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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길의 놀라운 편집의 힘

긴장과 이완 문장이 곧 칼이다

작가 김훈의 집중력

  •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긴장과 이완 문장이 곧 칼이다

긴장과 이완 문장이 곧 칼이다

이순신 장군이 혼인 후 살았던 현충사 충무공 옛집에서 작가 김훈은 독자들과 노변정담을 나눴다.

5월 26일 충남 아산 현충사 충무공 옛집 안마당. ‘칼의 노래’ 작가 김훈은 독자 100여 명과 함께한 자리에서 ‘내가 만난 이순신’이라는 주제로 담담하게 말을 이끈다. 현충사 관리소 측이 마련한 고택정담(古宅情談)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고택 뒤편엔 이순신 장군의 신위를 모신 덕수이씨 충무공파 가묘(家廟)가 있다. 분홍빛 모란꽃, 하얀빛 작약, 보랏빛 붓꽃이 만발했다.

“적은 한 번의 교전도 없이 부산에 상륙했다. 온 국토가 유린되던 나날, 유일하게 남해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는 이순신을 질투한 나머지 투옥하고 죽이려 했다. 정유재란이 이순신을 살렸다. 모든 계급장을 떼고 무등병으로 내려보냈다. 조정은 이순신의 모든 명예를 짓밟았다. 왜 이순신은 모욕과 치욕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모진 박해를 어느 한 곳에도 남기지 않았을까. 문득 나는 이순신의 침묵이 너무 궁금했다. 전장에서 죽은 노비의 이름까지 기록할 만큼 세밀한 장군이 침묵한 사실에서 나는 무서운 내면을 느꼈다. 아무런 실마리가 남지 않았고 정치적 적개심의 흔적 또한 없어 나는 소설에서 침묵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칼의 노래’는 미완성이다. 나와 이순신 장군 사이는 아직 진행형이다.”

현장에서 작가의 허심탄회한 후기를 들으며 충무공의 침묵을 파헤치는 ‘칼의 노래’ 후속 작품에 대한 기운을 느꼈다. 작가 김훈의 이순신을 향한 집중력을 살펴본다.

1. ‘칼의 침묵’을 향한 집중된 추적

“현충사에 있는 장군의 칼에 늘 주목했다. 뜨거운 칼이자 차가운 칼이다. 구국 영웅은 일기를 통해 절망의 시대에 함부로 희망을 말하지 않고 세상의 야만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난중일기’엔 뛰어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탁월한 문장도 없다. 하지만 따라갈 수 없는 진실성이 있다. 헐벗은 시대를 그대로 기록한 가난한 글줄에 나는 여러 번 울었다. 성웅이 남긴 일기는 내 인생을 뒤흔들었다.”



대학시절 김훈은 노산 이은상의 한글번역본 ‘난중일기’를 읽는다. 영시를 암송하던 영문학도는 엄혹한 사실과 절망으로 가득한 조선 장군의 진중일기를 일독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순신의 붓은 칼날 같았다. 그는 어떤 예감을 몸으로 느꼈다. ‘내가 언어를 장악하게 되는 날, 이순신의 내면을 밝혀 글로 말하고 싶다.’ 30년이 지나 쉰세 살이 된 그는 돌연 연필을 들어 하얀 원고지를 쓱쓱 밀고 나갔다. 기력을 다해 이틀을 쓰고 하루를 쉬었다. 그의 역작 ‘칼의 노래’는 두 달 만에 탈고된다.

2. 약육강식을 간파한 집중된 문체

“내 끝나지 않는 운명에 대한 전율로 나는 몸을 떨었다. 나는 다시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수군통제사였다. 나는 통제할 수군이 없는 수군통제사였다. 내가 임금을 용서하거나 임금을 긍정할 수 있을는지는 나 자신에게도 불분명했다. 그러나 나의 무(武)는 임금이 손댈 수 없는 곳에 건설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건설은 소멸되기 위한 건설이어야 마땅할 것이었다.”(‘칼의 노래’ 가운데)

그의 서사는 장황하지 않고 압축적으로 전개된다. 그의 문장을 따라 걷다 보면 세상 길 위에 선 ‘수많은 나’를 만날 수 있다. 칼날 같은 취재로 구축한 팩트는 문체 미학의 바탕을 이룬다. 문장의 리듬이 남성적 호흡을 타면서 긴장과 이완을 되풀이한다.

지도력의 빈곤은 시대의 우울로 직결된다. 고을마다 스며든 처참함은 아득하다. 피한다고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약육강식. 김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왕조 이데올로기에 복속되지 않으려는 개별자 이순신을 본다. 이순신의 심경을 통해 그는 이 시대 중년 남자의 어깨를 다독인다.



주간동아 2012.06.04 840호 (p67~67)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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