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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듣보잡이 사고 쳤다고? 밴드음악에 완전 미쳤을 뿐”

한국 록 음악의 태풍 ‘국카스텐’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듣보잡이 사고 쳤다고? 밴드음악에 완전 미쳤을 뿐”

“듣보잡이 사고 쳤다고? 밴드음악에 완전 미쳤을 뿐”

국카스텐 멤버들. 왼쪽부터 김기범(베이스), 전규호(기타), 하현우(기타·보컬), 이정길(드럼).

6월 29일 일산 MBC드림센터에서 ‘일밤-나는 가수다 Ⅱ’(이하 ‘나가수2’) 녹화가 있었다. 여섯 팀의 경연이 모두 끝난 후 국카스텐은 대기실에서 “이번에는 아무래도 하위권일 것 같다”며 걱정했다. 그럴 법도 했다. 한계를 뛰어넘은 듯했던 이은미, 주특기를 십분 발휘한 이영현이 있었다. 새로 합류한 서문탁은 레드 제플린의 ‘Black Dog’를 부르며 관록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반면 멜라니 사프카의 ‘The Saddest Thing’을 부른 국카스텐은 어쿠스틱 편곡으로 차분한 무대를 선보였다. 전규호(기타), 김기범(베이스), 이정길(드럼)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가운데 인터뷰를 끝내고 하현우(보컬, 기타)가 들어왔다. 그가 말했다.

“야, 우리 아무래도 이번에는 안 될 것 같아! 다들 진짜 잘하더라.”

멤버들 사이에 농반진반 대화가 오갔다.

“아무리 그래도 꼴찌로 나가는 건 쪽팔린데….” “차라리 완전히 난해하게 편곡해서 꼴찌할까? 그러면 체면은 살릴 수 있을 텐데….” 얼마 후 박명수가 들어왔다. 결과 발표를 위해서였다. 박명수가 결과를 통보하는 휴대전화를 테이블에 던졌다. 액정에는 ‘상’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그들의 예상과 달리 상위 3등 안에 든 것이다. 이로써 성대를 ‘폭발’시켜야 상위권에 들어간다는 ‘나가수2’의 암묵적 룰이 깨졌다.

생각해보면 이들의 ‘나가수2’ 합류 자체가 파격이었다. 5월 새로운 시즌의 첫 한 달을 보내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박완규와 백두산 대신 한영애와 국카스텐이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인터넷 포털사이트 댓글은 한결같이 “얘들이 누구냐”는 내용 일색이었다.



나가수2 합류 “얘들이 누구냐”

“아무렇지 않았어요. 이해는 되죠. 사실 우리가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의 줄임말)이니까.”

하지만 그런 우려 섞인 반응, 솔직히 말해 ‘악플’은 그들이 첫 경연을 벌인 날 단숨에 사라졌다. 그들은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을 불렀고, 청중은 이 ‘무명’ 밴드의 공연이 끝나자 기립박수를 쳤다. 시청자 투표에서도 압도적인 표를 받았다. 결과는 1등. 그 순간부터 다음 날까지 포털사이트 검색어에서 국카스텐은 상위권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그게 더 재미있었어요. 듣보잡인데 나오자마자 1등을 했잖아요. 그게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사건이 된 거죠. 사실 검색 순위 1등 이런 건 이해가 안 됐어요. 우리는 계속 공연을 해왔고,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그 정도로 화제가 되니 새삼 지상파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죠.”

지상파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신데렐라 스토리다. 그리고 신데렐라가 신데렐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왕자님을 만나기 전 인고의 세월을 거쳤기 때문이다. 국카스텐이 걸어온 길이 꼭 그랬다.

시작부터 영화 같았다. 미대에 들어간 하현우는 학교가 재미없었다. 겉도는 학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같은 학교에 다니던 이정길이 다가왔다.

“혹시 음악 하세요?”

초면에 던진 첫마디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노래 하나는 끝내줬던 하현우다. 그렇게 둘이 밴드를 시작했다. 악기거래 사이트에서 강원도 홍천에 살던 전규호를 만났다. 밴드 이름은 ‘뉴 발란스’로 정했다. 홍대 앞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관객은 많아야 5명, 심할 때는 아무도 없었다. 곧 팀 이름을 ‘더 컴’으로 바꿨다.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을 눈여겨보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2003년 이화여대에서 열린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을 끝으로 더 컴은 해체했다.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현우는 군대로, 이정길은 방위산업체로, 전규호는 강원도로.

2년이 지났다. 하현우가 제대할 즈음 이정길에게서 편지가 왔다. 음악을 다시 할 생각이 없느냐고. 망설이지 않았다. 부모님에게도 편지를 썼다. 앞으로도 정신 안 차리고 계속 음악을 할 거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시라고. 제대 후 하현우는 집이 있는 안산에서 강원도 홍천까지 걸어갔다. 이정길과 전규호가 홍천 펜션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규호의 형이 운영하는 펜션이었다.

독일어로 ‘만화경’이라는 뜻

합숙이 시작됐다. 펜션 일을 틈틈이 돕고 밤에는 포장마차도 했다. 나머지 시간은 연습과 작업에 바쳤다. 홍대 앞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이 스타일을 만들어나갔다. 헛되지 않았다. 더 컴 시절보다 표현은 화려해지고 구성은 복잡해졌다. 그에 걸맞은 밴드 이름도 정했다. ‘국카스텐.’ 독일어로 ‘만화경’이라는 뜻이다. 진중권의 책을 읽다가 얻은 이름이다. 각자의 역량도 아울러 커져갔다. 강원도와 홍대 앞을 오가며 공연을 했다. 조금씩이나마 팬들이 생겨났다.

첫 번째 기회가 왔다. 더 컴의 마지막 공연이었던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2007년 행사에서 ‘숨은 고수’로 선정됐다. 최종 예선에 30여 팀이 올랐다. 대표곡인 ‘거울’과 ‘파우스트’를 연주한 국카스텐은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숨은 고수’가 됐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필자는 그들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따라 내려갔다. 명함을 건네며 물었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신인 발굴 프로젝트인 ‘헬로 루키’를 진행하는데 응모할 생각이 없느냐고. 아직 오디션 프로그램이 없을 때였다. 당시 밴드들은 ‘스페이스 공감’ 무대를 선망하고, ‘헬로 루키’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만큼 강원도에서 음악을 단련하는 데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그 만남이 두 번째 기회가 된 것 같다.

2008년 11월 29일 서울 광진구 악스홀(현 AX-KOREA)에서 열린 ‘헬로 루키 오브 더 이어’는 한국 인디 역사상 가장 뜨거운 쟁탈전이었다. ‘헬로 루키’의 연말 결선 격인 이 행사는 어느 경연 대회보다 큰 ‘당근’을 걸고 있었다. 대상을 받은 팀에게는 ‘스페이스 공감’ 정식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질 뿐 아니라 상금 500만 원과 2009년 펜타포트 메인 스테이지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까지 돌아갔다. 방송과 페스티벌, 그리고 돈까지 거머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더욱이 2008년 5월부터 매달 세 팀씩 선발한 루키들이 겨루는 그야말로 천하제일 무도회였다.

헬로 루키 뜨거운 신인 탄생

“듣보잡이 사고 쳤다고? 밴드음악에 완전 미쳤을 뿐”
6월의 헬로 루키로 선정돼 본선을 통과해 최종 결선까지 오른 국카스텐은 이 무대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이미 ‘스페이스 공감’ 정식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인에게 필요한 덕목이 흔히 겸손이라고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말뿐이 아니었다. 정확히 기억한다. 국카스텐이 첫 곡 ‘거울’을 부르자 객석으로부터 어떤 뜨거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마음으로부터의 환호가 악스홀을 가득 채웠다.

결국 국카스텐은 헬로 루키 오브 더 이어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을 누르고 대상을 차지했다. 심사위원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과였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바야흐로 뜨거운 신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로열로드’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공석이던 베이스 자리에 김기범이 합류한 것도 그즈음이다.

여세를 몰아 첫 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우여곡절이 있었다. 여건상 홈 레코딩으로 제작한 건 좋은데, 어느 순간 하드디스크가 날아간 것이다. 새롭게 만들었지만 불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발매를 지연할 수는 없었다. 2009년 초 발매한 앨범에는 ‘Before Regular’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리고 얼마 후 첫 번째 단독 공연도 열었다.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홍대 앞 V-HALL이었다. 이제 갓 앨범을 낸 밴드가 서기에는 도박에 가까운 규모였다. 그 도박은 성공했다. 티켓은 예매로 모두 매진됐다. 혹시나 해서 당일에 왔던 사람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당시 인디 신의 주류는 어쿠스틱 음악이었다. 그럴 때 마치 ‘삼국지’에서 튀어나온 듯 장기하와 얼굴들, 검정치마, 갤럭시 익스프레스 같은 신인이 잇따라 등장했다. 국카스텐은 그들과 함께 인디 신의 세대교체를 주도했다. 그 뒤로 승승장구했다. 공연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했다. KBS 2TV ‘이하나의 페퍼민트’나 MBC ‘쇼! 음악중심’ 등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1등은 그들 몫이었다. 밴드의 실질적 수입원인 각종 행사 출연 제의도 빗발쳤다.

1집의 아쉬웠던 사운드를 되살리려고 2010년에는 앨범 전부를 재녹음했다. ‘Before Regular’에서 ‘Before’를 뗄 수 있었다. 라이브에 비해 앨범이 아쉽다는 소리도 쏙 들어갔다. 그해 연말에는 EP(정규앨범을 내기 전 발매하는 미니앨범) ‘Tagtraume’(백일몽이라는 뜻의 독일어)를 냈다. 1집에 비해 불필요한 요소들을 덜어내면서도 훨씬 드라마틱한 노래들을 담았다. 역시 찬사가 쏟아졌다. 성공의 증표라는 ‘안티’도 늘었다. 하지만 안티보다 팬 증가 속도가 빨랐다.

2011년 5월 한강 난지공원에서 열린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은 그들의 성취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였다. 한국 페스티벌의 공연 순서는 이른바 ‘짬순’인 경우가 많다. 웬만큼 인기를 얻어도 신인급 밴드는 중견 밴드보다 먼저 공연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국카스텐은 메인 스테이지 헤드라이너였던 자우림 바로 앞 시간을 배정받았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공연을 펼쳤다. 1만여 명의 사람이 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무대 앞에 들어찼다. 거대한 합창과 점핑이 물결쳤다. 2011년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의 MVP는 국카스텐이 차지했다.

국카스텐은 그때 이미 인디 신의 신데렐라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YB 이후 강렬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하는 록 밴드가 한 번도 주류 음악시장에 진입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국카스텐은 그럴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그해 여름 악스홀에서 열린 단독 공연 역시 매진됐고, 비슷한 시기에 ‘나가수’에서 섭외가 들어온 것은 그들의 가능성에 대한 확증이었다(그때는 섭외가 불발됐다).

악스홀 공연을 끝으로 국카스텐은 메이저 기획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인디 신의 주요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씁쓸하지만, 국카스텐이 인디 신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으리라. ‘나가수2’에 그들의 출연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갸우뚱했던 일반인과 달리, 이미 그들의 실력을 알고 있던 이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겪었던 고난의 시기와 로열로드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국카스텐의 신데렐라 스토리에 방점을 찍은 ‘나가수2’의 첫 경연을 마치고 멤버들은 1등에 대한 가능성을 예감했다고 한다.

“공연 끝나고 나면 느낌이라는 게 있어요. 잘해도 찝찝할 때가 있고, 실수해도 깔끔할 때가 있어요. 그땐 깔끔한 느낌이었어요. 노래를 여러 곡 준비했는데 ‘한잔의 추억’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무엇보다 가사가 선동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장희 씨 노래를 들었던 것도 있고요.”

“듣보잡이 사고 쳤다고? 밴드음악에 완전 미쳤을 뿐”
강한 색깔 담은 2집 기대

생각해보면, 그들이 밟아온 기회 자체가 선동적이었다.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헬로 루키, 나가수2. 모두 경쟁이다. 국카스텐은 그 경쟁에서 자신들을 모르는 사람들을 선동하며 승리해왔다. 하현우는 말한다.

“처음에는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밴드를 했지만 계속 하다 보니 작사, 작곡에 비중을 더 많이 두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나가수2’를 하면서 보컬리스트로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됐어요. 자신감을 얻었죠. 작업방식도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곡을 만들어도 미완성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있었는데, 작곡이 아니라 편곡을 하다 보니 감성적으로 설득력 있게 만들려고 정리를 많이 하고 있어요. 달라졌다기보다 하나를 더 얻은 거죠.”

직구만 던지던 투수가 변화구에도 자신감을 얻은 셈이다. 그들의 새로운 무기는 거의 완성 단계에 있는 2집에도 적용될 전망이다.

“색깔이 강할 거예요. 1집에 비해 멜로디 라인도 다양해졌고, 우왕좌왕하는 느낌보다 통일감을 더했어요. 1집 곡들에 불필요한 소스들이 있는데 그걸 빼려고 많이 노력했죠.”

2집 작업은 현재 ‘나가수2’ 출연으로 잠시 보류된 상태다. 작업을 위한 재생버튼이 다시 눌리면 ‘나가수2’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앨범을 완성할 것이다. 그렇게 발매될 국카스텐 2집은 그들의 또 다른 기회, 혹은 갈림길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2집이 그러했듯 ‘대중친화적’ 음악이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자의식을 물씬 담은 음악이 시장에서 어떤 성과를 얻는지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국카스텐의 이전 팀 이름이던 더 컴은 ‘음악의 나침반(The Compass of Music)’의 줄임말이었다. 꺾였던 나침반이 근 10년이 지나 파르르 떨리고 있다. 국카스텐이 나아가는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 한국 록의 다양성이 어떻게 확장될지를 가리키기 위해.



주간동아 2012.07.09 845호 (p54~55)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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