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8

2013.05.20

이렇게 고운 꽃이 ‘홀아비’라니

홀아비꽃대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05-20 15: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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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고운 꽃이 ‘홀아비’라니
    꽃이 피는 일도 그렇습니다. 뜸들이고 또 뜸들이다 하나 둘씩 툭툭 꽃망울을 터뜨리더니 요즘 유행어로 빛의 속도로 순식간에 꽃들이 피어버려 한동안은 말 그대로 꽃천지가 되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잎이 나는 속도가 그리 느껴집니다. 폭삭폭삭한 봄 숲의 분위기가 멋졌는데 어느새 사방에 싱그러운 신록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사람도 나무도 풀도 봄기운에 들떴지만 이름만큼은 그래서 더 외로운 듯 느껴지는 꽃들이 있습니다. 바로 홀아비바람꽃, 홀아비꽃대지요. 두 식물 모두 꽃대가 하나씩 올라와 그런 이름이 붙은 식물이며, 봄에 흰 꽃이 핀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홀아비’라니! 이름만 듣고 어떤 모습의 꽃을 상상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꽃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맑고 깨끗한 모습을 가졌답니다. 이리 고운 꽃에 혼자라는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재미난 이름을 붙인 옛 어른들의 해학에 절로 미소가 떠오릅니다. 이 꽃들은 그냥 만나면 거리감을 느낄 만큼 깊은 산에서 자라지만 장난스러운 이름을 부르고 나면 금세 정다워지잖아요.

    홀아비꽃대는 홀아비꽃댓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같은 집안에 속한 꽃대라는 식물은 대가 2개 올라오지만 홀아비꽃대는 하나씩 올라옵니다. 산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이에요. 숲이 무성해 녹색이 우거지기 전이라면 너무 양지바른 곳도, 그렇다고 어두운 깊은 숲 속도 아닌 곳에서 꽃대를 잎사귀에 쌓아 쑥쑥 올라옵니다. 그리고 봄 햇살을 받아 점차 잎사귀를 사방으로 펼쳐내고 이내 특별한 자태를 보이지요. 연한 녹색 비늘처럼 번뜩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잎은 4장씩 달립니다. 엄격히 말하면 잎이 2장씩 마주 달리지만, 달리는 마디가 워낙 짧아 그리 느껴집니다. 이 잎만으로도 개성이 넘친답니다.

    잎이 펼쳐지기 전 이미 만들어진 꽃들 역시 아주 독특합니다. 앞에서 그냥 하나의 꽃대라고 말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꽃차례입니다. 어찌 보면 촛대에 올린 흰 초처럼 보이지요. 꽃차례에 둘려 달리는 삐죽삐죽한 흰 기관은 꽃잎이 아니라 수술이랍니다. 식물학적으로도 특별한 구조를 지니는데, 화피(꽃잎이나 꽃받침)는 없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밑부분이 3개씩 붙은 형태입니다. 잘 살펴보면 가운데 있는 수술에는 꽃밥이 없으며, 양쪽 수술은 수술대 밑부분에 꽃밥이 있습니다.

    쓰임새로 치면 특히 보기에 좋아 우리 꽃을 좋아하는 분이 이 꽃을 많이 키웁니다. 정원에서는 큰 나무 아래에 심으면 좋고, 보통은 나지막한 분에 모아 심으면 한 계절 자연의 풍미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지요. 한방에서는 은선초(銀線草)란 생약이름으로 쓰는데 한기나 독, 습한 기운을 없애고 피를 잘 돌게 하는 등 여러 증상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증상에 따라 달여 마시거나 민간에서는 술을 담가 마신다고 하네요. 키우고자 하면, 종자 파종을 해도 되지만 그보다는 보통 포기 나누기를 하는 것이 쉽습니다. 비옥한 땅이라면 아주 잘 자랍니다.



    홀아비꽃대. 혼자 있는 것이 얼마나 애처로운 일이면 이 여리고 고운 꽃에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요. 홀아비꽃대는 서로 기대며 그 쓸쓸함을 대신합니다. 사람도 꽃도 기대어 살아가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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