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C-17 수송기에 탑승하고자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 모인 현지 주민들. [AP=뉴시스]
도주한 아프간 대통령
흔히 ‘유세’로 옮기는 영어 단어 ‘Campaign(캠페인)’은 군사적으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개한 싸움인 ‘전역(戰役)’으로 번역된다. 전쟁에는 갑자기 쳐들어온 적과 싸우는 방어전만 있는 게 아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격해 들어가는 전쟁도 있다. 이때는 쟁취할 목표를 분명히 하고, 들일 수 있는 자산과 기간을 대략 계산한 후 작전계획을 세워 공격하는 ‘전역’을 펼친다.2001년 9월 11일 아프간에 숨어 있던 반미 무슬림 조직 알카에다 요원들이 여객기를 납치해 미국 국방부와 세계무역센터를 공습했다. ‘미국을 위협하는 것은 다른 국가’라고 인식하던 미국 정부는 깜짝 놀라 테러단체를 없애는 ‘대(對)테러전’ 수행을 결정했다. 미군 중부사령부(중부사)에 ‘아프간 전역’을 명령했다. ‘불굴의 자유(Enduring Freedom) 작전 계획’을 수립한 중부사는 한 달도 되지 않은 10월 7일에 아프간 전역을 개시했다. 중부사는 개전 한 달 만인 11월 13일 카불을 점령했다. 다만 탈레반은 다른 도시를 무대로 저항했고 알카에다 세력도 소탕되지 않았다. 중부사는 카불 등 점령지에서 친미 정권 수립을 도우며 전역을 이어갔다. 전역 11년 차인 2011년 초 미국 CIA(중앙정보국)가 드디어 알카에다를 이끌던 오사마 빈라덴의 파키스탄 은신처를 알아냈다. 그 즉시 중부사는 ‘해신의 창(neptune sphere) 작전’을 입안해 5월 1일 최고의 미 해군 특수전부대 데브그루(DEVGRU)를 투입해 빈라덴을 사살했다.
전역 목표를 달성했다고 판단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2014년 5월 27일 ‘아프간 철수’를 발표했다. 그런데 때마침 탈레반이 공세를 강화했기에 2015년 10월 15일 철수를 보류하고 탈레반 제거를 전역의 새 목표로 정했다. 다시 1년이 지난 2016년 5월 21일 미군은 트럭을 타고 가던 탈레반 2대 지도자 아흐타르 만수르를 드론으로 공격해 사살했다. 그해 11월 10일 대선에서 아프간 철수를 공약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했다. 탈레반은 무슬림 신학자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를 3대 지도자로 옹립했다. 미국은 만수르 사살을 통해 자국이 강제로 탈레반 ‘권력교체(regime change)’를 이뤘다고 봤다. 권력교체를 당한 세력은 강하게 나오지 못한다고 본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2018년 7월 앨리스 웰스 국무부 부차관보를 카타르 도하로 보내 탈레반과 평화협상을 하게 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20년 2월 29일 도하에서 양측은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전쟁은 보통 일시적 사격 중지(cease fire)→전(全) 전선에서 휴전(armistice)→휴전 상태를 이어가는 조건에 합의하는 정전(truce)협정 체결→정전이 장기화되면 평화협정(peace agreement), 양측 국회 비준을 받은 평화조약(peace treaty)을 맺어 평화 상태로 이전한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철수하면 그만이기에 단계를 건너뛰어 바로 평화협정을 맺은 것이다. 이 협정에는 ‘서명 후 탈레반이 약속을 잘 지키면 미군은 14개월 내 철수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미국은 이 협정을 보증하고자 2020년 3월 1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열어 만장일치로 이 협정 지지 결의안을 내게 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당선됐다. 바이든 대통령도 오바마,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아프간 전역 목표가 달성됐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미군 철수 14개월 시한 만료일은 4월 30일이었다. 그 전에 가니 대통령이 할 일은 탈레반과 정전협정을 맺어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포로 교환부터 합의해야 하는데, 가니 대통령은 완전한 교환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정전협상이 무산되고 탈레반은 공격을 재개해 카불을 점령했다. 미국은 패퇴한 것이 아니라 전역 목표를 달성했으니 떠난 셈이다. 가니 대통령은 우세한 전력을 가졌음에도 두려움에 젖어 허둥대다 자멸한 꼴이다. 그는 2019년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차점자 후보가 불복하고 정치투쟁을 이어갔기에 안팎으로 쫓겼다.
미국을 들었다 놨다 한 이승만
6·25전쟁 때 미국은 ‘전쟁 전 상태 회복’을 전역 목표로 삼고 참전했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다른 생각을 했다. 정전 후 북한이 재침공할 수 있다고 보고 ‘북진통일’을 외쳤다. 북한에 당했다며 분노하던 국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반공포로를 몰래 풀어줘 정전협상을 진행 중이던 미국을 크게 훼방했다. 위기를 느낀 미국은 그를 강제로 하야시키는 ‘에버레디 작전’을 준비했지만, 한국민의 반미 의식 고양을 우려해 포기했다. 그때 이 전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미국은 북한과 정전협정을 맺고 한반도에서 철수하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미국 국회 비준까지 받아줬다. 북한은 미국과 정전협정을 맺었지만 우리와는 맺은 바 없다. 따라서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은 다시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 과거 북베트남이, 지금은 탈레반이 그런 식으로 통일을 이뤘거나 통일 임박 단계에 있다. 그럼에도 한반도에서 북한의 재침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적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덕이다.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바로 평화협정·조약을 맺자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미국에도 북한과의 협정·조약 체결을 요구한다.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맺으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사실상 소멸되고 주한미군은 철군하거나 크게 감축돼야 한다. 남북, 북·미 평화협정으로 뚫린 통로를 이용해 한국 측이 북한 정권을 붕괴시켜 통일의 단초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 새로 열린 통로로 인해 더 흔들리는 쪽은 한국일 수도 있다. 평화협정 없이 한미동맹만 있는 분단은 안전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불안할 수 있는 것이다. 가니 정권의 카불은 서울의 미래를 보는 타산지석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