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0

2012.06.04

동양에 대한 편견이 그의 눈을 가렸다

연극 ‘M. Butterfly’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2-06-04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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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에 대한 편견이 그의 눈을 가렸다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을 기억하는가. 19세기 말 일본 나가사키. 미국 해군 장교 핑커턴은 ‘재미 삼아’ 열다섯 살 게이샤 초초상과 혼인한다. 행복도 잠시. 핑커턴은 고국으로 돌아가 미국 여인과 정식으로 결혼하고, 초초상은 홀로 아들을 키운다. 몇 년 후 핑커턴 부부가 일본을 방문한다. 이들의 목적은 아이를 빼앗아가는 것이다. 결국 초초상은 죽음을 택한다.

    남성들은 대부분 초초상의 고고함을 칭송하고 핑커턴의 너절함을 욕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핑커턴이 될 기회가 생기면 거부하지 않는다. 하늘하늘 나비처럼 연약하고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끝까지 정절을 지키는 초초상은 모든 남성의 판타지다. 연극 ‘M. Butterfly’는 핑커턴이 되고 싶은 남성들을 겨냥해 조롱한다. 남성이 지닌 환상을 철저히 깨부수고 잔혹한 진실을 보여준다.

    1964년 중국 베이징.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는 오페라 ‘나비 부인’을 연기하는 중국인 배우 송 릴링의 도도함과 신비함, 그리고 순종적 태도에 매료된다. 송을 ‘현지처’로 삼은 르네는 그에게 국가기밀을 가감 없이 말하고, 송은 이 정보를 당에 전달한다. 이들의 사랑은 20여 년간 이어진다. 송이 남자라는 사실을 르네가 알기 직전까지.

    작품은 계속 질문을 던진다. 르네는 송이 남자인지 몰랐는가, 아니면 모른 척했는가. 송은 극 중 법정에서 직접 “르네는 내 아랫도리를 본 적 없고 우리는 항상 성적으로 만족했다. 나는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이 원하는 여성상을 잘 알았고 그대로 연기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르네가 가진 ‘도가 지나친 믿음’의 심연에는 동양에 대한 근원적 멸시가 있다. 서양은 군림하고 동양은 복종하는 구조 속에서 서양 남성은 동양 남성이 자기보다 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 한다. 상상 속 여인이 등장하자마자 앞뒤 재지 않고 바로 자신의 판타지를 덧대는 남성의 편협함 역시 문제다. 결국 르네가 덫에 걸린 이유는 그가 서양 남성으로서 여성과 동양을 바라보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198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더욱 극적이다.



    동양에 대한 편견이 그의 눈을 가렸다
    마치 새장을 반으로 자른 듯한 무대가 인상적이다. 르네는 자신만의 나비 부인을 탐했지만, 정작 본인이 새장 속 광대가 되고 말았다. 남성은 자기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들이 아는 것은 한없이 좁고 왜곡된 세상일 때가 많다. 르네가 자신감 넘치게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의 승리를 예측하지만 그 결과가 여지없이 빗나간 것도 마찬가지. 그래서 새장을 반으로 자른 무대는 마치 “남성의 호기는 새장 안에서나 가능하다”고 조롱하는 듯하다.

    송과 르네의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하는 앞부분과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지나치게 해석적이고 대사가 많다. 특히 남성으로 돌아온 송이 감옥에 있는 르네와 만나는 장면은 말 대신 상징과 은유로 표현했다면 훨씬 극적이었을 것이다. 두꺼운 화장에 야한 치파오를 입고 르네를 유혹하던 송은 극 중간 즈음 무대에서 양복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지운다. 인터미션을 이용하거나 무대 뒤에서 분장을 바꿀 수 있는데도 굳이 무대에서 변신하는 것은 시공간적 한계가 분명한 연극의 특성을 극대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6월 6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문의 02-766-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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