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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퍽퍽한 살 뜯으며 ‘영양센타’가 떠올랐다

전기구이 통닭

퍽퍽한 살 뜯으며 ‘영양센타’가 떠올랐다

퍽퍽한 살 뜯으며 ‘영양센타’가 떠올랐다

전기구이 통닭이다. 프라이드 치킨에 밀려 거의 사라졌다.

통닭은 날씨가 쌀쌀해지면 생각나는 음식이다. 특히 눈 내리는 겨울이면 그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날씨와 통닭이 무슨 연관이 있기에 이럴까. 흔히 통닭이라 하지만 통닭구이가 바른 말이다.

통닭은 닭의 털과 내장을 제거하고 통째로 굽는다. 구이인 만큼 오븐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터이나, 옛날 닭집에서는 기름에 튀긴 것도 통닭이라며 팔았다. 시장에는 으레 닭집이 있었고, 여기에 통닭튀김이 있었다. 요즘엔 길거리에서 장작불로 굽는 통닭을 가끔 본다. 한때는 닭을 장작불이 아닌 전기로 구웠다. 필자의 기억과 주변 증언에 따르면,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전기구이가 강세였다. 통닭집 전기구이 기계에서는 ‘누드’ 닭이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진 채 뱅글뱅글 돌았는데, 그 앞에 유리를 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했다.

간판에는 ‘영양센타’ ‘전기통닭’이라 적어놓았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통닭이라 하면 이 전기구이 통닭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가 들어오면서 전기구이 통닭이 일시에 밀려났다.

전기구이 통닭은 당시로선 비싼 음식이었다. 지금이야 마음대로 프라이드 치킨을 먹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큰맘을 먹어야 했다. 그 귀함은 ‘영양센타’라는 이름에도 묻어 있다. 통닭 한 마리 먹는 게 특별식이었고, 이 특별난 음식을 내는 ‘영양센타’는 대체로 시내에 있었다. 직장인들은 일을 끝내고 이 통닭에 맥주를 한잔 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러다 혼자만 ‘영양통닭’을 먹은 것이 미안했는지 통닭을 포장해 집으로 가져가는 남자들도 있었다. 늦은 밤 가장의 손에 들린 통닭은 아이들에게 큰 선물이었다. 통닭을 맛있게 먹으면서 아이들은 자신을 지켜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따뜻한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이때 통닭에 ‘행복한 가정’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졌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통닭을 자주 집에 사갈 수 없었다. 월급날에나 사갈 수 있을지 말지 했다. 1960년대 중반 전기구이 통닭집들이 연말에 맞춘 마케팅을 시도했다. “크리스마스에는 가족과 함께 통닭을” “연말연시 선물은 통닭으로” 등의 광고를 내걸었던 것. 신문에 광고도 했다. 이 마케팅은 크게 성공해 12월 24일과 12월 31일 밤 ‘영양센타’는 통닭을 사려는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연말에 연인이 데이트할 때도 통닭을 뜯는 것이 기본이었다.



통닭집의 연말 마케팅은 서구의 칠면조구이 관습에서 착안한 것이다. 6·25전쟁 이후 한국인은 영화, TV, 신문, 소설 등을 통해 서구의 여러 풍습을 접할 수 있었고, 이를 우리의 일상에 접목시켰다. 특히 크리스마스는 국경일로 정해질 정도로 한국화했다. 거리마다 트리가 세워지고 집에서도 창문에 반짝이를 걸었다. 이런 것을 두루두루 따라하다 보니 음식도 그들처럼 먹자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 연말 음식으로 처음 각광받은 것은 케이크고, 그다음이 통닭이었다. 서구인이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칠면조를 오븐에 구워 먹는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는데, 한국에는 칠면조가 없으니 닭으로 대신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연말에 통닭구이를 먹는 풍습은 사라졌다. 수시로 프라이드 치킨을 먹게 된 뒤로 통닭은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시내 곳곳의 ‘영양센타’가 프랜차이즈 닭튀김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제는 전기구이 통닭을 찾기가 참 어렵다. 최근 영등포 시장 근처를 돌다가 오랜만에 전기구이 통닭을 발견했다. 옛 생각이 나서 가게에 들어가 주문했다. 바싹한 껍질과 촉촉한 살을 기대했지만 껍질은 축축했고 살은 퍽퍽했다. 예전에도 그랬을 것인데, 그때는 몰랐을 수도 있다. 아니면 프라이드 치킨의 바싹한 튀김옷에 미각을 버렸을 수도 있다. 전기구이 통닭은 이제 추억 속에나 담아둬야 하는 음식인가 싶다.



주간동아 2011.10.24 809호 (p62~62)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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