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챗GPT 대항마 성격의 생성형 AI 챗봇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미국의 견제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4월 7일(현지 시간) 한 언론 인터뷰에서 AI 개발을 일시 중단하자는 미국 IT업계의 움직임에 대해 “AI 연구를 6개월간 멈추는 건 중국에만 이익이 되는 일이라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 ‘AI 굴기’를 둘러싼 경계론이 부상하면서 미국의 대중(對中) 규제가 AI 분야에서도 본격화할지 주목된다.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로 대표되는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최근 자체 개발한 AI 챗봇을 하나 둘 공개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4월 7일 일부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자사 AI 챗봇 ‘퉁이 첸원’을 시험해볼 수 있게 한 데 이어, 4월 11일 연례행사 ‘알리바바 클라우드 서밋 2023’에서 퉁이 첸원을 시장에 전격 공개했다. 바이두는 3월 16일 AI 챗봇 ‘어니봇’을 발표했고, 텐센트는 2월 ‘훈위안에이드’라는 이름의 AI 챗봇 개발 계획을 밝혔다. 이 밖에 미국의 투자 제한 블랙리스트에 속한 중국 AI 기업 센스타임도 4월 10일 자사 초거대 AI 언어 모델 ‘센스노바’를 적용한 AI 챗봇 ‘센스챗’을 선보였다. 현재까지 AI 챗봇을 출시했거나 개발하고 있는 중국 기업은 12곳에 이른다.
AI 기술력 면에서 아직은 중국이 미국보다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중국이 공격적으로 AI 학습 데이터를 수집해 미국과의 성능 격차를 따라잡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병호 고려대 Human-inspired AI연구소 교수는 “오픈AI, 바이두, 알리바바 모두 AI의 세부 성능을 비공개하고 있지만 트랜스포머 알고리즘을 조금씩 변형해 사용하고 있는 건 모두 동일하고 AI 언어 모델의 파라미터 수가 조 단위냐, 억 단위냐 차이가 있을 뿐”이라며 “중국 인구가 한 해에 쏟아내는 데이터량은 전 세계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이미 출시된 AI를 통해 다른 나라의 데이터도 마구 수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무기로 금세 미국을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중국의 디지털 전환 전략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중국에서 생성된 전체 데이터량은 7.6제타바이트(ZB: 1ZB=1조1000억GB)로 전 세계 데이터량의 23%에 해당한다.
美 GPAI 가입도 중국 견제 포석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최근 자체 개발한 AI 챗봇을 하나 둘 공개하고 있다. [동아DB]
AI 분야에서 미국의 대중 규제는 일차적으로 ‘사용 금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금까지 미국은 자국 AI 기업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억제하고, 엔비디아 등에서 생산하는 AI용 고성능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하는 등 우회적으로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국 내 중국 AI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예가 중국 영상 공유 애플리케이션(앱) ‘틱톡’이다. 현재 미국 행정부는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공공기관 전자기기에서 틱톡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의회에는 ‘틱톡 금지법’이 발의된 상태다. 틱톡 전에는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같은 이유로 미국에서 퇴출당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화웨이, 틱톡과 마찬가지로 중국 AI도 미국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중국에 넘겨 안보 위험을 초래한다는 의혹을 살 것”이라며 “틱톡에 이어 축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동맹국과 함께 진영을 구축해 중국 AI에 대응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데이터 유출과 관련해서는 ‘친구(동맹국)의 취약점도 나의 취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2020년 ‘글로벌인공지능협의체’(GPAI)에 뒤늦게 가입한 것도 이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상배 교수는 “2018년 GPAI 설립이 추진될 당시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미국만 동참하지 않았는데 2년 뒤인 2020년 미국이 갑자기 가입 의사를 밝혔다”면서 “당시 미·중 무역 전쟁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 추후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응해 우방국의 힘을 빌려야 할 때를 계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아마 미국은 칩4, 쿼드, 파이브 아이즈처럼 AI 분야에서도 동맹국이 함께 뭉쳐 중국에 압력을 가하기를 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2 LG유플러스 사례 나올 수도
현재 미국 의회에는 미국 내 틱톡 사용을 금지하는 ‘틱톡 금지법’이 발의돼 있다. [동아DB]
전문가들은 한국에도 그 불똥이 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음은 김상배 교수의 설명이다.
“미국이 한국에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했을 때 정말 난감한 처지에 놓였던 게 LG유플러스다. LTE망에 30%가량 화웨이 장비를 도입한 것은 물론,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도 약 30%를 화웨이 것으로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I 분야에서 미·중 갈등이 제대로 불붙으면 그런 사례가 또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중국이 희토류 같은 광물을 무기화할 경우 대중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여러 산업에 걸쳐 피해를 볼 수 있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슬아 기자입니다. 국내외 증시 및 산업 동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영상] “이제는 알트코인의 시간… ‘수백 배 수익’도 가능”
‘매파’ 파월 입에 국내 증시 충격… 2400 선 위협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