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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오은의 vitamin 詩

난 매일 널찍한 마당에 선다

난 매일 널찍한 마당에 선다

난 매일 널찍한 마당에 선다
내 마당

내 마당에는 매일 잉어 떼가 온다

무언가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파도의 산을 넘어

내 마당에는 매일 은행나무가 성큼성큼 다른 길을 내고

마치 사막의 설치류가 오솔길을 만들듯



내 마당에는 매일 청개구리가 폴짝폴짝 담을 쌓는다

담 사이에는 순간순간 이끼가 자라고 봉선화 피고

내 마당에는 담이 없고 내 마당에는 담이 하얗다

내 마당에 널 불렀더니 너는 훌쩍훌쩍 마당을 지우고

내 마당에 널 앉혔더니 너는 키득키득 마당을 맛있게 먹었다

내 마당은 너무 넓어 자꾸자꾸 죽기만 한다

내 마당에는 매일 잉어 떼가 오고

고통도 없고 절망도 없고 미래도 없고 사랑도 없다

내 마당은 커다란 배가 되고

나는 끝없이 노를 젓고 더 이상 동료도 없고

나는 땡볕에도 녹지 않는 얼음산을 향해 나아간다

물론 희망 없이, 내 마당을 완성하기 위하여

― 이준규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문학과지성사, 2010)에서

난 매일 널찍한 마당에 선다

나는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마당이 갖고 싶다고 투덜대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마당은 없어도 옥상이 있잖니.” 그렇지만 옥상은 무서운 곳. 잘못하다 떨어지면 크게 다치는 곳. 아빠가 화났을 때 회초리를 드는 유일한 곳. 회초리가 바람을 휙휙 가르는 곳. 그 소리만 듣고도 속절없이 쪼그라들던 곳. 이처럼 옥상에 올라가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역설적으로 서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옥상에 올라가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옥상 아닌 마당이 있는 집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아래에 있으면 노상 안전할 것 같았다. 떨어질 염려도 없고 회초리 맞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떼를 쓰다 지친 나는 머릿속으로 우리 집에 없는 마당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마당 한쪽에 커다란 화단을 꾸미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마당은 너무 넓어” 온갖 종류의 꽃씨를 심을 수 있었다. 계절마다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났다. 그 위로 “은행나무가 성큼성큼”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상하게도 꽃이 지닌 고유의 색은 바래지 않았다. 오히려 바라볼 때마다 더 싱싱하고 생생해졌다.

마당을 만드는 상상은 나를 들뜨게 하기 충분했다. 마당에서는 시종 깨끗한 물이 쏟아지거나 솟구쳐 올랐다. 그저 마음만 먹으면 됐다. 나는 물장구를 치며 놀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입 벌려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기도 했다. 마당에는 “담이 없”었지만 물이 새거나 넘치지 않았다. 오롯이 풍요로웠다. ‘아무 곳에도 없는 장소’처럼, 말 그대로 꼭 유토피아 같았다. 거기가 바로 “내 마당”이었고 “커다란 배”였으며 “땡볕에도 녹지 않는 얼음산”이었다. 불가능이었고, 불가능이어서 매혹적이었다. 상상 속에서, 마당은 사정없이 커지기도 했고 한없이 은밀해지기도 했다. 그것은 내키는 대로 자유자재로 몸을 뒤틀었다. 마당에 찾아오는 “잉어 떼”처럼 불가능한 지경에 다다라서야 상상은 끝났다. 마당은 사라지고 옥상만 덩그러니 남았다. 철부지처럼 구석에 처박혀 “훌쩍훌쩍” 울고 싶었다.

난 매일 널찍한 마당에 선다
지금도 나는 마당은 없고 옥상만 있는 집에서 산다. 다 커서도 옥상은 여전히 께름칙해서 웬만해선 올라가지 않는다. 문득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회벽뿐이다. 지금이야말로 금쪽보다 감쪽같은 상상이 절실한 때다. 눈을 감자 머릿속에 널찍널찍한 마당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 마당에 발자국을 내자. 자박자박, 혹시 밤새 비가 내렸다면 찰방찰방하기도 하면서. “내 마당을 완성하기 위하여”, 능동적으로 상상의 기지개를 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마당은 아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매일” 처음 마주하는 것처럼 설렐 것이다.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



주간동아 831호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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