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범야권 박원순 후보와 함께한 문화예술인 멘토단.
흔히 조언자라고 부르는 멘토(mentor)는 그리스신화에서 나왔다. 이타카 왕국의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멘토가 왕자 텔레마코스를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시킨 것에서 유래했다. 멘토링을 주는 사람(멘토)은 지식이나 경험, 능력에서 뛰어나야 하고, 멘토링을 받는 사람(멘티)은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투표장으로 불러내는 우회 전략
선거 멘토단은 후보에게 멘토링을 하는 것이 아니다. 2011년 10·26 재보선 즈음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멘토에 관한 언급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안 원장과 가까운 윤여준 전 장관이 그의 행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자 윤 전 장관의 발언을 폄훼하며 300여 명의 멘토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하다고 얘기한 것이다.
안 원장이 말한 멘토는 원의(原義)에 충실한 반면, 박원순 시장과 야권연대가 내세우는 멘토는 변형이다. 후보자에게 조언하는 것이 아니라, 멘토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 나름대로 영향력을 지닌 20, 30대 소셜네트워커(social networker)에게 멘토링을 하겠다는 것이다. 멘토링 내용은 야권연대 정당 및 후보자에 대한 지지와 투표다.
유명인이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해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행위, 즉 ‘공개 지지(endorsement)’는 외국의 경우 흔히 사용하는 선거 캠페인 방식이다. 미국 유명 배우나 스타들은 선거 때 자신이 누구를 지지하는지 공개적으로 밝힌다. 오프라 윈프리, 스티비 원더, 신디 크로퍼드, 윌 스미스, 할 베리 같은 스타가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를 적극 지지했다. 미국에선 심지어 언론도 지지 후보를 천명한다. 이런 것이 바로 공개 지지다.
그렇다면 그냥 하던 대로 ‘지지’라고 하면 되지 굳이 왜 멘토단이라고 할까. 먼저 멘토단이라고 해야 정치적 색채가 옅어진다. 즉, 누구를 편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대의를 위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자 하는 의도가 담겼다.
취업이나 학비 등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젊은 층이 갈구하는 것이 성공한 사람의 조언이고, 멘토 담론이 유행한 배경도 이것이다. 따라서 멘토단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젊은 층에게 ‘먹히는 말(word that work)’이기 때문이다.
20, 30대 젊은 층의 투표율은 총선에서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이들은 기성 정치에 불만이 많다. 따라서 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사람을 내세워 투표장으로 유도하고자 고안해낸 우회 전략이 멘토단인 셈이다.
2011년 10·26 재보선에서 서울시장 멘토단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결과적으로 20, 30대가 트위터를 기반으로 투표장에 몰리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4월 총선에서도 그럴까.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지만 멘토단을 선거 전략의 핵심으로 내세운 의도만큼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젊은 층의 투표 동기는 멘토단이 아닌 정당과 후보가 불어넣는 것이고, 멘토단의 소임은 그 점을 확인하고 북돋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을 막 시작한 지금 야권연대가 젊은 층의 투표 동기를 높이는 데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다. 좋은 지표가 있다. 대학생 부재자투표 신청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 비해 대학생 부재자투표 신청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예를 들어, 고려대의 경우 2010년 2800여 명에서 이번에 2100명으로 줄었다.
멘토단을 통한 젊은 층 공략이 정당 불신의 시대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정당이 스스로 무능을 시인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정당은 유권자의 이해와 요구를 담아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에게 투표장에 나갈 동기를 부여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 투표장에서 한 표를 주고 싶도록 하는 것, 이것이 정당의 기본 책무다. 따라서 20, 30대를 공략하려고 멘토단을 만들고, 그들에게 의지한 채 손 놓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당이 젊은 층의 고통을 어떻게 해소해줄지 답을 제시하고, 그럼으로써 젊은 층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다. 선거 때 급하다고 외부 인사에게 20, 30대 공략을 위탁하는 것은 길게 보면 정당의 체력을 떨어뜨리는 길이 되고 만다.
‘MB 대 반MB’ 구도 실종
2012년 1월 15일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한명숙 후보와 최고위원들.
총선을 앞두고 많은 유권자는 민주통합당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민주당과 민주통합당은 얼마나 다른가. 다시 말해 민주당은 시민단체, 노동단체 등과 통합해 민주통합당이 됐는데, 얼마나 달라졌느냐는 물음이다. 거대한 전환이나 변혁인 것처럼 공언한 ‘통합’치고는 달라진 게 너무 없다는 국민의 평가가 뒤따른다. 여전히 무능하고, 여전히 지질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선거 구도 관리나 여야 전선 운영을 보면 무능하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야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앞세웠던 ‘MB 대 반MB’ 구도는 실종됐고, 야권연대는 감동 없는 나눠먹기로 끝나버렸다는 지적이 많다. 무질서한 경선 관리나 제 식구 감싸기는 그야말로 지질한 구태라는 지탄을 받는다.
연초 민주통합당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그 원인이 꽃가루 효과(convention effect)이든, 통합에 대한 대중적 성원이든 정당 지지율에서 새누리당을 앞질렀다. 그러나 지지율 1등의 지위는 금세 무너졌다. 혁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통합할 때도 혁신은 없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곧 있을 총선 후보 공천에서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리라는 기대가 남았었다. 하지만 공천 결과를 보니 혁신은커녕 이미 퇴장했던 인물이 다시 등장했다. 통합의 물꼬가 혁신이 아닌 반동으로 트인 꼴이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등장 이후 ‘MB의 한나라당’이 아닌 ‘박근혜의 새누리당’으로 탈바꿈한 것에 비하면 한심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많다. 19대 총선에 나선 민주통합당의 상징어는 무능처럼 돼버렸다. 이 같은 비판을 극복하려고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는 총선전략의 핵심으로 멘토단을 내세운다. 하지만 멘토단을 앞세우는 것 자체가 이미 국민 눈에 정당 무능을 자인하는 것으로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