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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재의 중국 속 북한

해외순방 전격 공개 김정일, 최후를 예견했나

러시아·중국 거친 ‘에너지 순방’ 전례 없이 일정과 전용열차까지 공개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해외순방 전격 공개 김정일, 최후를 예견했나

2011년 8월 고(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중국을 경유한 귀국은 그의 마지막 해외 일정이었다. 필자로선 그의 이전 해외 활동보다 취재의 즐거움이 컸다. 김 위원장의 다음 날 일정을 알아낼 정도로 취재에 탄력이 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방문만 놓고 보자면 이전에 비해 관심과 기사 가치는 떨어졌다. 러시아 방문의 뒤를 잇는 부수적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 사망 석 달여를 앞둔 징후였을까. 과거엔 볼 수 없던 현상이 잇달았다. 비밀도 점차 사라졌다.

과거에는 볼 수 없던 보도 행태

김 위원장은 8월 21일 러시아를 찾았다. 2002년 8월 이후 9년 만의 러시아 방문이었다. 8월 24일 동부 시베리아 울란우데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이튿날인 25일 저녁 러시아와 중국 접경 지역인 네이멍구자치구의 만저우리를 통해 중국을 찾았다. 중국에서의 일정은 2박 3일로 짧았다.

방중 첫날 김 위원장은 네이멍구자치구의 후룬베이얼에서 후춘화(胡春華) 당시 네이멍구 당서기가 주최하는 환영 연회에 참석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치치하얼과 다칭 두 도시에서 산업시설을 시찰했다. 다칭에서 만찬을 겸한 공연을 관람한 뒤 전용열차에 몸을 실었고, 열차에서 숙박하면서 그다음 날 귀환했다. 중국 외교부는 김 위원장의 방중 성격을 ‘경유 및 동북지방 방문’이라고 밝혔다. 즉 주목적지인 러시아를 다녀오는 길에 중국을 들렀다는 취지였다. 이 때문에 북·중 정상회담도 없었다.

이때 김 위원장의 해외 일정은 ‘에너지 순방’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에너지 이슈가 부각됐다. 북·러 정상회담에서는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경제협력을 체결했다. 중국에서도 중국 최대 지상유전이 있는 다칭시를 찾았다. 다칭은 러시아에서 오는 송유관의 도착점이다. 시베리아 아무르 주 스코보로디노에서 다칭을 잇는 1000km 길이의 송유관이 2011년 1월부터 가동했다. 이 송유관을 타고 시간당 2100m3 의 러시아 석유가 중국으로 수송된다.



해외순방 전격 공개 김정일, 최후를 예견했나

2011년 8월 중국 동북지역을 경유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용열차(위). 8월 30일 조선중앙TV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담은 기록영화를 방영하면서 김 위원장의 전용칸으로 보이는 특별열차 내부를 공개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뱌체슬라프 나고비친 부랴티아공화국 대통령과 전용열차 내에서 담화하는 모습.

특히 이때 행보에서는 과거에는 볼 수 없던 보도 행태가 북한과 중국 양쪽에서 모두 나타났다. 8월 25일 밤 10시 20분쯤 북한 조선중앙TV는 ‘우리 정치 지도원’이라는 예술영화를 방송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을 우상화한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 방영 도중 갑자기 여성 아나운서가 등장해 김 위원장의 방중 소식을 알렸다. 아나운서는 “김정일 동지의 중화인민공화국 동북지역 방문에 대하여”라고 언급한 뒤 “김정일 위원장이 8월 25일 러시아 시베리아와 극동지방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중국 동북지역을 방문하게 된다”고 전했다. 아나운서 멘트가 끝난 뒤 예술영화는 계속 이어졌다.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중국에 진입한 지 4시간 만에 이뤄진 북한식 ‘긴급 보도’였던 셈이다. 뉴스 10여 분 전에는 조선중앙통신이 김 위원장의 방중 소식을 전했다. 북한 매체들은 그가 러시아에 머무는 동안에도 과거와 달리 당일 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방문 소식을 신속히 전한 것은 중국 매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의 방중 행선지와 일정을 당일 상세히 보도했다. 모두 전례가 없던 일이다. 그동안 북한과 중국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방중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마무리 시점에서야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이례적인 일은 또 있었다. 김 위원장이 러시아와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며칠 뒤 북한은 세계 언론의 눈길을 사로잡는 장면을 공개했다. 베일에 싸인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 내부를 공개한 것이다. 조선중앙TV는 8월 30일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소개하는 30분짜리 기록영화를 방영하면서 전용열차 내부를 공개했다. 특히 김 위원장의 집무 전용칸으로 추정되는 장소도 보여줬다. 이곳에서 김 위원장이 러시아 관계자들과 만나는 장면도 소개했다. 김 위원장의 방러 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과정에서 전용열차 내부를 공개한 것이다. 마치 앞으로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를 타고 해외로 나갈 일이 없을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전용열차와 방문 일정. ‘김정일 해외순방’의 보안 유지를 위해 꼭꼭 감춰오던 이 두 가지를 전격 공개하고 석 달여 만에 김 위원장은 사망하게 된다. 이런 이례적인 일은 김 위원장 사망의 전조였던 셈일까. 묘한 일이다.

‘김정일 추적’이라는 게임

소속 회사에 러시아 특파원이 없는 관계로 필자는 베이징 사무실에서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일정까지 보도해야 했다. 8월 25일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중국 땅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또다시 한바탕 숨바꼭질을 벌여야 할 터였다. 김 위원장이 탄 열차는 중국 시각 오후 6시(한국 시각 오후 7시) 무렵 러시아와 중국 접경 지역인 만저우리에 진입했다. 필자는 앞서 이날 오후부터 중국 내 취재원들을 상대로 취재에 들어갔다. 예상 가능한 동선과 김 위원장이 과거 방문했던 지역의 취재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전화를 수십 통 돌린 끝에 헤이룽장성에서 첫 징후를 찾아냈고, 이내 다칭에서 좀 더 확실한 징후를 포착했다. 다칭은 중국 최대 육상유전이 있는 지역이다. 1959년 대형 유전을 발견한 이후 도시 명칭을 다퉁에서 다칭으로 바꿨다. 다칭은 ‘큰 경사’라는 뜻. 러시아에서 에너지 이슈가 부각되는 일정을 가졌으므로 중국에서도 이와 관련 있는 지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됐다. 방문 날짜가 8월 26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사 작성에 들어갔다. ‘김정일, 내일 중국 최대 유전 소재 다칭 방문’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출고했다. 한국 시각 5시 47분이었다.

이 내용은 YTN 오후 6시 뉴스에 방송됐다.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아직 중국에 진입하기 전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8월 26일 예상대로 김 위원장은 다칭을 방문했다. 기사 내용 중 한 가지는 틀렸다. 김 위원장의 다칭 방문 일정에 시진핑 부주석 등 고위층이 동행할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김 위원장의 방문 현장에는 당시 중국의 집단 지도부인 상무위원 9명 중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그의 중국 내 움직임은 관심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먼저 편집부에서 기사를 요구하는 빈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었다. 주목적지인 러시아에 비해 정상회담 등 특별한 일정이 없던 중국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을 만했다. 데스크마저 좀 쉬어도 된다고 할 정도였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김정일 추적’이라는 게임에 흠뻑 빠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귀환길에 오르는 순간까지 계속 취재했고 기사를 썼다. 그의 마지막 해외순방 취재는 이렇게 끝났다. 이미 김정일이라는 존재는 언론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베일도 걷히고 있었다.

“기다리면 다 알 텐데…”

해외순방 전격 공개 김정일, 최후를 예견했나

중국중앙(CC)TV ‘신원롄보’가 보도한 북·중 정상회담 모습.

이때는 예외적으로 생략됐지만, 통상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경우 그 피날레는 귀환 당일 국영방송인 중국중앙(CC)TV의 저녁 뉴스 ‘신원롄보’가 장식하곤 했다. ‘신원롄보’는 매일 오후 7시 방송하는 CCTV의 저녁 메인뉴스로 중국 내 최고 영향력을 자랑한다. 김 위원장이 북한으로 돌아간 뒤에야 ‘신원롄보’를 통해 그의 중국 내 동정이 상세히 보도됐다. 물론 깨끗한 화면과 함께 말이다. 방송기자 처지에서 보면 이때가 가장 한숨이 나올 때다. 철저한 비밀과 통제 속에 진행된 ‘김정일 동선’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외신 기자들이 김 위원장의 숨겨진 흔적을 찾으려고 그토록 전쟁을 벌이지만, CCTV는 이들을 따돌린 채 모든 일정을 동행하며 아주 느긋하게 촬영한다. 그리고 김 위원장의 방문 일정이 마무리되면 한꺼번에 보여주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간의 취재에 점수가 매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불확실성의 틈바구니에서 기자들이 전했던 기사의 사실 여부가 확연히 드러난다. ‘김정일 방중’을 취재하는 필자에게 한 중국 기자가 건넨 말이 기억난다. “어차피 기다리면 다 공개되는데 왜 이렇게들 난리입니까. 며칠만 기다리면 CCTV가 친절하게 다 알려줄 텐데….” 허탈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생의 마지막 1년 김 위원장은 모두 4차례 중국을 찾았다. 방문이 거듭될수록 중국 인민의 불만도 커졌다. 방중 기간 중국 인터넷에는 이들의 불만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김 위원장을 ‘뚱보’ 등으로 비하하며 “구걸하러 왔느냐” “또 식량 떨어졌나”라는 식의 조롱이 이어졌다. 특히 김 위원장이 방문한 도시 주민들은 교통 대란에 분노를 터뜨렸다. 왜 북한 지도자 때문에 중국 인력이 동원되고 일반인이 일상생활에서 피해를 입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기억에 남는 한 누리꾼의 반응이 있다. 김 위원장이 묵은 어느 영빈관의 직원이었다. 통상 김 위원장이 중국을 찾으면 선발대가 미리 와서 보안을 위해 숙소 등을 답사한다. 그런데 방중을 앞두고 찾아온 선발대가 호텔에서 투숙하고 떠난 뒤 이 호텔 직원은 “메뚜기 떼가 지나갔다”고 표현했다. 객실에 비치해둔 세제 등 일회용품은 물론,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까지 모두 쓸어갔다는 것이다. 이를 기사로 다룰까 한참 고민하다가 끝내 접어야 했다. 인간적 연민에 더해 보도를 확인한 북한 당국이 이들의 인사 조치를 요구하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북한을 조롱하는 중국 누리꾼의 글이 늘어날수록 필자가 느낀 것은 공연한 씁쓸함이었다.



주간동아 2013.11.25 914호 (p42~44)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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