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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프간 수렁서 발 빼는 미국 파키스탄이 발목 잡는다

보급로 사용료 이어 빈 라덴 DNA 제보한 의사 반역죄 놓고 충돌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아프간 수렁서 발 빼는 미국 파키스탄이 발목 잡는다

미국과 파키스탄 관계가 갈수록 악화되면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추진하는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출구전략(Exit Strategy)’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양국관계는 지난해 5월 미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이 사전 통보 없이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전격 사살하면서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파키스탄은 미국이 자국 주권을 침해했다며 강력하게 항의하는 등 불만을 표시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미군 오폭으로 파키스탄 병사 2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파키스탄은 보급로를 차단했는데, 이 때문에 미군과 나토군의 작전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미군과 나토군은 파키스탄 보급로를 통해 아프간 전쟁에 필요한 군수품 40%를 공급받아왔다. 양국은 그동안 이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였지만 아직까지 타결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파키스탄 지방법원은 5월 23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빈 라덴의 소재를 알려준 자국 외과의사에게 반역 혐의를 적용해 징역 33년형을 선고했다. 이 의사는 빈 라덴이 은신해 있던 지역의 주민들에게 간염백신을 접종하는 척하면서 DNA 샘플을 수집해 CIA에 제공했으며, CIA는 이를 이용해 빈 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파키스탄 정부는 자국 국민이 외국 정보기관에 협조했다면 그것이 어떤 국가든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법원 판결을 옹호했다. 하지만 이 의사를 ‘영웅’으로 간주해온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 지방법원의 판결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파키스탄 의사는 세계 최악의 지명수배 살인자인 빈 라덴을 잡는 데 유용한 구실을 했다”면서 “그의 행동은 결코 파키스탄을 배신한 게 아니며, 그에 대한 처벌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상원 세입위원회는 5월 24일 파키스탄 지원금 3300만 달러를 삭감한 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3300만 달러는 징역 1년마다 100만 달러를 적용한 수치다. 상원 군사위원회도 같은 날 파키스탄이 보급로를 개방하지 않으면 파키스탄 지원을 유보한다는 국방수권법안 수정안을 역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파키스탄 협력 끌어내기 총력전



미국 정부는 아프간 전쟁을 ‘아프팍(아프간+파키스탄·AfPak) 전쟁’이라고 명칭까지 바꿔가며 파키스탄의 협력을 끌어내려고 총력을 기울였다. 미국이 9·11테러 이후 지금까지 파키스탄에 지원한 자금은 매년 20억 달러씩 총 200억 달러나 된다.

미국이 파키스탄에 공을 들인 이유는 무엇보다 아프간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의 파슈툰족 거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소탕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슈툰족은 현재 아프간에서 가장 큰 종족으로 아프간 전체 인구의 42%인 1400만 명이나 된다. 파키스탄에는 아프간보다 훨씬 많은 2800만 명(전체 인구의 15%)의 파슈툰족이 산다. 험준한 산악지대인 파키스탄의 파슈툰족 거주 지역은 그동안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피신처이자 보급기지 구실을 했다. 이 지역의 청년 가운데 상당수는 탈레반과 알카에다에 가입해 전사가 됐으며, 주민들은 이들을 지원해왔다.

탈레반은 하카니 네트워크, 파키스탄 탈레반운동(TTP), 탈레반 최고 지도자 모하메드 오마르의 추종세력 등 3개 그룹으로 나뉜다. 그중 가장 위험한 세력은 하카니 네트워크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옛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벌였던 무자헤딘 지도자 잘라루딘 하카니가 2003년 조직한 무장단체로, 병력이 4000~1만2000명이나 된다.

현재 하카니 네트워크는 30대 후반인 잘라루딘의 아들 시라주딘이 이끌며, 그의 목에는 미국이 내건 현상금 500만 달러가 걸렸다. 탈레반 가운데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한 공격과 테러활동을 해온 하카니 네트워크는 그동안 알카에다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미국으로선 파키스탄 정부가 하카니 네트워크를 비롯한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발본색원해준다면 아프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의 희망과 달리 자금만 지원받은 채 탈레반과 알카에다 소탕에는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나토 28개 회원국 정상들은 5월 21일 미국 시카고에서 정상회의를 갖고 10년에 걸친 아프간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3단계 출구전략을 확정했다.

제1단계는 내년 중반까지 전투 임무를 사실상 종료하고 아프간 정부에 치안권을 이양하는 것이다. 치안권 이양 시기는 당초 2014년보다 1년 앞당겨졌다. 미국은 물론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는 유럽 각국이 아프간 전쟁에 반대하는 국내 여론에 직면하는 등 ‘전쟁 피로증후군’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제2단계는 당초 계획대로 오는 2014년 말까지 전투 병력을 아프간에서 완전 철수하는 것이다. 아프간에는 현재 미군 9만 명을 포함해 국제안보지원군(ISAF) 병력 13만 명이 주둔한다. 제3단계는 나토가 2015년부터 아프간 군경에 대한 훈련을 맡아 아프간 정부가 자체 치안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프간 출구전략을 확정한 데 대해 “아프간 전쟁을 책임 있게 종식하기 위한 중대한 국면 전환”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철군 후 매년 41억 달러 10년간 지원

미국의 아프간 출구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철군 이후 아프간 군경이 치안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느냐다. 미국은 철군 이후 탈레반이 다시 아프간을 장악하거나 아프간이 알카에다의 온상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아프간 군경의 전력 강화와 자체 치안유지 능력을 갖추도록 철군 이후 매년 41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2015년부터 10년간 지원키로 했다. 이 자금의 절반은 미국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나토와 국제사회가 지원한다. 그 내용을 보면 프랑스 2억5000만 달러, 이탈리아 1억2000만 달러, 영국 1억 달러, 호주 1억 달러, 터키 2000만 달러 등이다. 아프간 정부는 미군과 나토군의 철수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군경을 35만 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아프간 출구전략의 성패를 좌우하는 또 다른 변수는 파키스탄의 협력 여부다. 아프간 정부가 자체 치안능력을 강화한다 해도 파키스탄에 있는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아프간 정부를 끊임없이 괴롭힌다면 평화를 정착시킬 수 없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 정부가 적극적으로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소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는 벌써부터 다른 속셈을 갖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보급로를 개통하는 대가로 트럭 한 대당 250달러인 통행료를 5000달러로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르다리 대통령의 무리한 요구에 분노해 그와 개별 정상회담은 물론 심지어 악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양국이 동상이몽 관계를 보이는 이유는 서로의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궁극적 전략 목표는 알카에다를 궤멸하고, 탈레반을 약화시킨 이후 아프간 정부의 통치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명예롭게 아프간에서 철군할 수 있다. 물론 친미세력이 아프간을 계속 통치하면, 중앙아시아는 물론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한 영향력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반면 파키스탄은 아프간 전쟁을 적당한 선에서 끝내기를 바라고 있다. 파키스탄은 탈레반이 미군 공격으로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는 것도 원치 않는다.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을 통해 아프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과거 탈레반이 아프간을 통치할 때 이를 인정했던 국가다. 파키스탄은 아프간을 잠재적 적국인 인도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왔다. 이와 함께 파키스탄 정치권이 민심을 의식해 반미를 앞세우는 것도 양국관계가 악화된 원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 가운데 반미 정서가 가장 높은 국가다. 전체 국민 1억8400만 명 가운데 97%가 이슬람을 믿는다(수니파 75%, 시아파 20%). 파키스탄은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자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무슬림이 많은 나라다. 국교인 이슬람은 사회와 문화는 물론 정치, 경제, 법률에까지 큰 영향을 끼치며 무슬림의 5대 의무가 모든 가치 기준의 척도가 된다. 파키스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16달러고, 전체 인구 중 5분의 1이 하루 1.25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층이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파키스탄에선 다른 어느 국가보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파키스탄 역대 정권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정권 유지에 이용해왔다. 파키스탄은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 미국 편에 서서 소련과 맞섰지만, 1990년대 핵개발에 나서면서 미국과 갈라섰다. 당시 미국은 파키스탄에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했다. 이때부터 파키스탄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반미 정서를 확산해왔다.

반미 정서 팽배한 파키스탄 군부

파키스탄 군부의 반미 정서도 매우 심하다. 특히 파키스탄 국방부 산하에 있는 정보부(ISI·Inter-Services Intelligence)는 그동안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비롯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지원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대표적 사례가 2008년 11월 인도 뭄바이에서 테러를 자행해 160여 명을 숨지게 한 라슈카르 에 토이바(LeT)라는 무장단체다. 이 단체의 이름은 ‘순수의 군대’ 혹은 ‘정의의 군대’라는 뜻이다. 1980년대 후반 결성한 LeT는 영토분쟁을 벌이는 카슈미르에서 인도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전개했으며, 파키스탄 정부는 이를 묵인했다. 미국은 LeT 창설자인 하피즈 사이드에 대해 10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지만, 사이드는 파키스탄군 최고사령부가 있는 라왈핀디를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 ISI가 사이드를 비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ISI는 파키스탄이 카슈미르를 둘러싸고 인도와 1차 전쟁을 벌일 때 카슈미르와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에서 첩보전을 수행하려고 설립한 정보기관이다. 특히 ISI와 탈레반의 인연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 시작됐다. ISI는 1980~90년대에 무자헤딘 8만3000여 명을 훈련시켜 아프간으로 들여보내는 일을 떠맡았다. ISI는 당시 빈 라덴을 끌어들여 무자헤딘의 반소(反蘇) 항전을 지원했으며, 빈 라덴이 1996년 수단에서 아프간으로 근거지를 옮겨 탈레반과 결합할 때도 도움을 줬다.

이런 관계 때문에 ISI와 탈레반, 알카에다는 지금까지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파키스탄에서 최고 권력 실세라는 말을 듣는 아슈파크 파르베즈 카야니 육군참모총장은 ISI부장을 지냈으며, 현 자히르 울 이슬람 ISI부장은 카야니 총장의 오른팔이다. 파키스탄 국민은 ISI를 ‘국가 내 국가’ ‘보이지 않는 정부’라고 부른다. 파키스탄 정치권은 여야 관계없이 군부와 ISI의 눈치를 본다.

미국과 파키스탄의 협력관계는 현재 가장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파키스탄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아프간 출구전략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미국은 파키스탄을 회유할 마땅한 카드가 없어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려고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해왔다. 중국과 인도는 전통적인 라이벌 관계다. 반면 파키스탄은 인도를 견제하려고 중국과 밀접한 유대를 맺어왔다. 미국으로선 아프간 출구전략을 위해서라도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4국 관계가 서로 물고 물리면서 얽혀 있는 셈이다.

미국과 파키스탄 관계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파키스탄이 이슬람 국가 가운데 유일한 핵 보유국이라는 사실이다. 파키스탄은 현재 110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핵무기가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유출되지 않을까 우려해왔다. 파키스탄에선 지금까지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3차례에 걸쳐 핵무기를 탈취하려 한 적이 있었다. 만약 탈레반이나 알카에다가 핵무기 또는 핵물질을 손에 넣는다면 미국으로선 최고의 악몽이 될 수밖에 없다.

탈레반은 미국의 아프간 출구전략이 확정되자 아프간을 다시 통치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본다. 탈레반은 이미 3월 카타르 도하에서 진행해온 미국과의 비밀 평화협상을 중단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탈레반은 당시 미국에 관타나모와 아프간 바그람 미군 기지에 수감된 모든 아프간인의 석방, 유엔 제재 대상에 오른 탈레반 전사의 명단 삭제, 정당으로서의 탈레반 인정 등을 요구한 바 있다. 반면 미국은 탈레반에게 무장해제, 알카에다와의 관계 청산, 아프간 헌법 인정 등을 평화협정 조건으로 제시했다.

양측의 협상은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특히 탈레반은 미군이 철수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아프간을 다시 장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다. 실제로 탈레반은 5월 1일 춘계 대공세를 선언하고 아프간 주요 도시에서 폭탄 테러를 비롯해 각종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아프간 국민은 벌써부터 탈레반의 재집권을 두려워한다. 과거 역사를 보면 대영제국은 물론 소련까지 패배하는 등 아프간은 말 그대로 ‘제국의 무덤’이었다. 이 때문에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간은 앞으로 ‘탈레바니스탄(Talebanistan·탈레반의 나라)’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미국의 아프간 출구전략이 강대국들이 가진 뼈아픈 역사의 또 다른 사례가 될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12.06.04 840호 (p46~48)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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